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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산 Sep 29. 2024

뒤늦은 이태원 클라쓰

사람들은 정의를 좋아하네요

이태원 클라쓰를 뒤늦게 보면서 사람들이 왜 좋아했는지 알만합니다.

박서준은 배역에 잘 맞게 새로이의 역할 연기를 잘합니다. 소신 있게 꿈을 이루는, 한 발 한 발  내딛는데 느려도 정의롭게 나아가는 청년입니다.

극 중 박서준 대사

'사람들은 자유를 원합니다.

어떠한 부당함도 누군가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소신의  대가가 없는.'

맞습니다. 드라마에서 흔히 주인공은 소신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다시 일어서며 성공을 이루고 악인을 무릎 꿇게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쉬운 길, 동료를 버리고 신념을 버리라는 유혹도 있었지만 그는 소신을 지키고 대가를 치르는 좁은 문을 선택했습니다.

현실에서 드라마처럼 큰 성공을 이루지는 못한다 해도 정당한 소신들이 모여 사회적 정의를 키우고 지탱하는  밑거름일 것입니다.

는 교육자의 관점에서 장 회장이 아들의 잘못에 대처하는 태도가  몹시 거슬립니다.

왜 사건이 일어났나 상황은 파악하지 않고 자기 자식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감히 우리 아들을?

 장 회장은 이런 말을 입 밖으로 꺼냈고 아들에게 너는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말고 그럴 필요 없다고 가르칩니다.

결국 그렇게 키운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자신이 평생 일군 것을 우습게 봤던 소신 있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알고 동료를 사랑하는 주인공 새로이에게 빼앗깁니다.

새로이는 빼앗은 것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인수합니다.

장 회장이 부자라서 소유한 것이 많지만 새로이와 그의 부하직원 새로이의 아버지가 가진 것을 그는 전혀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현재 가진  모든 것을 잃는 순간에도 새로이의 아버지는 아들의 곁에서 아들의 신념을  지키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반면 장 회장은 중요한 순간에 회사를 선택했고 아들도 재산도 명예도 잃었습니다.

자식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자식이 크게 되길 바란다면 자식에게 당장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와 권력을 자식의 가치관을 망가뜨리고 자식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데 쓰면 안 됩니다.

올바른 인성과 가치관은 집을 짓는데 기초가 되는 주춧돌과  기둥, 서까래가 됩니다.

그것을 바르게 키우지 않고

 '너는 무엇을 해도 괜찮아, 미안하다고 말하지 마, 감히 우리 아이를, 우리 아이는 잘못했을 리가 없어'

 이런 태도는 아이들의 사소한 싸움을 갖고 담임과 여러 교사, 학생들이 쉬는 시간마다 상담하고 입장을 듣고 통화하며 신경전을 하고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듭니다.

  학생들을 위한 수업 연구와 지도, 격려에 쏟아야 할,  친구와 스스로 화해하고 성장하고 우정을 나누며 성장할 기회를 놓칩니다.

 때로는 얼마든지 해보라고 해, 변호사를  쓰면 되지. 이런 상황까지 가기도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용기를 가르치고 우리 아이가 충분히 실수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봐야 합니다. 내 아이는 미완성의 미성년자이고 실수를 인정하고 바르게 일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아이의 잘못은 그럴 수 있고 내가 사과했던 아이가 내게 수하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큰 사과를 받으려 하면 안 됩니다.

논리를 배우고 어휘력을 늘려 나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상대의 작은 실수를 크게 부풀리는데 쓰는 경우를 볼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영어 단어를 잘 외우고 수학문제를 잘 푸는 것만 기특해하고 잘못을 하면 그쯤운 괜찮아하지는 않는지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고 하는데 부모들의 지식, 경제, 경쟁 우선의   가치가  인간적 본성이 성숙하는 것을 막고 그런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눈먼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 아이가 바르게 성장하기보다 지지 않는 아이로만 키운다면 결국 아이의 삶은  부모의 어떠한 부와 권력으로도 세울 수 없는 모래 위에 지은 성이 되어 무너질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란 잘못을 깨닫고 고치려 하면 얼마든지 단단한 삶의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갖고 있는 성장하는 가치의 눈을 부모의 욕심의 늪이 가로막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자연은 서로 다른 종이 한 나무 위에서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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