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상의 전환 (2020.08.21)
안녕하십니까.
코로나19로 어수선한 요즘이지만, 그래도 평상심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일부 종교인의 모습을 보면 관연 인류가 진보하고 있나 의심이 되기도 합니다. 코로나 검사로 고생하고 있는 의료진에게 ‘너도 옮아봐라’하며 침을 뱉었다는 사람의 기사를 보고 나면 과연 저런 사람에게까지 인권이라는 게 필요한 건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래도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고, 범죄자에게도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무얼까요?
사실 19세기까지도 노예제도가 이어져 왔다고도 하고, 얼마 전까지도 피부색, 종교, 성별, 이데올로기, 성적지향 등의 차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고 학살도 당하고 감옥에 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18세기 후반 ’인권‘이라는 개념이, 사람들 사이의 ’공감의 울타리’가 확장이 된 것일까요? 수 만년의 시간 동안의 자연스러웠던 차별이 17, 18 계몽사상이 대두했다고 해서 어떻게 바로 바뀌게 되었을까요? 100년에서 200년 기간 동안 모든 사람이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이렇게 올라간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티븐 핑거 하버드 대학교 교수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는 책에서 이 이유를 17세기 인쇄 기술의 발전과 책 생산량의 증가로 대답하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타인의 삶을 간접적이나마 경험해 보고, 그리고 공감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의 권리도 인정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톰 아저씨의 오두막 집>이라는 소설이 미국 노예제 폐지에 불을 붙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갑자기 뜬금없이 위와 같은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인권 개념의 확장이 인쇄기술의 발전이라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이유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면, 좋은 기업문화에 대한 해답도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새로운 담을 유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 생각을 공유하고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모든 구성원이 회사를 이해하고, 회사에 위기상황이 닥쳐서 마치 본인이 주인인 것처럼 일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구성원 모두가 경영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보고 공감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올바른 조직문화를 위해서는 더욱더 투명하게 회사 상황에 대한 정보 공개가 필요하고, 의사결정이 어떠한 이유로 어떤 방식으로 이뤄 지나에 대해서 공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부문 간의 더 원활한 협업을 위해서도 우리의 업무에 대한 정보와 과정을 모두 과감하게 오픈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혹 모를 보안이슈나 기타 생각지 못한 문제들이 발생하더라도, 구성원을 신뢰하고 먼저 정보가 과감히 공유되는 것이 더 효용성이 큰 것은 아닐까요? 그런 오픈된 시스템을 만드는 게 다양한 활동과 교육, 이벤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직업병 마냥 별로 연관되지 않는 이야기들도 자꾸 업무로 연결시키고자 하는 강박은 아닐까 스스로 걱정도 합니다. 하지만 어수선한 세상에서 평정심을 찾는 것은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은 아닐까 하여 더 열심히 연결하여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건강 주의하시고 조심하시되, 그렇다고 너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거나 걱정만 하지 마시고, 힘든 시기지만 그 가운데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 힘내서 이 시기를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