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우리의 다음카카오?? 아득해진 다음의 아고라 시절을 기억하며...
큰 아이가 얼마 전에 신청한 카카오 카드가 배송되었다. 식탁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새 카드를 들여다보던 아들이 뜬금없이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 엄마! 카카오 체크카드 처음 나왔을 때 엄청 히트했던 거 알아? 하루 실적이 다른 카드회사를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았대.
- 그래? 전혀 몰랐는데..., 이유가 뭐였대?
그러자 아들 녀석은 무심한 투로 이렇게 대답했다.
- 그냥 디자인이 예뻐서 그랬대.
무슨 엄청난 비결이라도 있는 건가 기대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단순한 이유였다. 그러고 보니 손에 쥔 감각적인 파스텔 색감 위에 그려진 귀여운 캐릭터의 카드는 누가 봐도 앙증맞다. 단정하지만 어딘지 무감각한 느낌의 기존 카드들과는 남다른 발상이 젊은 층에 딱 소구 될 만하다.
- 정말이야? 정말 그 이유가 다야?
그럼 별다른 이유라도 더 필요하냐는 듯 어깨를 으슥하고선 아들은 이내 보고 있던 휴대폰 화면에 눈을 고정시킨다.
아아~ 나는 가끔 이런 순간, 엄청난 세상의 비밀을 깨닫고 마는 것이다!! 새로운 카드가 론칭해서 히트하려면 디자인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내가 못 말리는 진지층이란 사실을!
잠시 핸드폰을 들고 '체크카드'란 키워드를 넣어 검색해 본다. 과연 첫 출시의 돌풍 소식. 출범 3주 만에 150만 장 돌파. 인터넷 전문은행의 체크카드 발급 수가 몇몇 전 업계 카드사의 누적 발급 건수를 출범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넘어섰다는 뉴스가 줄줄이 나온다.
'아니 카카오야, 너네 이때는 이렇게 잘해놓고 지금은 왜!'
왜 이 순간에 하필 그 생각이 났을까? 한동안 새파랗게 질려 나를 좌절의 구렁텅이에서 헤매게 만들었던 '주식 계좌'가 ㅠㅠㅠㅠ
코로나로 풀린 유동성의 여파는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아들과 그 친구들은 물론, 평생 재테크와는 담쌓고 살던 나 같은 사람까지 소액 주주로 만들었다. 그렇다. 그렇게 한 때 테슬라 신화를 추앙하던 아들은 확신의 테슬람이 되었고 난 경제 관련 유튜브를 보며 테크주를 샀다. 그리고 몇 달 후부터 우리는 비싼 수업료를 치르며 반강제로 경제 수업을 받게 되었다.
요즈음의 테슬라 관련 외신에선 예전 일론 머스크의 오너 리스크 따위는 가볍게 묻을 만큼 놀랍도록 저렴한 중국 전기차의 공습소식으로 가득하지만, 당시 잘 나가던 테슬라의 주가는 너무 올랐다는 이유 등으로 등락을 거듭해서 우리 집의 테슬람을 울렸다. 그리고 내가 샀던 테크주는 다른 이유로 하락을 이어갔다. 거듭되는 카카오 계열사들의 물적 분할로 주가는 곤두박질했고 이에 소액 주주들의 원성이 자자했던 것이다.
결국 원치 않은 세상 공부를 혹독하게 한 둘은 한 명은 정기 etf로, 나머지 한 명은 주제 파악 후 주식 시장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결말을 맞았다. 그리고선 천조국 달러 팽창의 수혜를 끝끝내 받아먹지 못한 스스로의 참을성을 처절하게 후회해야만 했다. 이렇게 작년에 비워버린 주식 계좌의 쓰디쓴 기억을 애써 지우며 다시 포털의 뉴스를 살펴본다. 그런데 뉴스를 읽을 때마다 마지막에 나란히 등장하는 이 낯익은 아이들.
