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 없는 계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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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 보니 낯선 계산법이 시작되었다.
무엇을 더 만들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남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먼저 셈하게 된다.
젊은 날의 계산은 단순했다.
월급이 오르면 기뻤고 상여금은 숨통을 틔워주었다.
미래는 팽창하는 풍선처럼 더 커질 가능성으로 열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미래는 결이 다르다.
늘어날 것보다 줄어들 것을 먼저 헤아리게 된다.
기력도, 기회도, 통장의 잔고도 이미 정점을 지났기 때문이다.
요즘은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잦다.
아침마다 억지로 시동을 거는 낡은 기계처럼 마음을 추슬러야 한다.
하지만 은퇴라는 해방감 뒤에는 늘 한 문장이 따라붙는다.
“그다음은?”
노후가 불안한 이유는 돈 때문만은 아니다.
진짜 이유는 언제까지 살지 모른다는 데 있다.
삶에 유통기한이 찍혀 있다면 계산은 쉬울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해약일이 적혀 있지 않은 통장이다.
예상치 못한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병원비에 대한 두려움은 숫자를 넘어 존재의 질문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젊음의 시간은 부족해서 애달픈 축복이었는데
예순의 시간은 그 막연한 길이 때문에 부담이 된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수명 그 자체가 아니다.
삶에 대한 통제권을 잃는 순간이다.
경제적 빈곤보다 무서운 것은
선택권이 사라진 채 타인의 결정에 맡겨지는 삶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계산기를 두드린다.
적었다가 지우고, 다시 적는다.
완벽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건 모르는 일이다.
애초에 인생은 계산으로 완성되는 장부가 아니기도 하고, 끝을 알고 사는 것도 아니라서,
매일을 선택하며 사는 것이다..
불안은 결핍의 증거이긴 하다.
남은 시간을 헤아리겠다는 것도 무리한 일이고,
시간의 주인이 되려는 것도 무리한 일이다.
만기 없는 계산서는 결국
얼마를 남겼는가가 아니라
어떤 자세로 지불했는가를 묻는 문서일지 모르겠다.
예순의 미래는 정답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 써 내려가야 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그 질문을 포기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