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으로 읽는 슬픔의 풍경.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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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비움과 검은 침묵
죽음은 늘 같은 얼굴로 오지만,
그것을 감싸는 색은 시대마다 달랐다.
인간은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 앞에서 색이라는 언어를 빌려 하늘의 뜻을 묻고,
산 자의 도리를 구해왔다.
중국의 옛 왕조들은 스스로를 오행의 흐름 속에 두었다.
목·화·토·금·수의 덕을 잇는다는 선언은 곧 국가의 색으로 드러났다.
특히 진나라가 택한 흑색은 죽음의 그림자가 아니라 질서와 권위의 표식이었다.
그들에게 색은 슬픔의 표현이 아니라 통치의 언어에 가까웠다.
반면 조선의 상복은 권위보다 절제를 택했다.
성리학을 나라의 뼈대로 삼았던 조선은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낮추는 것을 예로 삼았다.
상복은 가공되지 않은 흰 삼베였다.
빛나는 백색이 아니라, 모든 장식을 덜어낸 뒤 남은 거친 무색(無色).
그 흰색은 꾸밈이 아니라 비움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비워진 색’으로 슬픔을 견뎠다.
‘백의민족’이라는 말은 단순한 복식의 기록이 아니라,
슬픔을 과장하지 않으려는 태도의 이름이었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이를 보내며,
산 자 또한 자연의 빛 아래 자신을 낮추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장례식장은 검은 물결로 채워졌다.
검은 양복과 치마, 검은 넥타이.
이 색은 오행의 철학에서 온 것도,
오래된 토착의 관습도 아니다.
근대화의 흐름 속에서 서구의 형식이 스며들며 엄숙함과 통일성을 상징하는 검은색이 표준이 되었다.
검은색은 슬픔을 정돈한다.
흩어질 감정을 형식 안에 묶어 세운다.
흰색이 자연을 향한 비움이었다면, 검은색은 문명 속의 침묵이다.
하나는 순응의 색이고, 다른 하나는 질서의 색이다.
결국 색은
그 시대가 죽음을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한 고백이다.
슬픔의 깊이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것을 감싸는 방식은 바뀌었다.
거친 삼베의 흰빛은 이제 기억 속에 남고,
매끄러운 검은 양복이 장례식장의 침묵을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