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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닝커리어 Aug 22. 2024

나의 길을 간다는 것

고등학교 위클래스에서 4년, 현재는 위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 모든 사례는 재구성하여 각색하였음을 밝힙니다.     

 


- 달팽이 집으로 들어간 영천이 -

고등학교 2학년 영천(가명)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태권도 품새 부문 국가대표 선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품새를 잡고 기합을 넣으며 절도 있는 동작을 하는 자신이 멋있게 느껴졌고, 실력을 쌓아 유소년 대표 자격을 얻기 위해 사전에 입상할 수 있는 대회에도 나가려고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자 부모님은 태권도를 그만하고 공부에 집중하라고 권유했습니다. 어렸을 때야 친구들도 사귀고 체력도 기르기 위해 도장을 많이 다니게 했지만 그만하면 충분하니 이제는 다른 교과학원을 등록하자고 다그쳤습니다.      


한편 영천이는 공부하는 데는 취미가 전혀 없습니다. 태권도에 재미를 붙이면서 공부에 손 놓은 지 오래되었고, 무엇보다 자리에 계속 앉아있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중학교 공부는 어려워졌고,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세상에 수학 같은 과목은 앞으로 별로 필요할 것 같지도 않은데 도무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도 않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관장님이 영천이의 실력에 대해 큰 호응을 해주지 않은 덕에 부모님은 반색을 표하며 영천이와 상의도 없이 태권도 도장을 끊어버렸습니다.      


이후 영천이는 게임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활약을 펼쳤습니다. 밤새워 게임을 하고 새벽 4, 5시에 잠이 들어, 엄마가 아침마다 깨우고 수십 번을 어르고 달래어 등교는 하지만 학교에서는 종일 엎드려 잠만 잤습니다. 고등학교에 와서도 그 생활은 계속되었습니다. 상담 시간을 잡아도 잠만 자는 통에 툭하면 잊어버리기 일쑤였고, 급식도 먹지 않으며 점심시간에도 자고, 친구들이 이동수업을 가면서 교실 문을 잠그고 가도 계속 잠의 세계에 빠져 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상담을 의뢰하셔서 상담실에 오기는 했는데 본인은 도움받고 싶은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3회기까지는 그럭저럭 태권도, 가족, 게임 얘기도 곧잘 하더니 그 뒤로는 아예 오지를 않아 교실에 찾아가서 깨워도 봤는데, 상담을 받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무슨 이유인지 물어보아도 ‘그냥요’라고만 하며 저를 피했습니다.      

아니, 지가 첫 상담 마치고 따뜻한 선생님을 만나 얘기 나눠서 좋다고 해놓고선, 이런 배신을 때리기 있기 없기!! 

속상했습니다.     


지난 상담시간에는 분명 뭔가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는데...

앞으로 상담목표를 설정해서 차근차근 도전해 보고 컴퓨터 관련 자격증도 하나 취득하게 도와주고, 그러면 작은 성공 경험이 될 거라고, 어쩌면 취업이든 대학이든 뭔가 욕심이 생기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말이죠...

무슨 일이 있었을까? 되짚어보았습니다.      


지난 회기의 상담쌤 피셜,

“이제 수면 패턴도 좀 바꾸고 게임 말고 다른 걸 한번 찾아보자, 너는 운동을 좋아하고 철학적으로 사색하는 강점이 있으니까 할 수 있는 게 많을 거야. 지금까지와는 다른, 진짜 네가 원하고 바라는 게 무엇인지 같이 고민도 해보고... 네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작은 역할이라도 할 수 있다면 좋잖아, 맘먹으면 못할 일이 뭐 있어, 한번 시도해 보자, 응?”     


어떠세요,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혹시 눈치채셨나요?     

3회기 상담에서 저는 영찬이를 존중하는 척하면서 저의 바람을 담아 세상이 바라보는 프레임에 맞추어 끌고 가는 전형적인 어른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던 것이죠. 

