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정희 Aug 30. 2024

모기

지구야 미안해!

지긋지긋한 폭염이 드디어 끝이 나간다. 지옥불 같은 뙤약볕과 숨이 턱턱 막히는 습도로 24시간 사우나에 강금당한 것 같았던 여름이었다.


지구가 어딘가 탈이 단단히 난 것 같다.

20년 전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환경오염으로 인한 지구온난화니, 기상이변이니 하는 말은 유난 떠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처럼 보였다.

계속 남의 이야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동네 엄마들만 만나면 우리는 어떻게든 잘 살아왔는데, 우리 아이들은 이런 기상이변 속에서 어찌 살아갈까  한숨을 짓는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든 잘 살아남겠지만, 쾌적한 환경을 물려주지 못해 왠지 미안했던 길고 길었던 여름이 한 발짝 물러선 것 같다.

 

어제, 오늘 하늘은 쨍하니 파랗다.

구름은 발랄하게 몽실몽실,

엄마 구름, 아기 구름 삼삼오오 두둥실 한가롭게 하늘을 유영한다. 나도 구름 위에 살짝 앉아 발장난을 하고 싶을 지경이다.

습도가 내려가니 그늘에만 들어가면 신선이나 된 듯.

"아~ 좋다!"라는 말이 입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어디든지 돌아다니고 싶은 날씨다.


집에서 지하철 몇 정거장만 가면 팔당역이 나온다. 새파란 예봉산자락과 한강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하니 세상 다 가진 것 같은 충만함을 느낀다.


충만한 마음으로 잠을 자는데, 손등이 간지러워 잠을 깬다. 핸드폰 시계로 시간을 보니 새벽 3시 36분.

모기다. 손등만 간지러운 게 아니다. 발등도 간지럽다.

벌떡 일어나 물파스를 벅벅 바르곤, 핸드폰 플래시로 모기를 추적한다. 모기는 갑자스러운 불빛을 받으면 본능적으로 어딘가 착륙한다. 커튼이나 옷장 벽면에 숨죽이며 앉아있으면 나는 운동신경을 영혼까지 끌어올려 손바닥으로 잡곤 했다.

어제는 놈이 꽁꽁 숨었는지, 핸드폰 플래시로 여기저기 불을 비추어도 보이지 않았다.

'아~ 잡고 자야 깔끔한데... 아쉽다...'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잠이 들었다. 놈이 도망간 줄 알았는데, 탐욕스러운 놈은 나의 피가 더 먹고 싶었던지 내 손가락 끝을 또 간지럽혀 나를 깨웠다.

'에이쒸,'

허벅지에 살짝 간지러운 느낌이 드는 찰나, 손으로 냅다 긁자, 피를 내뿜으며 놈의 사체가 내 손바닥에... 우윽. 

드디어 잡았다는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동시에.

탐욕스러운 모기를 보며 개똥철학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달콤한 피의 맛에 취해, 분명히 여러 차례 위험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피 사냥에 나선 탐욕스러운 모기가 우리 인간의 모습과 비슷한 건 아닌지 말이다.

지구는 여러 차례 위험경고를 날렸다. 인간은 달콤함에 취해 탐욕스럽게 지구를 착취해대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미안해. 지구야.





작가의 이전글 긍정의 끝판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