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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서조 Aug 27. 2024

『극한 갈등』 아만다 리플리 지음

분노와 증오의 블랙홀에서 살아남는 법

“전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음속이다.” UNESCO 헌장 서문. 이 책은 지구촌 전인류 누구나 읽고 실천해야 할 책이다. 인류 평화를 위해서!   

  

저자는 〈타임〉지 기자 출신이다. 수많은 취재현장에서 갈등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며 기사로 썼다. 이 책은 갈등 현장의 생생한 기록이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갈등’이라는 주제를 소설처럼 이야기로, 사례를 들면서 풀어간다. 재미있게 읽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존재한다. 갈등은 삶에서 늘 존재해 온 것이다. 인류는 갈등을 해결하고 단합하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며 발전해 왔다. 현재도 크고 작은 갈등이 지구촌을 뒤덮고 있다. 그러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폭력과 전쟁을 불러온 사례도 많다. 갈등이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대척점으로 폭발하는 것을 ‘극한 갈등’이라고 한다.     


‘극한 갈등’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고 상황은 점점 악화한다. 모든 사람을 유치하고 치사하게 만드는 전염병이다. 정작 당사자들은 극한 갈등의 수렁에 빠진 것을 전혀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무조건 상대방은 ‘죽일 놈’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인간이다.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여, 야가 대치하고 있는 국회가 모범 답안(?)이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일부 정치인들이 정치를 희화화하고 ‘극한 갈등’을 조장한다. 그 이유는 자기의 사리사욕을 위해서다.     


갈등은 ‘말’에서 촉발한다. 특히 집단을 이루어 대치하는 상황에서 폭발할 수 있다.

나와 다른, 우리와 다른 의견에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용납이 안 된다. 극한 갈등으로 가는 이유이다.


이때 ‘극한 갈등’을 피하려면 잠시 침묵과 함께 다음 세 가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 말을 꼭 내가 해야 할까?’

‘지금 당장 내가 그 말을 해야 할까?’

‘말’은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오해를 없애고 발전적인 대안을 제시하여야 한다.     


‘알아듣게’ 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알아듣게’ 말하려면 듣는 사람의 마음과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핵심은 경청이 불러오는 연쇄작용이 중요하다. 경청을 통해 시간을 확보하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이해할 수 있다. 비록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 책은 사람들을 이념의 갈등과 정치적인 반목, 그리고 집단 간의 복수극으로 몰아넣는 알 수 없는 힘에 관한 책이다. 우리는 이런 힘 때문에 동료나 현재, 혹은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정치인 생각으로 밤잠을 못 이루고 갈등에 사로잡힌다.     


건전한 갈등은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데 필요한 선한 힘이다.

좋은 갈등은 용서가 아니고, 항복과도 전혀 다른 것이다. 좋은 갈등을 겪는 동안에도 스트레스와 분노를 겪기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좋은 갈등은 결코 사람들을 웃음거리로 전락시키지 않는다. 좋은 갈등 상황에서는 누구나 모든 일에 항상 정답을 제시할 수도 없으며,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현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또 건전한 갈등은 자신을 보호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우리가 다 함께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특히나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건전한 갈등이 필요한 시대다.     


반면 고도 갈등High conflict 이란, 선과 악의 구도가 뚜렷이 형성되어 ‘우리’와 ‘그들’ 간의 반목으로 치닫게 된 갈등을 말한다. 고도 갈등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관계의 법칙이 더 이상 작용하지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는 현실이든 가상이든 상대방과 모든 관계가 대결의 양상을 띤다.     


두뇌의 작동 방식도 달라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진영의 우월성을 확신하게 되고, 동시에 상대 쪽은 점점 더 알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직접적인 만남이든, 텔레비전 뉴스 채널에서든 ‘그들’을 만나게 되면 우선 마음이 긴장되면서 분노 섞인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들이 하는 모든 말은 제정신이 아니거나 오해로 가득한, 위험한 소리이기 때문이다.      


고도 갈등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고도 갈등 상황에 빠지는 것은 우리 자신일 수도 있고, 우리가 아끼는 다른 사람이나 집단이 될 수도 있다. 고도 갈등에 빠진 사람들은 상대방이 먼저 공격해 왔기 때문에 대응한 것, 뿐이라고 불평한다.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양측 모두 자신이 상대방의 공격을 방어하고 있다고 굳게 믿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우고 조금이라도 굴욕을 느끼면 마치 불에라도 덴 듯이 크게 문제 삼는다.     


미국인은 그동안 수많은 정치적 사안에 합의를 이뤄냈으면서도 정치 성향에 따라 상대 진영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선거 결과를 놓고 친구나 가족과 아예 대화가 단절된 미국인이 무려 3,800만 명, 즉 전체의 10%에 이른다는 추산치가 있다.     


이것은 분명히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과 관계가 있다. 이것들은 애초에 갈등이 고리처럼 이어지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여기에 언론의 선정주의가 개입하여 분노를 돈으로 바꾸어 놓았다. 고도 갈등에 휩싸인 사람들은 증오로 가득 차 있어도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 증오는 중요한 감정이다. 그러나 일종의 증상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갈등이다. 고도 갈등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이다.     


고도 갈등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 그것은 돈과 피, 우정 등 모든 면에서 커다란 대가를 요구한다. 이것이 바로 갈등이 지니는 첫 번째 역설이다. 우리는 갈등에서 의욕과 생기를 얻지만, 동시에 그것 때문에 걱정에 사로잡힌다. 우리는 갈등이 끝나기를 바라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지속되기를 원한다.     


