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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 Aug 31. 2024

남편은 남의 편이라는 말.

남편이 내편이 될  가능성은 ?


일주일 전, 남편이 아이 어린이집 아빠들과 하는 축구동호회의 야유회가 있었다.

두 달 전부터 미리 날을 잡아놓았었고, 일요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육아에서 벗어나 아빠들만의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으로 다들 들뜬듯했다.

그런데 당일 아침, P라는 분이 갑자기 못 오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이유를 물어보니 이미 출발해서 오고 있었는데, 몸이 안 좋으니 그냥 집으로 와달라는 아내의 연락에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P라는 분은 늘 아이들에게 다정하고 헌신적인 아빠여서 가정적이라는 칭찬이 자자한 분이다. 일요일에 자유시간을 누릴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신이 나있었을 텐데, 몸이 안 좋다는 아내의 연락에 바로 차를 돌려 집으로 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니 내가 봐온 남편의 모습과는 너무 대조되는 모습에 '이런 아빠도 있구나...' 놀라우면서도 부러운 마음이 생겼다.



남편에게 "와.. 근데 P 대단하지 않아? 야유회 온다고 한껏 들떠 있었을 텐데.. 와이프 아프다니까 바로 차 돌려서 가고.. 진짜 대단하다..."라고 말하니, "애도 아니고 와이프 아프다는데 당연히 차 돌려야지."라고 답한다.

"그럼 자기도 내가 아프다고 했으면 왔을 거야? 절대 안 그랬을 것 같은데?"라고 반문하니, "당연히 오지.. 애 아픈 거랑 마누라 아픈 거랑 똑같냐! 애가 아프면 엄마가 봐주면 되지만 와이프 아프면 가야지~!"라고 하길래 '아.. 남자들이 또 그런 의리는 있는 건가?' 생각하며 답변이 만족스러워 흐뭇해했었다.



며칠간 계속되는 목감기 증상으로 힘들어하다가 어제 오전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다. 웬만해선 약을 안 먹고 버티는데, 그럴 정도가 아닌듯해서 병원을 찾아갔다. 인후염인데 염증이 심해서 아마 힘들었을 텐데 괜찮냐는 의사의 말에 미련하게 참아온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약을 처방받고 나오며 남편에게 연락을 했더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어'라는 답이 돌아온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집안일은 늘 끝이 없다.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들 먹일 저녁을 준비하고 나니 금세 아이들 돌아올 시간이다. 녹초가 된 몸으로 아이들을 먹이고 정리했다. 남편은 집에 들어왔다가 회의가 있어서 바로 나갔기에 저녁 마무리까지 정신력으로 버텨야 했다.



