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없는 간략한 감상
총평
모래의 유화, 진동의 교향곡, 그리고 영웅주의의 타락성에 관하여
평점
"생각보다 괜찮은데?"
〈듄: 파트 2〉를 보고 영화관을 나오며 함께 감상했던 지인에게 처음 한 말이다. 비록 〈듄: 파트 1〉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어도, 그 뛰어난 작품성의 수준을 속편에서까지 그대로 유지하는 판타지 장편 영화는 드물다. 그래서 한동안 일부러 아무런 기대를 가지지 않았었다. 그 어떤 스포일러도 당하지 않으려 애썼고, 심지어 영화 시놉시스조차 일부러 읽지 않았다. 원작 소설이 존재하는 영화의 시놉시스를 접하게 되면 자연히 대강의 줄거리를 예상할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원작 소설과 영화를 머릿속으로 비교할 수밖에 없고, 원작 소설 팬의 입장에서 영화화 작품을 봤을 때는 항상 어딘가 미묘한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실망하는 것이 두려워 애초에 아무런 기대를 가지지 않으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뇌 빌뇌브와 한스 짐머는 이번에 나 같은 관객의 소심한 기우를 비웃듯 아예 새로운 전설을 쓰기로 작정했던 모양이다. 부담스러워진 티켓 가격과 저렴해진 서비스로 인해 한때는 친숙했던 영화관이 더는 만만한 장소가 아니게 되자, 관객들은 자연히 영화관에서 '볼 만한' 영화만을 찾게 된 냉담의 시대다. 그러나 가장 냉담한 관객들마저 〈듄: 파트 2〉가 영화관에서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개 동의할 것이다. 이 영화는 뛰어난 각본과 세밀한 연기 그 이상으로, 우리 관객들에게 매우 특별한 시청각의 경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이하 스포일러 없는 짧은 감상 시작.
(단상에 가까운 본 글은 훗날 좀 더 다듬어진 원고가 될 수 있습니다.)
- '그 녀석'이 너무나도 빠르게 이름을 갈아치우기에(영화 보면 무슨 뜻인지 아실 듯하다) 지나치게 전개가 빠르다는 생각은 들지만, 본래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들이 영화화될 때는 으레 항상 '지나친 급전개다'라는 평을 듣곤 하지 않는가. 이 정도면 꽤 준수하다고 본다. 오히려 전반적인 스토리가 매우 빠르게 흘러가기에 속도감 있는 전개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취향일 수도 있다. 물론 원작 소설의 팬들은 잘린 내용이 많아서 아쉬운 마음도 들겠지만, 원래 영화는 기나긴 소설 내용을 어떻게든 압축해야 하니 당연한 일이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반지의 제왕〉 실사영화 시리즈를 꼽을 수 있는데, 물론 나도 실마릴리온 소설을 재밌게 읽은 톨킨의 팬이지만 결국 그토록 압축한 영화 시리즈도 명작으로 남지 않았던가.
- 전반적으로 영화의 메시지가 꽤 뚜렷한 편이라고 느꼈다. 사실 아주 대놓고 노래를 부르는 수준이다. 최근 개봉작 영화들 틈을 헤치고 화려하게 등장한 〈듄: 파트 2〉가 우주 행성 모양의 모랫빛 기타를 든 채 마치 디즈니 영화 뮤지컬 장면처럼 춤추며 노래를 부르는 기분이랄까.
"오, 종교 근본주의는 정말로 위험해"
"1만 년의 인류가 이룩한 게 결국 독재 국가라니"
"극단적 종교 메시아는 사회의 핍박과 배척으로부터 자라나"
"영웅주의를 조심해, 우리를 망가뜨릴 거야"
- 사막과 빛과 금속의 발레는 아름답다. 그러나 그 미의 순간을 제대로 포착한 영화는 드물다. 이번 〈듄〉영화 시리즈는 그 찰나를 긴 호흡으로 잘 담아낸 몇 안 되는 영화들 중 하나다. 사막은 매 순간 변화하지만 그 사막의 끝은 영원해 보이는 것처럼. 당신은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를 기억하는가.
- 젠다이아와 오스틴 버틀러의 돋보이는 연기력. 레베카 페르구손은 워낙 뛰어난 배우였으니 그렇다 치지만, 짧게 등장했던 레아 세두까지도 훨씬 나아진 연기력을 보여준다.
- 〈듄: 파트 2〉의 시청각 경험은 특별하다. 마치 낮게 깔리는 허밍 같은 OST는 영화 내내 미묘한 진동의 떨림을 가져다주며, 사막의 빛과 그림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영상미는 지극히 단조로워 보이는 배경 안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역동적이고 다양한 순간의 색채들을 보여준다. 전작 〈듄: 파트 1〉이 '압도적임'을 추구했다면 이번에는 '장엄함'을 잘 표현해 냈다. 마치 압도적인 스케일로 찍어 누르려는 듯한 전작의 영상미보다는, '이 세계관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꾹꾹 눌러 고농도 압축해 담아낸 듯한 〈듄: 파트 2〉의 미장센이 개인적으로는 훨씬 취향이었다. 드뇌 빌뇌브의 놀라운 역량이 만들어낸 변화, 그리고 야심 찬 발전.
이 외에도 극 중 여러 장면들에 대한 단상과 고찰들이 있긴 하지만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되므로 생략하고, 해당 내용은 다른 포스트에서 다룰 예정이다. 〈듄: 파트 1〉에 이은 〈듄: 파트 2〉의 총평은 곧 마무리 지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