인간은 일단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해받는다는 기분을 느낀 다음에는 철벽같았던 방어막을 한결 누그러뜨릴 수 있다. 그리고 그동안 집착해 온 일들의 실체를 알고 나면 가장 중요한 일 외에 다른 것들은 쉽게 놓을 수 있다.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우리는 대체로 사람들이 말을 들을 때 머릿속에 모정의 가정을 안고 있는데, 그중에는 잘못된 생각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전달하기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중요한 요인이다.      


사람들은 남에게 이해받기를 갈망한다. 말하는 사람의 내용을 정확히 표현해 주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눈빛을 반짝거리며 ‘바로 그거예요’라고 대답한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을 이해해 주면 그를 신뢰하게 되고 더욱 자세히 설명해 주려고 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공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정치란 원래 모든 사람을 양자 구도의 틀에 몰아넣는 속성이 있다. 예컨대 민주당과 공화당, 기득권자와 도전자, 수구 세력과 신진 세력 등의 대립 구도다. 범주에 애착을 보이는 성향은 아주 어릴 때부터 나타난다. 아이들은 글을 읽기 전부터 인종과 성별에 따라 사람을 구분할 줄 안다. 인간은 신분적 차이를 인식함으로써 생존해 왔고, 우리는 사회에서 중요한 범주가 어떤 것인지 알게 모르게 습득해 왔다. 이것이 우리 공동체가 고의로 양자 선택의 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이다.     


인간에게는 기본적으로 채워져야 할 감정적 필요가 있다. 소속감, 자존감, 통제력, 존재 의미 같은 것들이다. 이는 모두 먹고 마실 음식에 버금갈 정도로 우리의 생존에 중요한 것들이다.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 이런 기본적인 필요가 크게 위협받는다.      


우리는 일단 누군가를 혐오하기 시작하면, 웬만해서는 그들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다시는 그들과 말도 하기 싫어진다. 결혼 연구의 권위자 존 가트맨은 이렇게 말했다. “경멸은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황산을 뿌리는 것과 같다.” 그는 연구를 통해, 부부 사이에 존재하는 경멸은 이혼의 강력한 전조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경멸은 그것이 꼭 지금 존재한다고 느껴지지 않더라고 그것이 미치는 해악에는 변함이 없다.    

 

갈등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는 네 가지 조건

-집단의식.

-갈등 촉진자.

-굴욕.

-부패.

이 네 가지 요소는 갈등을 촉진하고 확산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모든 갈등은 결국 선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다. 갈등은 우리 자신을 방어하고 속내를 털어놓게 하며 ‘그들’에게 개선의 압박을 가한다. 물론 상대방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체로 불쏘시개를 무력화, 붕괴, 또는 대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긴장 완화가 이뤄져야 한다. 폭력적인 갈등에서 벗어나는 법을 알려면 먼저 그것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방화범 역할을 하는 지도자는 갈등에 내재된 기회를 포착해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한다. 정적을 국민에게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게 만든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정적들이 더욱 급진적인 모습을 드러내게 부추긴다. 심지어 시위대에 무기를 은밀히 공급하기도 한다.      


전세계의 모든 방화범 지도자들은 우리의 정체성을 고의로 조작한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폴란드의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등은 모두 불 지르기의 대가들이다. 그들은 상대편의 정체성을 고의로 자극해 자신의 인기와 권력을 드높이고 이웃과 이웃 사이에 경멸을 퍼뜨린다. 갱단 두목들이 하는 행동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에도 이에 못지않은 정치인들이 있다.     


우리는 누구나 세상일을 설명할 이유를 찾는다. 음모론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인간의 이런 본능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런 거짓말에서 비뚤어진 위안을 찾는다. 음모론은 인생이 그리 취약하고 무질서한 것은 아니라고 안심시킨다.      


고도 갈등은 일방적이다. 분쟁의 악순환이 일어나는 원인은 주로 머릿속에 든 생각이다. 심지어 상대방은 우리 머릿속에 이런 고도 갈등이 소용돌이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갈등에 휘말려 있을지도 모른다.     


갈등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서 감정이 격해진 상황에 놓인 사람은 심호흡이 필요하다.

심호흡은 가장 검증된 방법이다. 숨을 천천히, 깊게 들이쉬고 내뱉기를 반복하면 체신경계(타율 신경계)와 자율 신경계(심근육을 비롯해 우리가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기관들) 모두를 진정시킬 수 있다. 호흡은 바로 이 둘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특수부대 요원이나 무술가들이 호흡법을 훈련하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호흡은 결정적인 순간에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다.     


남극 연구기지에서 겨울을 함께 보낸 65명의 남성에게 그들이 단결할 수 있었던 이유를 물어본 결과, 그중 40%는 함께 노래하고 게임을 즐겼던 일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답했다. 노래는 통합이 요소로 가장 널리 언급되는 것으로 함께 술 마시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효과가 있다.     


우리는 모두 두 개의 세계에서 산다. 외부 세계와 내면의 세계다. 그리고 이 둘은 항상 서로 소통한다. 고위층의 서명으로 성립되는 공식 평화조약은 외부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이것은 당연히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개인 간에 생기는 고도 갈등과 그 갈등에서 벗어나는 일, 혹은 벗어나는 데 실패하는 일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개인 차원의 일이다.     


갈등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많이 발생한다. 자주 접촉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문제에서 쌓인 것들이 임계점에 차오르면 폭발한다.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 너와 나의 인생이 걸린다. 이런 문제를 지혜롭게, 인간답게 해결하는 방법으로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책 소개     

『극한 갈등』 아만다 리플리 지음. 김동규 옮김. 2022.08.23. 세종서적(주). 471쪽. 23,000원.


아만다 리플리 Amanda Ripley. 〈타임〉지 기자. 저서. 『뉴욕타임즈』,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 등.     

김동규.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졸업.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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