남편이 회의가 끝나고 친구들 축구하는데 들렀다 온다고 연락이 왔다. 축구도 끝나고 난 후에는 저녁을 먹고 들어오겠다고 또 연락이 왔다. 술은 안 먹고 저녁만 빨리 먹고 들어오겠다는 설명이 덧붙여있다. 어차피 집에 와서 밥을 먹으면 내 일이 늘어나니 '밥 먹고 들어오라'라고 답을 했다. 저녁이 되니 몸이 점점 더 힘들어진다. 열이 계속 올라 저녁 약을 먹고 아이들 DVD를 틀어주고 누웠다. 약기운에 이대로 잠이 들 것 같아 남편에게 '집에 오면 아이들 양치시키고 재워줘'라고 카톡을 쓰고 있는데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새로 오픈한 친구네 가게에 들렀단다. 맛있어 보이는 소고기 사진도 보내온다. 사진에 보이는 술병을 보며 '설마 술을 마시고 오진 않겠지?' 생각하며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을 돌봐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나는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이 계속 나를 찾는다. "엄마!!! 과일 줘!!" , "엄마~~ 다른 거 틀어줘~~" , "엄마~~ 형아가 괴롭혀!~~" 목이 아파서 목소리가 안 나오고, 열이 나서 몸이 힘드니 사소한 것에도 너무 크게 짜증이 난다. 도대체 이 남편은 왜 집에 안 들어오는 건지 신경질이 나서 전화를 했다. 집에 안 오냐고 설마 술 마시고 있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기운이 쫙 빠진다. 지난 주말 P를 보고 한 대화가 떠오른다. 말뿐이었구나. 이 사람은 내가 아프건, 힘들건 그런 건 안중에도 없고 자기 노는 게 중요한 사람이구나. 열 기운에 눈이 무겁고 뻑뻑했는데, 속상한 마음이 보태죠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술과 나를 놓고 비교할 때 나는 늘 지는 입장이다. 남편은 늘 술을 선택한다. 나는 늘 내가 우선이 되길 원하지만, 매번 지는 게임이다. 결국 상처받는 건 나다. 사실 어느 정도 포기하고 살고 있어서 기대가 없으니 좀 편해진다 싶었다. 그래도 아플 때의 마음은 또 다른가 보다. 와이프가 아파서 힘들다는데 술을 먹으러 갈 거라는 옵션이 내 머릿속엔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 때문에 나는 또 상처받고 말았다.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내가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라고 터치 거의 안 하는데, 좀 사람이 아프고 그러면 적어도 이런 날은 눈치를 챙기고 그래야 되지 않겠냐. 늦게 올 것 같다고 미리 말이라도 해주던가. 왜 남보다도 더 못하게 이러냐. 왜 이렇게 사람을 한 번씩 서운하게 만드냐"라고. 남편은 친구 가게에 갔다면 당연히 늦게 올 거라 생각했겠지 했다며 지금 대리를 불렀으니 들어오겠다고 답을 했다.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이미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아이들을 씻기고 재웠다. 자꾸만 비슷한 과거의 일들이 떠오르며 이 사람은 변할 리가 없다는 좌절감에 속이 상해 끙끙거리다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이런 기분으로 주말을 망쳐선 안된다는 마음으로 청소를 했다. 불필요한 물건들을 버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스팀 걸레질로 바닥을 깨끗하게 닦으며 내 마음의 상처도 이렇게 그냥 닦여서 없어지길 바랐다.



남편은 '남의 편'이라는 말을 처음 접하고 물개박수를 치며 공감했었다. 어쩜 그렇게 다른 사람의 일들엔 손 뻗고 잘나서는지, 내 남편인지 남의 남편인지 모를 지경이다.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면 그 집 아이를 좀 데려와서 봐주지 않겠냐는 둥, 음식을 누구한테 나눠주라는 둥 남 좋은 일은 참 잘하는 사람이다. 남한테 잘하는 모습을 좋다 나쁘다 평가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쁘다고 평가할 이유가 하나도 없으니까. 그런데 적어도 남의 일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가족의 일에도 적극적으로 임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몇 해 전 남편의 이런 성향을 일찌감치 깨닫고 제발 내 편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남편 핸드폰 번호를 '내편❤️'이라고 저장해뒀었다. '내 편이 돼라, 내 편이 돼라' 몇 년 동안 주술처럼 구슬려도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닫는다. 언젠가 본인의 마음과 머리로 진정으로 깨닫는 날이 오겠지. 하지만 나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으련다. 기대한 만큼 실망도 상처도 크니까, 그냥 '나는 나, 그러니까 나는 나 스스로 지켜야 해!'라는 마음으로 사는 게 속이 시원할 것 같다. 토요일인 오늘도 아이들과 전쟁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과격하고 엉뚱하고 어이없는 아이들의 행동, 말, 노는 모습을 보며 남자들은 도대체가 이해할수없다며 여자와 다른 그들의 뇌구조를 탓해본다. 아이들이 다 큰 후,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남자 셋에 끼어 살며 나다운 모습으로 늙어갈 수는 있을까? 화를 내려놓으려 청소도 깨끗하게 했는데 다시 우울해지는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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