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ADHD일리가 없다.

ADHD를 늦게 발견한 이유

by 재즈트리

1. 인정하지 않아.

ADHD였음을 늦게 발견한 이유 중에 하나는

길게 이어진 우울증으로 내 성격이 많이 가라앉았고 그대로 굳어진 탓이다.

그 때문이었는지 과거의 활발함과 명랑함의 연장선상에 있던 과한 행동들이

기억에서 오랫동안 사라졌다.

이를 깨닫고 나를 설명하기까지 지난한 세월과

켜켜이 쌓인 고통이 있었음을 말하고 싶다.


돌이켜 보면 어렸을 때부터 과한 행동과

우울함의 두 자아 사이에서 점점 고민을 키워가고 있었다.

온갖 심한 장난을 치며 마을을 휘젓는 장난꾸러기와

소용돌이처럼 몰아치는 감정의 난기류 속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다

너덜거리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 우울한 자아.


충동과 주의력 결핍의 두 변주 속 두 자아 사이를 오가며

나라는 사람은 진짜 무엇인지 혼란스럽고 괴로웠다.

어느 한쪽이 커지면 둘은 서로를 꾸짖기도 했고

때로는 서로를 회피해 가며 안과 밖에서 각자 스스로 몸집을 키우다가

어느 순간엔 분노나 폭식 같은 형태로 폭발했다.


외향적이고 장난꾸러기인 공허한 행동의 자리는 점점 우울함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바닥으로 처지기 시작하더니 더 이상 지기 힘든 커다란 상태.

이제는 나라는 사람을 정의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어렸을 땐 충동과 과잉행동을 꾸짖고 감추기 위해

차분한 사람인척 하거나 우울함을 동경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울증이 발병한 이후엔

우울하고 소극적인 자아를 감추기 위해 사회적이며

활발하고 쾌활한 사람인척하려고 했다.

그 어느 것도 정상은 아니었지만 인식할리 있겠는가.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고 스스로를 속였다.

과잉행동의 자아와 우울한 자아 모두 나라고 인정하기엔

내가 너무 싫고 억울한 마음이 들어서였는지 그래서 더 감추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일찍 멀리 서서 스스로의 문제를 발견하고 치료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의사 선생님께 나를 더 자세하고 솔직하게 설명하지 못했던 스스로가 참 미웠다.

나를 객관화하는 게 이토록 어렵고 복잡한 것이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2. 그래서 그것이 의사 선생님께서 나는 ADHD가 아니라는 진단을 내린 이유.

의사와의 형성된 메타포 안에서 할 수밖에 없었던 나의 거짓말들은 오진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정확하게 이 병이다라고 진단할 수 없었던 여러 병들이 있었고

이진단 저 진단을 오가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진단받았던 여려 병들은 서로 연관이 깊은 것들이어서

내가 ADHD라는 것을 피해가기에 충분했다.


3. 진단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부분인 경제적 활동이 정지된 것을 숨긴 이유

오랜 시간, 경제적인 부분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하지만 진료시간이 되면

돈 버는 일은 꾸준히 하고 있고

경제적인 부분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다는 뉘앙스로 말하거나

일중독으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

꾸준하진 않지만 그래도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되었었으니까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봤을 때 삶이 매끄럽게 흘러가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아직 꿈을 찾지 못에 (좋아하는 일이 너무 많아

이 일 저 일 시작한 일들이 너무 많았지만 끝을 맺는 일이 별로 없었다.)

번갈아 가며 도전하던 시기였고

꿈을 이루기 위해선 이 부분은 누구에게도 간섭받기 싫었다.


자신을 속인 것이 분명하다.

'당신은 어서 기본적 기반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시작하셔야 합니다'

라는 말이 내 귀에 들릴 일이 없었으면 했고

들릴까 봐 불안했다.(의사나 다른 사회적 활동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모두 해당된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지나갔다.

우울증이 닥쳐와 일을 하지 못하는 기간에는 당연히 경제적으로 문제가 되는 시기가 되었지만

의사 선생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고 그냥 평범한 일을 하고 있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기도 했다.(결과적으론 우울증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그리고 매번 일을 시작하고 끝매지 못하고 끝내버리는

이 반복되는 경험들을 계속이고 의사 선생님께 말씀드리기가 창피했다.

