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온전한 제목은 「청소년을 위한 빅터 프랭클이 죽음의 수용소에서」이다.
저자는 1942년 나치에게 체포되어 1945년 수용소가 해방되어 빈으로 돌아올 때까지 죽음의 한가운데에서 겪은 참혹한 환경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진작 읽고 싶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 읽었다.
니체가 말했다. “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인생이란 결국 삶의 질문에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를 책임지고 해나가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서도 다르다. 누구에게나 삶이 다 이런 거라고 그 의미를 정의할 수 없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한 가지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삶’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어떤 사람도, 어떤 운명도, 그와는 다른 사람, 그와는 다른 운명과 비교할 수가 없다. 똑같은 게 되풀이되는 경우는 하나도 없으며, 상황마다 사람은 서로 다르게 행동한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시련이 닥쳐와서 그것이 자기 운명임을 알았다면, 시련이 자기 과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오직 자신만의 과제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시련 속에서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데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시련에서 그를 구해 줄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져 줄 수도 없다. 짐을 어떻게 짊어질지 결정하는 건 그 사람에게만 주어진 기회이다.
이 책은 2부로 되어있다. 1부는 수용소에서 겪은 이야기다. 2부는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이다. 2부부터 읽었다.
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앞으로 환자가 이루어야 할 일이 갖는 의미에 집중한다. 환자가 삶의 의미와 직접 마주하고, 그것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우치는 것이 환자의 능력을 키워 정신병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왜 ‘로고테라피’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로고스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다. 로고테라피는 인간 존재의 의미와 그 의미를 찾아 나가는 인간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자기 삶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힘으로 본다.
인간이 진정한 의미의 인간이 된 다음, 두 가지를 잃어버렸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될 때 인간은 동물적인 본능의 한 면을 잃었다.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그걸로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는 법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제 인간은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최근에 인간은 또 다른 상실감을 맛보게 되었다. 자기 행동을 지켜주던 전통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이끄는 본능도 없고,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전통도 없다. 어떤 때는 자기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모를 정도가 됐다. 그래서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거나, 아니면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무엇을 위해, 무엇에 대해, 누구에게 책임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오로지 스스로의 판단에 맡긴다. 심리 치료사 가운데 로고테라피 치료사는 환자에게 가치 판단을 내려 주려는 생각을 가장 덜 한다. 환자가 가치 판단을 내릴 책임을 의사에게 떠넘기는 것을 절대 받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인간성을 가장 깊은 곳까지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사랑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그 사람의 본질을 완전히 알 수 없다. 사랑으로써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의 원래 특성과 개성을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숨은 것,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실현할 것이 무엇인지도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랑의 힘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잠재력을 발휘하게 도울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자신이 어떻게 돼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서 숨은 능력을 실현하게 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은 시련을 통해서다. 누구나 자기 일을 할 기회, 자기 인생을 즐길 기회를 빼앗기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그때 시련을 피할 수 없음을 똑바로 봐야 한다. 시련의 도전을 용감하게 받아들이면 삶은 마지막 순간까지 의미를 갖는다.
인간의 삶에서 의미를 빼앗아 가는 것은 고통만이 아니다. 죽음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인생에서 정말 덧없는 것은 잠재 가능성이라고 말한다. 가능성을 그게 이루어지는 순간 바로 현실이 된다. 그리고 곧 과거로 옮겨 간다. 과거로 들어가게 되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한 실체로 남는다. 그런 의미로 어떤 과거에서 되살릴 수 없이 완전히 잃는다는 건 없다. 모든 것은 그대로 남게 된다. 과거에 모든 것이 이미 이루어져 있으며, 그 어느 것도 사라질 수 없다. 과거에 ‘그랬다’라는 것 처럼 확실하게 살아남는 것도 없을 것이다.
자신이 늙었음을 깨달았을 때 그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까? 젊은이들을 부러워하거나 사라진 자신이 청춘을 그리워할 이유가 있을까? 무엇 때문에 젊은이를 부러워하겠는가? 젊은이에게 있는 잠재 가능성 때문에? 그 사람의 미래 때문에?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앞으로의 가능성 대신에 나는 과거에서 갖게 된 무언가가 있어. 내가 했던 일, 내가 했던 사랑, 용감하게 견뎌 낸 시련까지도 말이야. 이 고통이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지. 남들이 부러워하지는 않더라도.’