그것은 다시 말해서 

“지금의 너는 별로야, 이대로는 안돼, 부족해. 내 뜻대로 좀 움직여!”라고 

영찬이라는 존재를 부정하고 다른 사람이 되라고 강요한 것과 다를 게 없는 것이지요.      


아이들은 자신에 대한 기대를 귀신같이 알아챕니다. 지금은 자신을 신뢰하지도 못하고 변화에 대한 준비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 별로 불편한 것도 없습니다. 

게임 실컷 하고 학교 와서 잠만 자도 답답한 게 없거든요. 그런 와중에 상담쌤이 도전이니 어쩌니 하면서 변화를 들이대니 백배로 불어난 부담감을 안고 달팽이집에 쏙 들어가 버리듯 숨어버린 것이지요.  내담자 뒤에서 조심스레 따라가라고 배웠는데 늘 앞서만 가려고 하는 조급한 저를 보게 되었네요.      


고립된 생활에서 벗어나려는 시점이나, 중독에 빠져있다가 회복으로 가는 과정에서, 부모님의 큰 기대는 그 무게만큼 자녀들에게 큰 불안과 부담을 주게 됩니다. ‘뭔가 이제 좀 달라지겠지’ 기대했는데 기대가 무색하게 금세 이전으로 돌아가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너무 쉽고 단순하게 생각해서 하나의 작은 신호로도 ‘우리 아이는 달라졌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거야’라고 기대를 가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부모의 가치와 타인의 시선을 우선시하는 ‘가치의 조건화’로 아이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네가 ~해야 너를 인정해 줄 거야’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받게 되면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감추고, 세상이 조건으로 내건 슬로건에 맞추고자 애를 쓰다가 마침내는 다 놓아버리며 혼란과 우울의 늪에 빠지기도 합니다.     


기대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기대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저는 변화가 더디 일어나는 것이 급변하는 것보다 어떤 면에서는 안전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대하는 순간, 내 바람이 앞선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아이도 생각할 시간, 준비할 시간을 가지며 찬찬히 일어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우리가 끈기를 배우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던 상담쌤 -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연극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제가 가진 재능이 연극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즉흥적으로, 애기를 등에 업은 엄마 역할을 하며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대사를 읊어 동아리 부원으로 합격을 했습니다. 이후 학예발표회에서 ‘방황하는 별들’이라는 청소년 연극을 올리며 적성을 찾았고, 연극영화과에 진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당시 엄마는 신발공장에 다니면서 혼자 힘으로 저를 양육하며 힘든 시절을 보내고 계셨지요. 


엄마에게 제가 

“엄마, 나 연극배우 되고 싶어, 연극영화과 갈래”라고 했을 때 엄마가 뭐라고 하셨을까요?

“우리 딸, 훌륭하구나, 그래, 엄마는 너의 꿈을 응원한다~”라고 했을 리 만무하지요.      


기가 차서 분통을 터트리며 ‘니 얼굴에 무슨 배우를 하냐, 말이 되는 소리냐’며 온갖 막말과 욕을 퍼부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 장면이 맥락상 자연스럽네요. 훗...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엄마와 으르렁대며 싸웠습니다. 그 시기의 특성상 저의 반항과 고집은 극에 달한 상태였지요. 무엇보다 저는 제가 확신했던 제 달란트로 꼭 무언가 이루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은 왜 하나뿐인 딸이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지, 또 한 사람은 왜 하나뿐인 엄마가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지 양극단에 서서 서로를 비난하고 증오했습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지원이 없이는 연극영화과에 진학할 수 없었습니다. 연극영화과 대입 실기를 보려면 이전부터 레슨을 받아야 한다고 들었거든요. 담임선생님도 철없는 소리 하지 말고 고생하시는 엄마를 봐서 가까운 국립대학에 진학하라고 종용했습니다.     

