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밖 풍경은 명상이다...
진 빠지게 일한 날에는 퇴근 수단으로 버스를 탄다. 지하철을 타면 교통 체증을 피할 수 있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훨씬 앞당겨지지만 거의 앉아서 갈 수 없다. 갈아타는 구간도 고역이다. 환승 해야 하는 구간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며 날아가는 시간과 체력 소모 만만치 않다. 좁은 공간에 사람의 밀도도 버스보다 높게 느껴진다.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멍 -때릴 풍경도 없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엔, 집에 가는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버스를 탄다.
버스에 올라타 좌석에 앉는다. 잠시 오늘 일터에서 있었던 일을 상기해 본다. 회의 시간에 내가 놓친 것은 없었는가, 아! 회의 시작할 때 구성원을 소개해야 했는데. 급한 마음에 바로 시작 해 버린 게 마음에 걸린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 아쉬운 마음을 다독인다. 내일 해야 될 일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구글 캘린더를 열어 확인한다. 내일 퇴근 전에 투두리스트에 적힌 업무를 쳐낼 수 있을까. 오늘도 오후 네 시쯤 되자 급격히 당이 떨어져 할 일 한 개를 내일로 미루었다. 한 해가 다르게 늦은 오후가 되면 체력이 저하된다. 머리도 잘 안 돌아간다. 아까 해결하지 못했던 스캔 방법에 대해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든다. 네이버 검색창을 열어 ‘갤럭시S25로 문서 스캔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창밖의 풍경을 보며 머리를 쉬게 하고, 버스에서 잠시 눈을 붙여보고자 했던 나의 계획은 점점 멀어진다. 이러면 안 된다. ‘노동자 마인드’- 퇴근 후에도 계속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는 내려놓아야 한다. 이미 일터에서 충분히 긴장한 채로 최선을 다해 제 할 일을 하고 왔다. 지금은 심신을 이완의 상태로 전환해야 한다.
오늘 하루 동안 누리지 못했던 여유ㅡ 하늘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하기, 좋아하는 음악 들으며 상념에 잠기기ㅡ를 가져야 한다. 여전히 머릿속에는 찾아봐야 할 것, 해야 할 것들이 뭉게뭉게 떠오르지만 애써 무시해 본다. 이어폰으로 디즈니 OST 음악을 들을까 하다 (경제적으로든, 일 적으로든) 도움이 되는 유튜브 영상을 듣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차차, 이게 아니지. 자기 계발을 위한 강박을 내려놓기로 했지. 그냥 사람 사는 얘기를 나누는 팟캐스트를 듣는다. 창문에 머리를 기대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언제 어디서 읽었는지 들은 건지 기억은 안 나지만, 버스에서 창문에 비치는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명상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제야 명상에 좀 잠기려는데 어쩐지 눈꺼풀이 슬슬 무거워진다. 참을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진다. 그 후로 버스에서 열심히 헤드뱅잉 하며 잔 듯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곧 내릴 곳이었다.
매번 버스를 탈 때마다 다짐 아닌 다짐을 한다. 버스를 올라탄 순간 개인의 ‘나’로 돌아가 회사 일은 잊자고. 발전해야 하고, 업계 진행 상항을 알아야 하는 모든 강박-에서 벗어나자고. 버스 안 창가 곁에서 풍경을 감상하며 ‘지금, 이 순간’을 여유롭게 즐겨보자고. 스스로에서 쉼을 주는 시간은 중요하니까.
그러나 매번 쉽지 않다. 내 손은 구글 캘린더앱을 이미 누르고 있다. 오늘 놓친 것, 내일 할 것 등을 다시 확인한다. 내려놓으려 해도 쉽게 전환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계속 다짐한다. 회사 일은 되도록 생각하지 않기로. 죽기 전에 핸드폰으로 스캔 방법 검색 하나 못한 것이 후회되지는 않을 것 같다. 순간에 깨어있고 즐기지 못한 것을 후회할 것 같다. 창밖으로 보이는 계절과 사람의 모습을 눈에 담아두지 못한, 그런 것들을 후회할 것 같다. 그런 의미로, 내일도 퇴근할 때는 버스를 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