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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미 Nov 09. 2021

쉴 곳이 있다면 언제든지 (ft, 가정 폭력)

Q4 미술 유학 준비, 쉬어 가도 괜찮은 건가요?





A는 “제가 좀 쉬고 싶은 것 같아요” 라며 어려운 고백을 내쉬었다. ‘쉬고 싶다’가 아닌  ‘쉬고 싶은 것 같아요’에는 ‘나 이 얘기하는 게 쉽지 않아요’가 짙게 깔려 있었다.


A의 엄마는 우리를 선생이랍시고 앉혀두고는 화풀이를 했다.


“애가 쉬겠다기에 저는 선생님들이 붙잡아줄 줄 알았어요. 수강생도 몇 없다기에 우리 애한테 목숨 걸고 보란 듯이 해주실 줄 알았다고요.”




질질 끌려가듯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있다면, 그렇게 목표에 매몰되고 있다면 쉬는 게 답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반나절 나들이가 되었든, 다시 시작하는 날을 기약할 수 없는 긴 쉼이 되었든.


쉬고 싶다는 자식의 말에 부들부들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그 사람과 공기를 나눠마시는 내내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사실 언젠가 그 부모를 만나게 된다면 최대한 할 말을 하는 장면이길 바랐다. 하지만 상처로 점철된 그 가족, 그리고 그 안에서는 너무나 매끄러운 폭력의 봉우리 등, 나를 가로막는 게 많았다. 어쩜 그렇게 애 기를 죽여놓을 수가 있느냐고, 돈만 대주면 그게 부모인 줄 아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내지르기에 위험은 내가 아닌 A가 떠안아야 할 것이었다.


대화를 마치고 나는 편지를 썼다. 미리 말하자면 답장은 오지 않았다. 어쩌면 적잖은 환불 내역을 확인하고는 편지 따위는 읽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어떤 떨림이라도 있었다면, 그렇게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한 거라 생각한다. 아주 희망이 없는 삽질은 아니었길 바란다.





-편지 내용 일부-


더러 우리를 단순히 장사꾼, 자영업자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도 그렇게 단순한 역할만 해야 했다면 차라리 쉬웠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뀌지 않는 것들로부터 도망치고자 둔치를 찾는 친구들이 실제로 적지 않다. 겉에서 보기에는 유학을 준비하고 있지만 들여다보면 지긋지긋한 폭력으로부터 도망갈 준비.


부끄럽지만 둔치를 운영하면서 가정 폭력은 생각보다 너무나 흔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곳은 미술을 가르치는 곳이기도 했지만 생산적인 방법으로 탈출을 돕는 쉼터여야 하는 날이 더 많았다. 포트폴리오 만들기 혹은 유학 가기 등의 목표를 갖고 찾게 된 공간에서 쉼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일은 때로는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하지만, 우리로서는 궁지에 몰린 그들과 쉼을 함께 해보려고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이 ‘쉬고 싶다’고 말하지만 집은 도무지 쉴 곳이 되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쉼이라는 공기를 확보하지 못하는 공간도 그들에겐 집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어쩔 수 없는.

만일 그들이 다른 부모를 부모로 경험할 날이 하루라도 있었다면, 그리고 다른 부모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그래도 그 부모들이 선택받았을까. 어떤 자식도 부모와 가족을 선택할 기회가 없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당부한대도 일어나지 않을 것에 대한 질문은 아무런 경각심을 주지 않을지 모른다.


그들이 ‘잘’ 쉬고 나서 다시 작업을 하게 된다면 자기 치유적인 시간을 보낼 것이고, 다시 유학을 선택하는 날이 온다면 이 땅에서 가장  먼 곳에서 건강해질 수 있는 기회로 만들 거라고 믿는다. A의 부모들은 하던 일 그만두고 도망가는 거 아니냐고, 화가 난다고 했지만, A가 가족 안에서 안전지대 혹은 쉼터를 찾을 수 있었더라면 도망갈 이유 하나는 줄지 않았을까.





브런치에는 가정 폭력이라는 태그가 없다 ㅠㅠ 학교 폭력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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