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멜로를 먹기에 가장 좋은 시간
십 년 만에 발을 들인 서울역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강산이 한 번 변할 시간 동안 나를 비껴갔던 이 공간은, 다시 마주한 순간에도 변함없이 수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역사는 생기로 가득했지만, 그 생기 이면에는 고단한 삶의 흔적들이 섞여 있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장 사이로 가끔 코끝을 스치는 시큼한 쉰내. 누군가는 어젯밤의 고단함을 벗어던지지 못한 채 서둘러 길을 나섰을 것이고, 누군가는 단정하게 여민 겉옷 속에 미처 갈아입지 못한 어제의 땀을 숨기고 있을 터였다. 습하고 무거운 공기, 그리고 그 냄새는 예민한 아침의 감각을 건드려 이내 두통으로 번졌다.
나는 도망치듯 시원한 곳을 찾았다.
그리고 간절하게 찬 커피 한 잔을 떠올렸다.
메뉴판 앞에 서자 오천 원.
평소 마시던 편의점 커피에 비하면 서 너배나 비싼 몸값이다. 잠시 망설임이 고개를 들었다.
가격이 과하 싶다.
하지만 카드를 체크기에 밀었다.
머릿속에는 오래된 심리학 이론 하나가 스치고 지나갔다.
‘마시멜로 실험.’
지금 당장 눈앞의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으면 나중에 두 배로 보상받는다는 이야기.
우리는 평생을 그 '나중'이라는 신기루를 위해 오늘을 인내하며 산다.
아끼고, 모으고, 숨기는 것이 미덕인 세상에서 사막여우처럼 소중한 것들을 모래 속에 묻어두기 바쁘다. 하지만 정작 그 모래를 다시 파헤쳐 마시멜로를 맛있게 먹는 법을 가르쳐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사막여우가 묻어두었던 먹이는 찾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게 태반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부자라 불리는 이들조차 자신이 가진 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헤매다 생을 마감하곤 한다.
그래서 떠도는 말이 거지가 죽어도 남은 돈이 있다는 소리다.
날은 덥고, 여전히 쉰내는 슬쩍슬쩍 풍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내일의 마시멜로 두 개가 아니라, 당장 이 머릿속의 안개를 걷어내 줄 차디찬 액체 한 모금이다.
조금 과한 금액일지 모르는 오천 원이지만,
그것은 현재의 나를 구원하기 위한 가장 명확하고 정직한 소비였다.
차가운 컵을 타고 흐르는 결로가 손바닥에 닿았다. 한 모금 들이키자 비로소 서울역의 소음이 배경음악처럼 아득해졌다.
오늘 나는 오늘 먹을 마시멜로를 내일로 미루지 않았다.
가장 정직하게 나를 대접한 이 한 잔의 커피야말로, 내가 오늘 서울역에서 나를 위해 마신 정직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