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이토록 눈부시고 황홀한』

「삶이 끝나는 순간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레이먼드 무디

by 안서조

이 책의 부제목은 「삶이 끝나는 순간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이다. 다른 책을 읽다가 이 책을 알게 되어 읽었다. 책을 읽고 나서 제목이 과장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이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대부분 임사체험이라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증언 형식으로 하고 있다. 150여 명의 임사 체험자들이 경험한 것을 대상으로 성경, 플라톤의 여러 대화편, 『티베트 사자의 서』, 『신학 총서 개요』 등 죽음에 관한 자료를 인용하고 분석한다. 그런데 죽음이 ‘이토록 눈부시고 황홀한’ 이유는 별로 없다. 다만 임사체험을 한 사람 중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없었다. 정도이다.


우리나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면서 내과 의사인 정현채 박사가 ‘죽음학’을 연구하고 강의한다. 그가 쓴 책을 읽었다. 임사체험에 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입장이다. 하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여운을 남긴다.


죽음과 관련해서 저자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깊은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들, 곧 혹은 언젠가 다가올 죽음에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슬퍼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 죽음 너머에는 이 세상 그 어떤 경험과도 비교할 수 없는 더없이 찬란하고 눈부신 삶이 있다.”라고 말한다.


죽음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는 인류가 존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끊임없이 던져온 질문이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개인의 성향이나 살아온 배경과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가장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우리는 죽음을 논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을 느낀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심리적, 문화적 요인으로 죽음이라는 주제가 금기시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간접적으로라도 죽음과 맞닿으면 우리는 자신의 죽음을 마주하게 되고, 그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며, 더 현실적이고, 언젠가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여기게 된다.


두 번째 이유는 언어 자체의 본질에서 비롯된 한층 복잡한 문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대부분 신체 감각을 통해 경험한 것들이다. 그러나 죽음은 우리의 의식적 경험 너머에 존재한다. 대부분은 죽음을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죽음을 논하려면 사회적 금기를 깨지 않는 동시에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근본적인 언어적 딜레마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결국 완곡한 비유를 통해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는 데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소크라테스가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죽음이 그저 꿈을 꾸지 않는 잠이라면, .죽음은 분명 놀랄 만한 이득이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잤던 어느 밤을 떠올린 뒤, 인생에서 이보다 더 좋았던 날, 행복했던 낮과 밤이 과연 얼마나 있었는지, 심사숙고한 뒤 말해보라고 한다면… 분명 손에 꼽힐 정도로 적을 것이다. 죽음이 이와 같다면, 나는 죽음을 이득이라고 부르리라. 이러한 관점에서 죽음을 바라본다면 죽음은 그저 단 하룻밤에 지나지 아니한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잠이 삶에서 긍정적이고 가치 있는 경험으로 여겨지는 것은 잠에서 깨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푹 자고 나면 깨어 있는 시간을 더욱 즐겁고 생산적으로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날 수 없다면 잠이 가져다주는 잇점도 누릴 수 없다.


임사체험 이야기

“한 남자가 죽어가고 있다. 신체적 고통이 정점에 달했을 무렵, 의사가 자신의 사망을 선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신체 바깥으로 빠져나온 그는 한 발짝 떨어져 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이 이상한 상태에 적응했다. 여전히 ‘몸’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만, 그가 떠나온 물리적 신체와는 그 성질도, 능력도 매우 다르다. 곧이어 또 다른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죽은 가족, 친구들의 영혼이 언뜻 보이고 빛의 형상을 한,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따뜻하고 애정 어린 영혼 같은 것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이 이야기는 한 사람의 경험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은 사례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요소들을 한데 모은 하나의 ‘모델’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언어를 통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공통된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동체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서 발생한다. 많은 이들이 “내가 말하려는 것을 표현할 단어가 없다”라거나 “어떤 형용사나 최상급 표현을 써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을 신체와 동일시한다. 물론 ‘정신’도 있다고 하지만, 대다수 사람에게 정신은 신체에 비해 훨씬 덧없는 것에 불과하다. 사실 정신은 그저 신체의 일부인 뇌에서 일어나는 전기적, 화학적 작용의 결과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우리는 신체 안에서 존재하는 방식 이외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플라톤에 따르면 영혼은 더 높고 신성한 존재의 영역에서 물리적 신체 안으로 들어온다. 영혼은 몸으로 태어나면서 이전에 몸 밖에 있을 때 알고 있던 진리를 잊고 완전한 지성의 상태에서 훨씬 덜 의식적인 상태로 바뀌기 때문에 그에게; ‘잠’과 ‘망각’은 ‘탄생’이다. 함축적으로 보면 죽음이란 ‘깨어나는 것’이고 ‘기억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죽음으로 인해 몸에서 분리된 영혼은 이전보다 더욱 명확하게 생각하고 추론할 수 있으며, 더 손쉽게 사물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게다가 죽음 직후에는 신성한 존재가 그 영혼 앞에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살아가면서 했던 모든 일들을 보여주고 직면하게 하는 ‘심판’을 마주하게 된다.


플라톤은 육체적 죽음 이후에도 삶이 이어진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물리적 삶을 살고 있으면서 사후 세계를 설명하려 할 때 두 가지 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로 우리의 영혼은 물리적 신체 안에 갇혀 있으므로 경험과 배움에서 물리적 감각의 제한을 받는다. 시각과 청각, 촉각, 미각 그리고 후각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속일 수 있다. 우리가 사물이 본질에 대해 잘못된 생각이나 인상을 품게 할 수 있다. 우리의 영혼은 오감이 초래하는 혼란과 부정확성에서 해방될 때까지, 물리적 감각에서 해방될 때까지 실재 자체를 볼 수 없다.


1688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스베덴보리는 사람은 자연 과학의 여러 분야에 많은 기여를 했다. 해부학, 생리학, 심리학에 관한 그의 초기 저작들은 학계에서 인정받았다. 그러나 말년에 신비 체험을 겪고부터 그는 저 너머의 영적 존재들과 소통했다는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 책의 저자는 사후 세계가 있다고 확실하게 믿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과학적 논리에 합당하지 않다. 하지만 영혼과 형이상학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일도 많은 것이 세상일이다. 믿거나 말거나 죽음 후에 더 좋은 세상이 있다면 좋겠다.


책 소개

『죽음, 이토록 눈부시고 황홀한』 레이먼드 무디 지음. 배효진 옮김. 2024.06.24. (주)서스테인. 237쪽. 17,800원.


레이먼드 무디 Raymond Moody.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 웨스트 조지아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 취득. 조지아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엮임. 조지아 의과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 취득. 조지아 주립 병원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했다. 네바다 대학교 의식 연구 학과장 역임. 임사체험에 관한 연구를 10여 년간 하고 있다.


배효진.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 글밥아카데미 출판 번역 과정 수료. 바른 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