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생활 첫 외박을 기록하다.
군입대한 아이의 첫 외박을 함께하기 위해 토요일 새벽.
길을 나섰다.
금요일 오전 이미 친정 부모님과 언니가 고성에 도착했고, 우리는 아이의 여자 친구를 데리고 고성으로 출발했다. 오후에는 동생네 가족이 합류하여 대규모 가족행사가 된 첫 외박을 남겨보기로 했다.
자대 배치 후 벌써 2개월이 지났으니 아이를 본 지 꽤나 시간이 흘렀다. 부모인 우리는 물론이지만 가족들도 모두 군입대한 손자, 조카, 사촌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이제 막 이등병 계급장을 떼고 일병이 된 아이도 며칠 전부터는 전화 통화를 할 때면 몇 시에 오시느냐, 어디서 누구와 출발하느냐 등등을 묻고 계획 등을 살폈다. 아마도 그 기다림이 매우 설레는 모양이었다. 왜 안 그렇겠나, 여자 친구도 보고 싶고 서울로부터 매우 먼 곳이라 상대적으로 느끼는 거리감이 더 컷을 것이다.
강원도 고성까지는 자동차로 약 4시간 30분이 걸렸다. 새벽 출발이었지만 마땅한 휴게소를 찾는 것도 힘들었다. 양평휴게소에 들러 간단하게 요기라도 하고 싶었지만 입구부터 늘어선 길을 헤집고 들어가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차라리 쉬지 않고 달려서 막힌 구간을 벗어나 얼른 아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드디어 아이를 만나기 위한 장소인 간성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백팩을 메고 서있는 까무잡잡하고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아이를 보니 반갑기도 했지만 대견스럽기도 했다. 아이에게 고성은 아주 어렸을 적 기억도 없는 여행으로 와봤을 뿐인 낯선 곳이다. 아이도 이른 아침 선임들과 부대에서 나와 아침으로 국밥을 먹고 이발까지 마치고 터미널 근처에서 가족과 여자 친구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는 가족들과의 점심메뉴로 송지호 막국수를 추천했다. 부대 내에서 나름대로 맛집을 알아내고 어디를 가면 좋을지를 알아보려 애쓴 모양이었다. 역시나 막국수와 메밀전병, 보쌈이 맛있었다. 막국수는 기호에 맞춰 먹을 수 있게 들기름, 설탕, 식초, 양념을 적당히 했더니 더 맛있었다.
식사를 한 후 바다 전망 카페인 스퀘어루트에 들렀다.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느끼며, 제대로 얼굴도 보며 군생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에너지를 비축하여 1박 2일의 외박을 최대한 알차게 지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다음 행선지를 계획했다. 역시 다음은 최고의 할인마트인 영외 군마트를 가기로 했다. 함께 온 가족들에게 작은 선물인 셈이다. 입장권을 소지 한 직계가족만 들어갈 수 있으니 모두 들어갈 수는 없다. 필요한 물품을 사전에 주문받아 아이와 대표로 들어가 물건을 구입했다. 품목이 많으니 꽤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
쇼핑을 마치고 나니 오후 2시 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이와 여자 친구에게 둘 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저녁 먹을 시간까지는 서로 다른 일정을 보내기로 했다. 우리는 부모님을 모시고 통일전망대와 김일성 별장, 이승만 별장, 이기붕 별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통일전망대 입구에서도 우리 아이와 같은 부대 소속의 군인들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 말할 수 없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섞여 숙연해지기도 했다.
길이 끝날 것 같은 곳에서 들어가는 통일전망대는 더욱 새롭게 느껴졌다.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바라본 북쪽의 검문소로 보이는 건물도 볼 수 있었다. 토요일 날씨가 매우 맑지는 않아서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군에 아이를 보내놓고 보니 더욱 안전하게 지내고 있는 일상의 소중함에 감사함을 느끼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3시간으로 관광을 제한하고 있어서 박물관까지 들러 나오는 길에 친정 엄마는 우리 손자 같은 아이들이라며 차에 있는 젤리를 주고 싶다는 것이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 간식이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은 나 역시 같았지만 근무 중인 군인이기에 안 된다며 엄마를 말려야 했다.
오는 길에 들른 이승만별장, 김일성 별장, 이기붕 별장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짧은 시간에 둘러볼 수 있었다. 김일성 별장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은 매우 고요하고 한가로웠다. 강원도만의 선선하고 청정지역이라는 느낌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바람막이를 입어야 몸의 온도가 적당하게 느껴질 정도이니 말이다.
저녁시간 숙소인 사촌언니의 별장으로 들어와 준비해 온 고기를 굽고, 할머니가 가져오신 열무김치며 각종 밑반찬을 꺼내고 수박을 썰고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여 함께 온 가족들과 정을 나누었다. 웃고 이야기하며 오랜만에 만난 아이와 함께 군대에서의 아이의 첫 외출의 밤이 깊어가지만 아쉬워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해변을 걸으며 조개껍데기를 주웠다. 동생네 조카들도 저녁 해변 산책을 매우 좋아하며 시원한 바다를 즐겼다.
다음 날 아침 새벽부터 일어나 부모님을 위한 누룽지 한식차림과 나머지 가족들을 위한 브런치 메뉴를 준비했다. 일어나는 순서대로 따뜻하게 먹을 수 있게 계란프라이는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20개쯤 한 것 같다. 아침을 먹고 친정 부모님과 둘째 언니는 먼저 시골로 돌아가기로 했다. 워낙 먼 길이라 일찍 출발해야 밀리지 않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7시간 이상을 운전하며 오가는 길이 힘드신 부모님과 언니는 손자와 조카의 군대생활 덕분에 좋은 공기 마시며 시원하게 있다 가신다며 5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의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남은 가족들은 고성의 건봉사로 향했다. 건봉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는 우리나라 4대 사찰 중 한 곳이다. 워낙 깊은 산속에 위치하고 있어서 산길을 오르다 배가 고플 정도였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백진주 같기도 하고 작은 원석처럼 보여 신비로움을 더했다. 해탈과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의 몸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이 더욱 소중하고 그 어떤 보석보다 귀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부는 이곳에 온 가족들 이름을 기왓장에 새기며 한참을 수고하였는데 소원성취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건봉사에서의 기억을 남겼다.
점심을 먹은 후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라벤더 팜은 가는 길 입구부터 보라색으로 깔린 도로가 흥미로웠다. 약 300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입구까지 예쁘게 도로를 포장하여 오는 이들의 발걸음을 들뜨게 하는 듯 보였다. 입구는 유럽의 궁전 정원을 옮겨 놓은 듯 한 작은 정원으로 소박한 느낌을 주었다. 한 여름 보라색 꽃과 여러 종류의 꽃을 볼 수 있는 라벤더팜이 이번 1박 2일 일정의 휴식과 마무리를 위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메타세쿼이아 숲은 벤치에 앉아 초록의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군에 복귀할 시간에 맞춰 처음 만났던 장소인 간성터미널에 아이를 남겨두고 무거운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원래 있었던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기에 아쉽지만 기꺼이 1박 2일의 외박을 추억하며 서울로 향했다.
고성을 떠나는 시간이 낮이 아니어서인지 낯섦과 먹먹한 느낌이 오래도록 남았다. 설악산 울산바위를 오른쪽으로 두고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내내 나의 마음속에 다음 신병휴가를 기다릴 아이 생각에 더욱 애잔한 마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