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어떤 날엔 식물들에 눈이 가는 날이 있고
커튼에 뭍은 얼룩이 사람 얼굴처럼 보여 자꾸 신경 쓰이는 날이 있다.
부정적인 것들에 주의를 빼앗기는 경우도 많지만
오늘은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고 싶다.
유럽을 여행하던 첫 해엔 장식 미술에 끌려 구시가지에 가득 새겨진 장식을 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성당은 그런 장식미술의 정점을 찍은 곳으로
여러 나라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성당을 가는 것은 필수코스가 되었다.
종교적 신념 때문도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단발적 기도를 하러 간 것도 아니었다.
그저 성당을 메운 곡선과 상징,
화려한 금장식을 입은 아름다운 기하학의 완벽한 조화를
보는 것이 그렇게도 좋았다.
사진엔 내 모든 감각을 전율하게 만드는 공감각적인 부분을 담을 수 없다.
오로지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가끔은 ADHD가 참 도움이 되는 때가 있는데
아름다움으로 내 주의를 끈 무언가를 깊게 파고들며 느낀 감각활동이
깊게 새겨지고 기억으로 오래 남는 경우다.
언제든 떠올려도 마치 그때로 돌아간 듯한
시간 여행을 한 듯한 느낌.
런던을 여행하던 여러 날이 지나고 있던 어떤 때엔
유독 색깔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빨간 버스, 빨간 우체통.
런던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빨간색을 많이 기억한다.
나 역시도 빨간색이 눈에 담기긴 했지만
그보단 빨간색을 돋보이게 해주는
무한한 무채색의 변주에 마음과 눈이 끌렸다.
오래된 벽돌 건물 한 면에서 보이는 무수한 검은 계열과 붉은 계열의 무채색들.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가득 붓질해 놓은 차갑고 따듯한 무채색의 조화들.
검은색 계열의 현대식 인테리어와 흰색 고딕체 간판의 세련된 디자인 등등
눈에 띄는 원색들을 뒤에서 은은하게 받쳐주고 있는 모습이
든든한 지원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학교 땐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컬러를 쓰기 시작하면
결과물은 항상 오방색 무지개 같은 결과물이 나왔다.
오방색을 비하하는 게 아니라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중구난방으로 겹쳐져 각기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 한데 모인 격이 되었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싶다.
하나의 작품 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하려면
주위가 끌리는 대로 모든 것을 표현하면
그 순간 메시지와 교감이라는 작품성의 중요한 요소를 잃게 된다.
빨간 이층 버스를 돋보이게 해주는 주변의 많은 무채색처럼
주연을 돋보이게 하는 수많은 엑스트라와 조연들처럼
가끔은 희생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깨닫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무언가에 주의를 빼앗겨 흥미를 잃거나 전하고자 하는 것들이
변질되고 복잡해지는 것들을 순간 바로잡는 것이 힘들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떤 창조물을 만드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
하나의 메세제를 전달하기 위해 조금씩 다른 작품들을 전전하며 돌고 돌아
결국은 의도한 대로 완성을 시키는 그런 사람 말이다.
나의 하루 계획표엔 많은 것들이 적혀였다.
하루에는 다 소화해 내기 힘든 것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그날그날 나의 주위가 끌리는 것들을 골라 몰입하고
여러 날에 걸쳐 투두리스트를 완성해 나간다.
그렇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것.
관계에서든 작품에서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하자 하는 것은 가슴에 항상 새겨두고 임한다.
주의력 결핍으로 몇 년간에 걸친 나의 유럽 여행은 그렇게 완성이 되었다.
내 기억에 그렇게도 아름답고 생생하게 남은 이유.
많은 감정들과 이미지들이 겹쳐진 힘들기도 했던 여행이었지만
결국은 소중한 기억과 교감이라는 간결한 메시지로 귀결되었다는 점에서
나의 여정은 성공적이었다.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저 나답게 살며 때를 기다리는 것.
진득한 인내도 고군분투도 아닌
내게 주워진 일을 꾸준하게 즐기며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나가는 것.
그렇게 좋은 현재의 순간들이 남는 여행을 만들어 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