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5_키작녀

키작녀의 옷쇼핑

by Yejoo

나는 키가 작다. 꽤 작다.

작은 키가 부끄러웠던 시기를 지나고,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봤던 시기를 지나고, 부모님을 원망했던 시기도 지나고, 높은 굽 신발로 조금이나마 땅에서 멀어져 보고자 했던 시기도 지나고 마침내 나의 키를 인정하고 적응하며 장점마저 발견해서 좋아하게 되는 시기에 이르렀다.

키가 작다는 것은 불편한 점들도 있지만, 의외로 장점들도 꽤나 많다.


일주일의 7일 중 5일을 유치원생, 초등학생들과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내 직업상 나의 작은 키는 아주 만족스러운 부분이 많다. 특히 유치부는 더더욱 그렇다. 다른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 허리를 굽힐 때, 나는 전혀 굽힐 필요가 없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위해 또다시 허리를 굽힐 때, 나는 전혀 굽힐 필요가 없다. 꼿꼿이 바른 자세로 서있어도 잘 보이고 잘 들린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포옹을 하는데, 아이들도 나도 서로 안아주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 아이들과 마음껏 껴안기에 서로의 가로, 세로, 폭의 신체 사이즈가 딱 알맞다. 다만 요즘 초등부 친구들은 성장이 워낙 빨라 5학년만 돼도 나랑 비슷하거나 하루아침에 나보다 커지는 경우가 있어 매번 놀라지만, 저학년 친구들까지는 괜찮다. 어차피 수업 시간에는 그들은 앉아서, 나는 서서 수업을 진행하니까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 쉬는 시간에는 아이들과 어깨동무를 하고서 사이좋은 친구 같은 모양새로 수다도 떨고, 격려도 하고, 협박을 가장한 잔소리도 한다.


최근 또 하나의 큰 장점을 발견했는데, 바로 키즈 옷 쇼핑이다. 키작녀의 옷 구매는 쉽지 않다. 특히 바지가 상당히 까다롭고 성가시다. 대부분의 기장이 매우 길어서 수선을 해야 하는 데, 수선을 하면 그 바지를 디자인했던 디자이너의 의도와 결과는 홀연히 사라진다. 잘려나가는 길이가 짧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바지를 살 때 늘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우연히 SNS에서 요즘 나오는 키즈 옷의 사이즈가 작지 않고, 디자인도 예쁘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Z 매장의 키즈 존을 가보았는데 처음 들어갈 때가 조금 눈치 보일 뿐, 그곳이야 말로 '노다지'였다. 전혀 유치하지 않을뿐더러 그중에는 오히려 성인 옷의 디자인 보다 더 마음에 드는 옷들도 있었다. 디자인도 마음에 쏙 드는데, 더욱 친절한 부분은 옷의 태그에 사이즈와 함께 몇 살의 아동이 입으면 잘 맞는지, 몇 센티 키의 아동이 입으면 잘 맞는지 표기해 준다는 것이다. 처음엔 '13-14 years'가 자꾸 눈에 밟혀서 옷을 집었다 내려놨다를 반복했는데, 피팅룸에서 한번 입어보니 그런 숫자쯤은 전혀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렇게 친절한 부분에 대해 감탄했다. 성인 옷 중에서는 나한테 맞는 바지를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는데, 이곳에서는 눈에 보이는 대로 집을 수 있다. 팔을 진열대 가장 안 쪽까지 쭉 집어넣어서 맨 끝, 혹은 맨 끝에서 하나 앞에 있는 옷을 꺼내서 허리에 착 대보면 바로 이것이 나의 옷이 되는 것이다. 까다롭고 귀찮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옷 수선이 생략되고 무엇보다 디자이너의 의도대로 바지의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가장 기쁘다. 이렇게 나는 단골 매장들의 키즈존을 누비며 옷을 사고 있다.


어제 경량패딩을 사러 U 매장에 갔다. 역시나 키즈존을 찾아 매장 안쪽까지 거침없이 들어가 진열대 앞을 서성이며 어떤 색이 좋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내 옆으로 7,8살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아이의 엄마가 다가왔다. 엄마는 경량패딩을 하나 집어 들며 아이의 몸에 대보았는데 아이는 "난 여기 싫어, 여기는 너무 애들 옷 같아. 이건 애들 옷이잖아." 하면서 패딩을 밀어냈다. 엄마는 황당하다는 듯 웃으면서 "네가 애들이지 그럼 뭐야"하면서 또 다른 옷을 권했는데 그 남자아이는 더 단호하게 "이것들은 다 애들 옷이라서 싫어, 난 여기서 안 살 거야." 하고서 돌아서서 가버렸다. 옷을 꺼내려던 엄마도 웃으면서 유유히 아들을 따라서 떠났다. 마침 나는 같은 상품을 입어보려고 사이즈를 찾는 중이었는데 진열대 안쪽까지 쭉 뻗었던 팔의 각도를 다시 천천히 접어서 진열대 밖으로 빼버리고 말았다. 이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시간이 잠깐 필요했다. 성인이 돼버린 지 오래지만 돌고 돌아 다시 키즈존으로 돌아온 성인과 빨리 키즈존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키즈의 만남이 재미있었다. 입 밖으로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고 마치 내가 찾는 옷이 없어서 안 사는 손님 마냥 쿨하게 돌아서서 매장을 나왔다.


성인 옷이 너무 커서 키즈존을 찾아오는 성인

키즈 옷이 너무 유치해서 키즈존을 달아나는 키즈


안타깝게도

옷을 건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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