정치인에는 두 종류만 있다. 첫 번째 종류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믿는 사람들. -대한민국의 대부분 정치인이 이런 종류다.- 어떤 수단이라도 상관 없다. 다른 정치인은 신성한 목표를 훼손하는 수단도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다. 나는 이런 정치인을 신뢰한다.
1부. 죽음의 수용소
오스트리아가 히틀러에게 점령당하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히 알면서 왜 탈출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나이 든 부모님을 홀로 두고 떠날 수 없었다. 죽음의 수용소라 불리는 곳으로 갈 운명에 놓인 그들을 두고 정말 떠날 수 있을까? 무엇이 내 의무일까? 풍요로운 땅으로 가서 로고테라피를 살릴까? 여기서 부모님을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면서 자식으로서 책임을 질까? 이리저리 고민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그때 탁자 위에 놓인 대리석 조각이 보였다. 아버지에게 그게 뭐냐고 묻자. 십계명을 쓴 대리석의 조각이다. 히브리어 글자 한가 금색으로 새겨져 있었는데. 이 글자가 계명 중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그 계명이 무엇이냐고 묻자, 아버지가 대답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그 순간 나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그 땅에 머물기로 결심하고 미국 비자를 흘려보냈다.
이 책은 객관적인 사실이나 사건을 적은 보고서는 아니다. 개인이 경험, 수백만 명의 사람이 시시때때로 맞닥뜨렸단 경험에 관한 기록이다. 한 생존자가 들려주는 강제 수용소 안의 이야기이기도 한다. 이 책은 위대한 영웅이나 순교자의 고난과 죽음을 다루지도 않고, 특권을 누린 사람들의 이야기도 아니다. 이름도 없이, 기록도 없이 죽어간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시련, 죽음을 말하려 한다. 소매에 신분을 구별하는 특별한 표시조차 달지 못한 채 멸시당했던 평범한 수감자들 말이다.
되도록 매일 면도를 하게. 유리 조각을 쓰더라도 말이야. 마지막 빵을 포기하더라도 면도해야 해. 그러면 더 젊어 보일 거야. 뺨을 문지르는 것도 혈색이 좋아 보이게 하는 방법이지.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 일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 ‘회교도’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불쌍하고 비실비실하고, 병들고, 초라해 보이는 사람들, 고된 육체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회교도’라고 한다. 회교도들은 조만간, 아니 아주 빠르게 가스실로 가게 되지. 그러니까 늘 면도하고 똑바로 서서 걸어야 한다는 걸 명심하게. 그러면 가스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나 많은 시인이 시로 노래하고, 그렇게나 많은 사상가가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진리란 인간이 추구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가 사랑이라는거였다. 인간의 시와 사상과 믿음이 말하는 숭고한 비밀, 그 의미를 꿰뚫어 보았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영적인 존재, 내적인 자아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아직 살았든, 죽었든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사람이 자기 운명과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과정은 삶에 깊은 의미를 느낄 수 있는 폭 넓은 기회를 준다. 그 삶은 용감하고, 품위 있고, 헌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힘든 상황이 주는 선물인 도덕적 가치를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이것은 자기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사람의 미래에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 수 있다. 기대를 갖기 위해 자기 마음을 밀어붙여야 할 때도 있지만, 인간이 가장 어려운 순간에 처했을 때 결국 그를 구하는 건 미래에 대한 기대이다.
이 세상에 자신이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살아 있음과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가 된다. 자기와 그 사랑을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 버리지 못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김혜림 옮김. 2021.08.05. 청아출판사. 207쪽, 13,000원.
빅터 프랭클 Viktor Frankl(1905~1997)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빈대학교에서 의학박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신 요법 제3학파라 불리는 ‘로고테라피’ 이론을 완성했다.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경험했던 참혹함에 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사람이 살아야 할 의미와 인간 존엄성의 위대함을 생생히 전한다. 지은 책, 『삶의 의미를 찾아서』 등.
이시형 – 정신과 의사, 뇌과학자. 한국 자연 의학 종합연구원 원장.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경북대 의대. 미국 예일대에서 정신과 신경정신과학 박사후과정. 이스턴 주립병원 청소년 과장, 경북의대, 서울의대 성균과의대 교수, 강북삼성병원원장, 사회정신건강연구소 소장 등 역임.
김혜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심리학 박사과정 수료. 출판 기획 및 번역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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