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밀도 높은 도심에 살다보면, 땅의 대부분을 찻길과 높이 치솟은 빌딩에 내어준 기분이 든다.
내가 사는 곳에서 5분만 걸어도 자동차를 위해 쭉 뻗은 8차선 도로와
대형 브랜드 입점 가게들이 즐비하다.
계속 걷고 싶은 마음이 좀처럼 들지 않는 곳이다.
도시의 답답함에 서울에 사는 것이 싫은 기분이 들 때는
버스를 타고 해방촌으로 가본다. 해방촌은 다르다.
강도 높은 언덕 길을 따라 줄지어 있는 갈색벽돌의 다가구 주택들을 보면
잊고있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이 곳에 살면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불편할까, 언제부터 살던 사람들일까 하며
해방촌 주민들의 삶을 상상해 본다.
높은 언덕 길에 다다르면,
북쪽으로 남산 타워가 보이고 남쪽으로는 용산구 일대의 풍경이 펼쳐진다.
골목은 도로처럼 한가지 방향의 직선으로 나 있지 않다.
샛길도 있고, 돌아가는 길도 있다. 어정쩡한 길도 있다. 도보인지 찻길인지 모를 길도 있고.
중심길에 있는 이국적인 분위기의 펍과 레스토랑, 가게 외에도
샛길 안 쪽의 오래된 건물에 들어선 특색있는 공간들이 가득하다.
월세가 비싼 대도심 금싸라기 땅에서는 보기 힘든 가게들이 있다.
주인의 멋과 개성이 들어간 공간이다.
다채로운 이야기가 머무는 사유의 공간 독립서점,
어딘지 비밀스럽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은 미술 공방,
LP음악이 틀어져 있는, 커피 맛이 진하게 날 것 같은 카페들이 있다.
지나가면 구수한 커피향이 풍긴다.
해방촌을 찾아오는 나같은 외지인과 주민들의 모습도 섞여있다.
이상하다. 분명 구불구불한 길인데 해방촌은 오랜 시간을 걸어도 힘들지 않다.
오르락 내리락하며 종아리 힘이 바짝 들어가는데도.
도심의 빌딩숲에서는 십 분만 걸어도 그만 걷고 싶은데 말이다.
더 걷고 싶고, 구경하고 싶고, 동네의 정취를 실컷 느끼고 싶은 마음이 드는곳,
그곳이 해방촌이다.
낮고 오래된 건물과 함께 사람들의 취향이 모여 만들어지는 길이 있다.
답답한 도시의 모습 중 숨통이 트이는 구간이다.
그곳에 살고있는 주민 분들은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무분별하고 천편 일률적인 아파트와 구획 도로-위주의 계획된 (일방적)개발이 아닌
해방촌의 특성과 주민들의 삶을 반영한 환경 정비의 방향으로ㅡ
멋스러운 해방촌이 오래오래 있기를 바란다.
낡은 곳을 고치고 수리하고, 새로운 가치를 덧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