나는 또 실패했습니다라고 부족하고 무능력한 나를 보여드리는 것(자격지심)이

수치스러웠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진지하게 또 꺼내고 싶지 않았다.



4.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ADHD 진단표가 내게 해당이 안 된 경우


*무언가를 잘 잃어버린다.

거의 집에 있는 시간이 전부였기 때문에 물건을 잃어버릴 일이 없었다.

반복되는 고립의 삶에서 한정된 공간에 머물다 보면

물건을 잃어버릴 일이 없는 루틴이 생긴다.

할 일을 자주 잊는다고 하기엔 내게 주어진 일들,

아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은 티브이를 보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밥을 챙겨 먹는 일 말고는 특별한 일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잊어버릴 일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이 시기의 나는 본능대로 자극을 추구하는

충동적인 삶을 충실하게 사는 사람이었다는 면에서 ADHD가 확실했음을 알 수 있다.


*이야기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내가 이야기에 집중을 잘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중구난방이라거나 상대방이 말하려는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질 못했다.

그리고 그럴 필요를 잘 못 느꼈고

나중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긴 했으나


내가 신경 쓴 것은

말을 할 때 실수를 하거나 혹은 상대방이 나에게 말실수를 한 건가

혹은 나쁜 의도로 말을 한 것은 아닐까 등에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던 것 같다.


ADHD로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방어기제는

내 진실을 들키지 않는 대화,

사람들로부터 받는 상처를 받아쳐 넘기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고

돌이켜 보면 좋았던 관계에서에서도 매우 방어적이었던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숨기려는 것들이 들통나지는 않을까 하는

나도 모르는 불안감이 만든 괴상한 대화에 집중하느라

대화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새가 없었다.


나를 감추고 방어하느라 가려졌던 많은 대화들의 히스토리에서

나를 대했던 그들의 진심은 나를 위한 것,

따듯함을 나누려는 아름다운 의도였을 것이겠지만

난 잘 알아채지 못했던 것 같다.



*시작한 프로젝트나 일을 잘 끝내지 못한다.

오랫동안 하지 못하는 이유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꾸준히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나는 이토록 나약하게 태어난 것일까를 매번 자문하며

나를 탓하고 비난하고 슬퍼하고 고립되는 일의 반복을 겪다 보면

어느 정도 자포자기하게 되어 버린다.

그런 상황에서는 하루를 연명하기 위해 힘을 내는 것조차 힘들다.

처방받은 우울증 약이나 꾸준히 잘 먹으면 다행.

내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실마리나 해결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내게 남은 에너지와 여건에선 사치나 다름없다.


모든 것을 다른 시각에서 처음부터 봐야 하는 용기,

나를 더욱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내게 일어난 일과 문제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인정하는 일,

다른 사람들에겐 작고 시답지 않은 문제들이 내겐 이토록 크게 느껴지고

그것이 일을 지속하게 만들지 못하게 하는 일일까 하는 자책으로부터 벗어나는 일.

그리고 그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을 찾는 용기와 인내.(인간관계의 어려움)

어떤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후에 다른 일들과 기회가 계속 들어오기 시작할 때

왜 나는 그 기회들을 박차 버리고 또다시 피할 구멍을 찾아 숨어 들려하는 걸까.

그리고 모든 것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는 일.

그리고 그것이 내가 나약하기 때문이 아님을 이해하는 일.



이해하기 힘들고 어렵고 하기도 싫었어.


조금만 더 하면 바로 네가 찾던 그것이 내 앞에 보이는 순간이 올 텐데

남들이 그토록 바라던 일들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데.

왜 나는 또 떠나려 하는 걸까.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길래 이런 일들을 반복하는 걸까.


내겐 많이 버거웠던 것이 아닐까.

나와 같은 사람들이 편하게,

자신만의 일을 해내며 즐겁게 살기 위한 나의 세상은 과연 있을까.

그런 일이 정말 있는 것일까.


나라는 감옥을 탈출하는 것이

내겐 너무나도 커다란 산처럼 느껴진 것이 아니었는지.


그래 그만하자.


나는 ADHD일리 없어.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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