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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희 Mar 27. 2023

[뮤지컬]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

에바 호프, 당신이란 책을 제대로 읽어봐

나는 누구일까.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건 무엇일까.

출처: 알앤디웍스
공연장: 대학로 유니플렉스 1관
공연 기간: 2023.03.16 ~ 2023.06.11
주최: 알앤디웍스
러닝타임: 110분


*일부분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뮤지컬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은 프란츠 카프카의 미발표 원고를 둘러싼 이스라엘 국립 도서관과 ‘호프’의 재판을 모티프로 삼은 알앤디웍스의 창작 뮤지컬이다. 뮤지컬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뮤지컬의 주인공은 ‘원고’가 아닌 ‘호프’의 인생이다. 에바 호프가 왜 원고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그 원고가 호프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원고가 그녀의 삶에 등장한 이후로 호프의 인생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렇게 이 이야기는 호프의 인생을 따라 흘러간다.


그리고 우리는 에바 호프를 통해, 그리고 또 다른 에바 호프 원고 ‘K’(K는 호프의 원고를 의인화한 캐릭터이다)를 통해 그녀의 삶을 함께 살고 결국 나의 삶에도 위로를 받는다.


에바 호프는 원고가 마치 자신인 것처럼 행동한 나머지 진짜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원고를 빼앗기려고 하지 않았고 남들이 말한 ‘미친년 호프’처럼 미친 듯이 원고만을 바라보며 살았다.


k는 그러한 그녀와 평생을 함께 했다. 그리고 그런 K만이 진정으로 에바 호프를 이해할 수 있었고 에바 호프 자신의 삶을 찾기를 바랐다. 법정에서 사람들에게 지탄받는 에바 호프를 구해주는 건, 그리고 그런 호프에게 진심을 담아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하라고 말해주는 건 오직 K뿐이다. 어쩌면 원고를 지키기 위해 진심이 아닌 말을 내뱉는 에바 호프가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k가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K의 말은 에바 호프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위로하고 있었다. ‘넌 수고했다, 넌 충분했다, 넌 살아냈다, 늦지 않았다.’


출처: 알앤디웍스

에바 호프,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 마리가 왜 그렇게 원고에 목숨을 걸고 살아왔는지 처음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원고가 뭐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원고만을 바라보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녀들에게 남은 건 ‘오직’ 원고였다. 모든 게 다 떠나가고 본인이 만신창이가 되더라도 그 상황에서 그녀들에게 남아있던 건 오로지 원고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원고를 놓칠 수 없었다. 그렇게 마리와 호프는 자신의 삶을 잃어버렸다.


작품의 말미, 그녀가 원고를 보내줬을 때 그녀는 비로소 그녀의 삶을 찾았다. 원고가 있어야만 중요한 사람이 되며 행복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에바 호프는 ‘에바 호프’가 되었다. 우리 또한 그렇다. 명예, 돈, 학벌에 집착하며 그것들을 갖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치부하곤 한다. 나는 무언가가 없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도 많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우린 우리이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고, 이걸 알았을 때 비로소 진정한 ‘나’가 될 수 있다.


“나는 누구일까”, “나를 나로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리고 그 답을 찾은 순간. 누군가의 인생이 바뀌는 순간, 그 순간이 언제든 그건 늦지 않았다. 진정한 행복은 외부의 자극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내가 붙잡고 있는 그 어떤 것도 결코 나 자신보다 더 가치 있지 않다. 난 지금 잘 살아가고 있다. 틀리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일 때 가장 빛난다.


‘저 혼자 추운 겨울을 살던 길 위의 나그네는 오늘, 드디어 집으로 돌아간다. 마침표. 끝.’


지금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도대체 난 누구인지 고민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 작품을 추천한다. 끊임없는 고민의 끝에 희망이 있길 바란다. 우린 언제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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