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벌 전문가 남편에게 양봉을 배우기 시작한 아내 1

우울증 극복 및 자가치료를 위한 노력, 힐링 양봉

by 지오엄마

[ 토종벌 전문가 남편에게 양봉을 배우기 시작한 아내 1 ]

- 우울증 극복 및 자가치료를 위한 노력, 힐링 양봉 -


< 프롤로그 >


#1. 시골에 다시 돌아오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어른이 되면 반드시 서울에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래서 좋지 않은 머리를 부여잡고 여차여차하여 서울 소재지 대학에 입학하는 데 성공했다.

조리외식서비스 경영학 학사를 취득하고, L기업에 입사하여 농산물 유통 MD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던 20대 후반의 어느 날, 배추 농사를 짓는 한 농민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중간 유통업자로부터 대금을 받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전화상으로 들려온, 그 농민이 내뱉은 첫마디가 '나는 힘이 없는 농사꾼이다. 사기를 당했다. 도와달라'였다. 그때부터 농산물 산지유통 가격이 아닌 농산물 생산을 위해 열심히 땀 흘리는 농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후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지방자치단체 농업직 공무원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시골로 돌아오게 되었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고 자라듯 나는 시골에서 지내야 하는 사람이었다. 농민들과 대면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내가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있다는 생각에 매일 뿌듯함을 느끼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곤충과 식물을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청년을 우연히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2. 꿀벌과 사랑에 빠진 남편

남편은 어린 시절 나무와 꽃, 벌을 아주 많이 기르고 싶어 했다고 했다. 실제로 그가 태어나고 자라온 시골집 마당에는 수십 여 종의 나무와 꽃들이 심어져 있고, 그 사이에 벌통이 놓여있다. 그리고 나는 매일 아침 마당 한가운데 서서 두리번거리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거실 유리 창문을 통해 지켜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생물학과 원예학을 전공한 남편이 교생실습까지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된 교사라는 직업을 포기하면서까지 꿀벌 육성을 전업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평소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그 이유에 대해 미루어 짐작은 할 수 있다.

15년 전, 그는 서양벌 2통을 구입하여 취미 삼아 처음 양봉을 시작하였는데, 사육하다 보니 어느덧 군수가 400통으로 늘어나 있었다고 한다. 때 마침 이상기후 변화와 각종 바이러스에 취약해진 토종벌이 멸종 위기에 처한 상황을 직면하면서, 이상하게도 본인이 직접 뛰어들어서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이후 그는 양봉농가에서 한봉농가로 전환하고, 농진청 및 농업기술센터와의 협업을 통해 우수형질 선발을 통한 개량품종을 일반 농가에 보급하는 사업에 앞장서왔다.

어느 날 남편이 날개가 잘린 일벌 한 마리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몸체를 쓰다듬어 주며 혼자 중얼거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릴 적 남편의 모습이 상상으로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남편이 말하는 어린 시절 벌을 사랑했던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그가 토종벌 육성에 인생을 투자할 이유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3. 힐링 양봉, 나도 한 번 배워볼까?

늦은 나이에 예쁜 딸을 출산하고 극심한 산후우울증이 찾아왔다. 보통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괜찮아진다고 하는데 그럴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자, 어느 날 남편이 나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취미로 토종벌 한 번 키워볼래?" 반려 곤충으로서 애정을 가지고 기르다 보면 정서적인 안정에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남편은 평소에 화도 한 번 내지 않을 정도로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인데, 그가 그런 성향을 가진 것은 타고난 것일까, 아님 오랜 시간 벌을 키워서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더 나아가 원예치료와 마찬가지로 양봉 분야에서도 심리치료가 가능할까 싶었다. 그래서 내가 한 번 체험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취미로 양봉을 해보겠냐는 남편의 말에 대답했다. "해볼게. 가르쳐줘"

토종벌 전문가인 남편에게 양봉을 배워보겠다고 다짐한 순간 이미 우울증이 다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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