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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를 품은 가을

코스모스 군락지

by 솔찬제티

이른 봄 유채꽃을 보러 극성스럽게 제주도까지 달려가는 열정을 보였던 나, 봄보다 더 짧은 가을, 코스모스 또한 두 눈 가득 담고 싶었다. 나의 경우는 계절의 구분을 생활의 변화로 구분하는데 봄은 계절의 시작을 알리고 가을은 긴 겨울을 준비하는 계절로 여기고 있다. 봄부터 여름까지 싹을 틔우고 키워 낸 나무는 잎을 떨구고 다시 다음 해를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며 나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가을은 차분하고 감성적이 되어가며 누구든 시인이 되기 충분한 계절이다. 가을 동안 볼 수 있는 많은 풍경을 볼 수 있기를 바라며 마음속에 시 한 편, 수필 한 편의 기록을 남기기를 소망한다. 기나긴 추운 겨울이 오기 전 나는 또 하나의 가을 풍경 중 단연 으뜸인 코스모스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글쓰기 모임은 매주 한 편의 글쓰기를 완성하는 목표를 가지고 글을 쓰고 있다. 서로의 글을 함께 공유하며 앞으로의 글쓰기를 독려하는 모임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러다 계절이 바뀌는 시점이면 좋은 답사 장소를 찾아 언제든 길을 나서기도 한다. 모임의 소통과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존중하는 마음을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다. 답사 장소는 의미를 담아 기록할 수 있고, 기억에 담아 둘 장소가 있다면 추천하여 정하고 있다.



S선생님은 누구보다 열정이 많은 분이며, 정보공유 센터의 역할을 맡아주고, 또한 중추적인 역할을 해주고 계시기 때문에 모임이 이어질 수 있어 참 감사하다. K선생님은 글쓰기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통해 날카롭게 글을 봐주시는 분이다. 매우 세련되고 글을 쓰고 보는 남다른 문체를 지닌 분이다. 글쓰기 모임의 회원들 모두 각자가 지닌 역할을 누구보다 글쓰기에 애정을 쏟고 사랑하는 분들이다. 매주 월요일 저녁 만남을 통해 글을 공유하는 작은 규칙을 정하여 실천해오고 있다. 두 분의 선생님과 함께하며 나 역시도 힘을 얻어 지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어 감사하다.




이번 답사일정은 행주산성에서 멀지 않은 강매 석교공원의 코스모스 군락지를 다녀왔다. 재래종과 신품종이 뒤섞여 탐스러운 코스모스를 보며 눈에 한가득 담을 수 있는 곳이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를 오가며 길가에 무심히 피어있는 코스모스로 친구들과 내기 게임을 즐기던 시절이 있었다. 한 송이씩 꺾어 들고 가위 바위 보를 하며 이긴 사람이 코스모스의 잎을 누가 빨리 떨어뜨리는지를 정하는 게임이다. 때때로 매우 질긴 코스모스 꽃을 선택했을 때는 진 것도 억울한데 어쩔 수 없는 벌칙으로 친구의 책가방을 동네 입구까지 메고 가는 수고로움을 견뎌야 했다. 어린 시절 추억 속 코스모스가 무리 지어 피어있는 곳이 서울에서 멀지 않았기에 찾아볼 수 있어 좋았다.




점심메뉴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할 틈도 없이 행주산성의 원조국수를 먹기로 했다. 약간은 쌀쌀한 탓에 멸치육수가 진하게 우러난 잔치국수가 제격이었다. 이곳의 멸치국수는 특별히 찬바람이 날 때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국수의 양도 어마어마했지만 진한 국물은 가끔 국수를 생각나게 한다. 요즘에는 대기 없이 바로 입장하여 먹을 수 있었다. 날씨 탓도 있겠지만 이곳의 국수는 찬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계절음식 같다.




국수를 먹고 난 뒤 오늘 답사장소인 석교공원을 볼 수 있는 커피숍으로 향했다. 지대가 높아서 드넓은 코스모스 밭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멀리 한강을 지나는 다리를 볼 수 있다. 이름을 알 수 없지만 얕은 산아래로 인천공항으로 가는 철도까지 지나는 것을 볼 수 있는 가슴이 탁 트이는 곳이다. 각자의 취향대로 차를 시켜 마신 뒤 석교공원 코스모스 꽃 속으로 들어갔다.




S선생님은 코스모스 사이 어딘가 계실 테지만 어디론가 사라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K선생님도 코스모스 사이를 돌아다니며 핸드폰 카메라를 연신 움직이고 계셨다. K 선생님은 최근 몇 년 간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가을을 함께 할 수 없었기에 그 간절함이 매우 크게 느껴졌다고 한다. 사계절이 여름인 나라에서 매우 오랫동안 지냈기 때문에 이번 가을은 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고 했다. 그 아쉬움을 달래고자 매주 고궁 나들이를 하며 눈으로 마음으로 가을을 담는단다.




코스모스를 품은 가을은 더욱 청명하다. 분명 내년 가을에도 코스모스는 필테지만 지금 이 순간, 이곳,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을 담으며 겨울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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