 

결국 포기하게 되었고, 적성이나 흥미를 고려하지 않은 채 엉뚱한 전공을 택하고는 다른 지방의 국립대학교에 진학을 하며 그 도시를 떠났습니다. 제게 우울과 슬픔만을 주었던, 암울했던 청소년 시절의 그 도시 그리고 엄마. 모두 지긋지긋했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연극동아리 활동을 하며 못다 이룬 꿈을 펼쳤지요. 예나 지금이나 노안인 저는 늘 엄마나 할머니 역할을 맡으며 그래도 연기를 곧잘 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연기를 할 때는 제가 오롯이 존재하는듯한 충만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극배우로 전향할 자신은 없었고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며 마음은 정처 없이 떠돌았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여군 장교 낙방, 취업 실패 등 일련의 사건들이 저를 패배자로 몰아가며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는 매우 오랫동안 지속되었지요. 저뿐만 아니라 제가 만난 많은 내담자에게서 저와 유사한 히스토리를 접했습니다.      


청소년기 진로에 대한 부모님의 반대는 세상과 자신에 대한 좌절로 이어져 나중에는 부모에게 복수하기 위해 막 나가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원망과 분노를 간직한 채 살다 보니 아이러니하게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삶을 위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을 텐데, 그들에게는 거부당한 경험이 워낙 강렬하여 좁은 시야 밖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 손흥민 같은 축구선수가 될래요!! -

만약 아이가 축구선수가 장래희망이라며 유소년클럽에 들어가고 싶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부모님 생각에는 ‘우리 애가 키도 작고 덩치 큰 애들 사이에 치이다가 다칠까 걱정도 되고, 운동신경이 그리 뛰어난 것 같지도 않은데’ 싶다면 어떻게, 반대하시겠습니까?      


“네가 무슨 축구를 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공부나 해!”

“야 네가 축구선수 하면 나는 이강인이다!”

“축구하면 돈 많이 들어, 너 돈 있어?! 안 그래도 요즘 스트레스받는데 도대체 너 왜 그러냐? 정신이 있어 없어!!”     


정도의 차이지, 이런 류의 폭언은 관계를 악화시키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찬성과 반대의 얘기가 아닙니다. 즉각적으로 비난하거나 절대 찬성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닌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보자는 것입니다.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축구선수가 되고 싶은지 왕성한 호기심을 갖고 질문하며 알아가는 것이 핵심입니다.      


대화를 하면서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어떤 포지션에 관심이 있는지, 축구를 하면 무엇이 좋고 무엇이 힘들 것 같은지, 주위에 축구를 하는 선후배가 있다면 한 번 인터뷰를 해보는 것도 좋겠지요. 축구경기를 같이 보기도 하고 특정 선수들의 일대기가 담긴 책이나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나누고 나서 천천히 부모님이 염려하는 부분을 전해도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너와 함께 무언가를 공유하고 너의 마음에 가까이 닿기를 바란다'는 것을 전할 수 있다면, 아이가 축구를 시작하든 그렇지 않든 마음이 든든하지 않을까요? 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서 받는 격려와 지지. 그것이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근원적인 힘이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이가 축구를 좀 해보다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곧 다른 꿈을 이야기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고, 본인이 생각하고 판단해서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만으로도 소중한 경험이 됩니다.       


인간중심상담 이론의 대가 칼 로저스(Carl Rogers)라는 분이 제안한 개념 중에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내담자에 대해 어떠한 판단과 진단, 평가와 분석을 하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이지요. 이와 동일한 맥락의 언어 중 하나인 ‘비소유적 온정(non-possessive warmth)’이라는 단어를 저는 좋아합니다. 이 또한 통제하거나 소유하려 하지 않고 본질적으로 조건 없이 상대를 긍정(Yes)하는 것이며 상대를 수용하는 데 있어 어떠한 조건도 내걸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를 강조한 칼 로저스(2007) 자신도 인정받고 존중받을 때 꽃처럼 피어난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진가를 인정받고 사랑받은 사람은 아름답게 피어나며 자신만의 독특함을 발달시킵니다. 우리가 꽃처럼 인정받지 않았다고 해서 아이들도 똑같은 경험을 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Rogers(1957)의 말처럼 나부터 나를, 상대를, 무조건적으로 존중해 줄 때 생존과 성장을 위한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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