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음

by 박희정

보이지 않는 깊이. ㅡ



인간은 무엇을 가장 두려워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알 수 없다’는 사실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아직 가보지 않은 내일이라는 길 앞에서 주저하는 존재도 인간이고,

인적 끊긴 산길이나 깊은 동굴 속에서 본능적인 불안을 느끼는 존재도 인간이다.

사실 어둠이 사람을 헤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적막 속에 서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을 경계하는 마음은 오랜 세월 생존을 위해 몸에 새겨진 본능의 무늬이기 때문이다.


그 보이지 않는 깊이가 얼마나 선명한 공포가 되는지,

어린 시절 저수지 한복판에서 만져 보았다.


마을 저수지에서 공기를 가득 채운 비료 포대를 타고 놀던 때였다.

입구를 꽁꽁 묶었다고 믿었지만 그 틈으로 바람은 빠져나갔고,

포대가 가라앉으며 중심을 잃었다.


나는 저수지 한복판으로 빨려 들었다.

바로 위에 있어야 할 수면은 아득히 멀어졌고,

발밑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둠이 나를 잡아당겼다.

사실 그 저수지는 어른에게는 가슴께도 오지 않는 깊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의 몸으로 감당하기에 그곳은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심연이었다.


어디까지가 바닥이고, 어디서부터가 끝인지 가늠할 수 없는 공포.

나를 짓눌렀던 것은 물의 무게보다,

발을 끌어당기는 저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깊이’가 나를 압도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후에도,

저수지 위에 서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인생이라는 거대한 물줄기 속에서,

의지만으로는 끝내 통제할 수 없는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발밑을 잡아당기던 그 서늘한 어둠의 감각을 느끼곤 했기 때문이다.


지나고 보니,

그 알 수 없음이 남긴 것이 두려움뿐이었던 것은 아니다.

세월은 같은 어둠도 조금 다르게 보이게도

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아래에 공포만 웅크리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른 말로 하자면 아직 말해지지 않은 풍경 또한 있으리라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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