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패거리』

『OUR GANG』

by 안서조

이 소설의 원어 제목은 『OUR GANG』이다. 미국 닉슨 대통령을 패러디한 소설이다.

우리가 말을 사용하는 것은 자신의 뜻을 상대에게 이해시키고, 사실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그런데 만약 누가 사실이 아닌 말을 한다면 이러한 목적이 좌절된다. 내가 그 사람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정보를 얻는 것과도 거리가 멀어서, 나는 무지보다 오히려 더 못한 상태가 된다. 흰 것을 검다고, 긴 것을 짧다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들 사이에서 아주 보편적으로 행해지며 인간들이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거짓말이라는 재주에 대해 주인님이 갖고 있는 생각은 이것이 전부였다. -조너선 스위프트,『후이늠 세계로의 항해』, 1726년.

정치인과 국민,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치인은 국민을 자기가 유리한 방향으로 호도하고 자기 합리화와 당선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부류다. 이 소설에서 대통령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대상이 된 불륜, 호색한, 부정 축재한 사실들에 대한 국민의 지적을 엉뚱한 곳으로 돌린다.


이슈를 이슈로 덮는다. 더 큰 문제를 들고나오거나 정적의 문제를 새삼스럽게 꺼낸다.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즐겨 써먹는 수법이다. 자기 자신을 위한 정책을 국민을 위한다고 포장하는 위선적 행태는 날이 갈수록 그 수법이 교묘해지고 지능화한다. 이런데도 정치가 꼭 필요한 것일까.라는 회의감이 든다.


소설은 대화 형식으로 꾸며졌다. 대통령을 이렇게 패러디할 수 있는 미국의 성숙한 국민 의식이 부럽다.

11월에 있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현직 트리키 대통령은 태아에 관한 인격을 주제로 기자 회견을 한다. 대통령은 기자 회견에서 태아의 인격을 존중하고 선거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설명한다.


기자들은 베트남 참전 캘리 중위 부대가 민간인 학살과 결부하여 미군이 학살한 베트남 민간인 중 임신부가 있었다면 캘리 중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질문한다. 대통령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의 생명을 포함해 인간 생명의 신성함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신념과 어긋나는 부분이 발견된다면, 저는 그 사안에 대한 판단을 내려놓고 부통령에게 전권을 맡길 겁니다.”라고 빠져나간다.


미국 전역에서 보이스카웃이 주축이 되어 베트남 참전 반대 시위가 발생한다. 대통령이 있는 백악관까지 시위대가 진출하고 이 문제에 관해 참모들과 벙커에서 밤샘 회의를 한다. 결론은 팀을 무단이탈해서 덴마크로 출국한 미국 프로야구 선수 찰스 커티스 플러드가 주동한 사건으로 변질시켜 시위를 진압한다는 모의를 하고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다.


플러드를 체포하기 위해 덴마크에 해병대를 파병한다.

‘대다수 미국 국민은 우리 군대의 용감한 전사들이 외국이 아니라 워싱턴 거리로 불려 나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상황이 어느 모로 보나 비극이라는 말에 틀림없이 동의할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일이 이 나라의 수도에서 일어났습니다. 길고 긴 낮과 밤에 우리 용감한 군인들은 장전된 라이플, 총검, 최루탄, 방독면으로만 무장하고 거의 1만 명을 헤아리는 보이스카우트 폭도 무리와 마주했습니다.


이제는 여러분도 그 1만 명의 보이스카우트들이 이 나라 수도의 거리에서 부르고 외치던 노래와 구호의 본질을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그들이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흔들어 대던 플래카드도 이미 여러분에게 친숙해졌을 겁니다. 저는 그들이 사용한 포스터의 구호들을 여러분에게 다시 들려드릴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그들이 찰스 커티스 플러드의 말로 이득을 제대로 표현했다고 말하는 정도로 충분할 겁니다. 플러드 자신이 쓴 글에 따르면, 그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는 세계의 포르노 수도인 덴마크 코펜하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시위대가 소지한 야영에 사용하는 ‘스위스 칼’을 살인과 고문에 사용하는 칼이라고 주장한다.


며칠 뒤, 대통령이 죽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백악관은 사실을 부인한다. 병원에서 입술 땀샘 수술을 하기 위해 입원 중 보이스카웃으로 보이는 사람이 칼로 혹은 야구방망이로 대통령을 살해하고 알몸으로 자루에 담았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백악관도 사실을 인정한다.


그런데 사건은 반전한다. 대통령을 죽인 사람은 행인 중 잠든 아기를 안고 있는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내가 해낼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라고 말한다. 대통령을 자루에 넣고 끈을 비틀어 자루를 묶었다며 내 어린 딸은 이러이러한 것을 완전히 분명하게 말할 것이라는 말을 누구도 하지 않는 세상에서 자라게 될 거라고 말한다. 그런데 워싱턴 백악관 근처에 모인 2만 5천 명의 군중이 모두 자기가 대통령을 죽인 범인이라며 체포해 달라고 무릎을 꿇고 애원하고 있다.


그 와중에 부통령은 비밀리에 취임 선서를 했다.

마침내 트리키 대통령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집전 목사는 장황한 설교 끝에 “다시 고개를 숙여주시겠습니까? 모두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 이분을 가장 잘 아는 우리가 생각하던 그의 이름, 그가 정장을 입고 우리 곁을 거닐 때는 너무 수줍어서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그를 부르던 이름을 함께 기억해 봅시다. 그것이 강아지에게도 붙일 만한 이름이라는 점이 얼마나 잘 어울립니까. 우리가 그에 대해 무엇보다도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바로 그가 개들을 깊이 존중했다는 점이니까요.”라고 말한다.


트리키는 지옥에 떨어졌다. 그곳에서 대악마로 출마한다. 출마 연설에서 “저는 이제 양심이니 신중함이니 평판이니 하는 것에 구애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최고의 권력을 지녔지만, 갖가지 장벽과 방해물 때문에 악을 행하지 못하는 미국 대통령도 아닙니다. 드디어 지옥의 시민이 된 것이 제게는 위대한 도전이자, 기회라고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동료 망자 여러분께 자신 있게 말합니다. 구속도 없고 신성한 것도 없는 여기 지옥에서 여러분은 새로운 딕슨을 보게 될 겁니다. 미국인으로 살 때는 꿈으로만 그려볼 수 있었던 딕슨, 지옥에 떨어진 여러분에게 걸맞은 대악마가 될 수 있는 경험과 에너지를 지녔다고 겸허히 아뢰는 딕슨입니다.

정치인은 죽어서도 정치를 해야 하는 숙명을 가졌나? 지옥에 떨어져서도 대악마에 출마하는 귀신!


책 소개

『우리 패거리』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2024.05.22. 김영사. 250쪽 16,800원.

필립 로스 Phillip Roth(1933~2018).

미국 뉴저지 뉴어크에서 태어났다. 유대인 공동체 위쿠아익에서 자랐다. 1950년 위쿠아익 고등학교 졸업, 버크넬 대학교에 진학, 시카고 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취득. 저서, 1959년 발표한 첫 번째 소설 『굿바이, 콜럼버스』 등.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전미도서상, 퓰리처상, 인터내셔널 맨부커상, 국가인문학훈장, 미국문학예술아카데미 골드 메달 등 수상.


김승욱.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여성학 공부.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전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