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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지프 Sep 27. 2023

「인간-존재, 세계, 인간관계」

하이데거의 사유를 따라서

 인간은 무엇으로 규정되는가? 인간을 존재적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부분적인 인식에 그친다. 세속(世俗)에서 발화되는 ‘A-인간은 이러이러하다’라는 문장의 언표는 ‘A-인간은 이러이러하지 않을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지닌다. 논리학의 접근 방식으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A-인간은 이러이러하다’라는 발화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할까? 

 인간은 자기(自己)에게 물음을 던지는 존재이다(‘?-존재’로서의 인간). 인간은 세계에 자유와 함께 버려졌다. 한 인간은 그 안에 여러 명의 인간이 공동으로 존재하는 다양체이다. 즉, 인간은 근원적으로 분열자이고, 자기모순에 둘러싸인 존재이며, 무한한 잠재성(외연은 1, 내포는 무한인 존재)을 가지고 있다. 한편, 세계는 ‘그저’, ‘그 자체로’ 존재한다. 세계는 인간의 항변에 무관심하다. 그저 존재할 뿐이고, 시간은 흘러갈 따름이다. 

 심경(心境)은 인간-존재를 가장 강렬하게 현시한다. ‘물음을 받는 존재’는 기분으로 자신을 개봉하려 한다. 그러나 인간-존재는 음산한 곳에 존재하는 세상-인간의 ‘시선’을 느낀다. 세상-인간은 ‘정상성’의 기준으로 ‘?-존재’를 규정한다. 어떤 인간은 이상하고, 어떤 인간은 멀쩡하다. 세상-인간은 세계에 항상 존재하며, ‘?-존재’의 심경을 지배하려 한다. 이로써 ‘?-존재의 심경과 세인(世人)의 시선’이라는 대립이 나타난다. 세인은 인간-존재에게 ‘?-존재’가 있음을 은폐하려 하며, ‘일상’에서는 세인의 시선에 둘러싸여 ‘?-존재’는 은폐된다. 

 은폐의 세계에서, 인간들은 자신의 ‘?-존재’를 감추기에 급급하다. 세인은 ‘!-존재’만을 용납한다. 한편, 인간은 세계에서 더불어 존재한다. ‘더불어 존재하는 인간들’은 서로가 은연중에 개봉하는 ‘?-존재’를 눈치챈다. 자기의 ‘눈치챔’은 오류 가능성을 늘 내포하지만, 어떤 양상은 부정할 수 없는 ‘강렬함’으로 자기의 ‘?-존재’와 함께 울린다. 인간-존재는 자기의 ‘?-존재’를 바탕으로 타인의 ‘?-존재’를 파악하며, 한 인간-존재는 ‘더불어 존재하는 인간’을 자기의 복제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소위 ‘객관’은 ‘세인의 시선’이고, ‘주관’은 ‘자기의 심경’에 불과할 따름이다.

 ‘?-존재’가 타인과 관계하는 방식은 무엇인가? ‘마음 씀’이다.‘?-존재’가 열어 보이는 근원 심경은 무엇인가? ‘불안’과 ‘두려움’이다. 세계에 던져진 존재는 늘 자기의 ‘?-존재’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 늘 혼자인 셈이다. ‘세인’의 시선은 늘 ‘?-존재’를 규정한다(‘이건 정상이고, 이건 이상(異常)이야.’). 퇴락한 세인의 시선에 마음을 쓸 것인가, 혹은 ‘?-존재’이 자신을 개봉하는 바에 마음을 쓸 것인가. “이것이냐, 저것이냐”

 어떤 인간-존재가 퇴락한 세인의 시선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존재’가 개시하는 바를 은폐해야 하며, 이는 타인에 대한 무시와 경멸, 혹은 인정과 칭찬의 방식으로 나타난다(‘너는 이상해’, ‘너는 한심해’, ‘너는 멀쩡해’, ‘너는 대단해’). 하지만, 이들이 경멸한 바는 결국 자기에 대한 무시와 경멸이다(‘나는 이상해’, ‘나는 한심해’, ‘나는 멀쩡해’, ‘나는 대단해’). 타인-존재는 자기의 복제로 인간-존재에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인간은 늘 ‘더불어 존재하는 인간들’, ‘세인’, ‘?-존재’에 늘 마음을 쓰며 존재한다.

 무시, 경멸, 인정, 칭찬과 같은 방식은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인 관계 방식이다. 그러나, ‘?-존재’를 인식하고, 그를 개봉한 인간-존재는 타인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을 것인가? ‘마음 씀’의 긍정적 양태인 ‘더불어 존재하는 인간들’에 대한, ‘배려’이리라. 기독교에서 말하는, ‘강렬한 아가페’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존재’가 개시하는 바를 드러내며 존재하는 인간은 본디의 모습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첫 문단 마지막 부분에 던진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 세속(世俗)에서 언표되는 ‘A-인간은 이러이러하다’라는 ‘더불어 존재하는 인간’의 발화는, ‘더불어 존재하는 인간들’, ‘세인’, ‘?-존재’에 마음을 쓰는 인간-존재가, ‘나는 이러이러할지도 모른다’라는 ‘?’를 은폐한 결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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