아니 잠깐만, 여기는 다음인데 왜 카카오 친구들이? 새삼 어디에나 이 친구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당연하지, 이젠 다음카카오니까. 그러고 보니 한동안 카카오 아이디와 다음 아이디를 연동하라는 메시지를 한사코 거부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귀찮아 죽겠는데 내가 왜 거대 기업의 일방적인 요구로 개인 정보 통합을 해야 하지? 하면서 미루고 미루다가 더 이상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겨우 연동했던 기억. 이제 뭐가 남았지? 음원사이트는 아직 버티고 있는 건가? 뭐 화려한 이모티콘 그까짓 거 음악 듣는 데에 지장은 없으니까. 하지만 이것도 버티다가 결국엔 연동하게 되려나? 그리고 뭐 처음엔 살짝 짜증이 났지만, QR코드 연동 로그인과 카톡 송금의 편리함은 이내 관련 기억을 묻어버렸다. 인간은 역시 편리함의 동물인 것이다. ㅠㅠㅠㅠ
그러고 보니 또 하나, 다음카카오가 내게 강제로 떠 안기다시피 주었던 선물 하나가 생각난다. 지난 수년 동안의 댓글 모음 압축 파일! 가져갈 테면 가져가고 아니면 당신의 모든 댓글은 폐기된다는 통보와 함께 안겨준 애초에 수요 하지 않았던 선물!
원래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다음이 준 선물을 받고선 몹시 슬펐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파일보관함에 깊숙이 모셔둔 선물 상자를 펼쳐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선물은 마치, 한 시대를 함께해 왔던 소통의 장이 굳게 닫혀버리는 상징처럼 여겨졌으니까.
아들에게는 당연히 '다음카카오'지만 내게는 오랫동안 그냥 '다음'이었다. IMF시절 온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던 박찬호와 박세리, 그 뒤를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LPGA의 우승컵을 들어 올린 프로골퍼 '땅콩 김미현'이 초창기 광고 모델을 했던 그 DAUM. 구글보다도 먼저 생긴 토종 인터넷 사이트 다음이 두 번째 1등을 한 골퍼의 이미지를 역발상으로 뒤집으며 소통의 시대를 이어가겠다는 선언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런 광고가 있었다는 사실은 아마 지금 다음카카오 회사의 젊은 직원들조차 모를 것이다. 아고라로 강조하던 다음의 소통은 그렇게 내게 미래와 진보의 융합처럼 여겨졌다. 고대 그리스의 광장 아고라가 시간을 넘어 현대 한국의 첨단과 만나는 유쾌한 발상. 이 시기 다음 카페의 전성기에 아기 시절을 보냈던 큰아이는, 당시 가입한 다음의 한 육아 카페와 추억을 함께 하며 자랐다. (작은 아이는 이후로 반짝 붐이 일었던 싸이월드에 자신의 유아 시절을 새겨놓은 바 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시대는 지나고, 이제 포털에서의 소통은 24시간 내에 사라지는 시한부 운명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대 역행적인 소동은 잠시 뉴스거리였지만 이내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잊혀졌다. 이런 상황을 먼저 의도한 것이 사실 포털 쪽이었다는 씁쓸한 사실도 잊혀졌다. 한때 시중의 여론이 모이고 활발했던 다음 포털의 '아고라' 시절을 이제 그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나처럼 별 걸 다 기억하는 이상한 부류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 너, 다음(DAUM)이 무슨 뜻인지 알아?
- 아니요.
정말 나는 왜 별 걸 다 기억하는 걸까? 다음(NEXT)과 다음(多音)까지도.
더 많은 목소리(多音)를 담아 미래(NEXT)를 열어가겠다는 20년도 더 된 광고 카피 따위를 왜 여태 기억해서 혼자 씁쓸해하는 것인가 말이다. 그때 그 문구는 첨단 기술과 인간적 소통이 함께 하는 너무 근사한 미래였다. 지금처럼 여론을 한 공간 안에 한시적으로 붙잡아두려는 폐쇄성과 달리 내게는 상업성이 기술과 결합해 담을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처럼 여겨졌다. 내게는 오래도록 그것이 곧 다음(DAUM)의 '정체성'이었다.
가끔 다음의 아고라 시절이 계속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선거철마다 자진(?)해서 댓글 운용 지침을 바꾸게 만들었던 포털에 대한 권력의 입김이 없었더라면? 아마 그랬어도 이념의 시대가 가고 개별화의 시대가 온 것처럼, SNS의 거센 파고 앞에서 예전만큼의 위력은 갖지 못했을 것이다. 광장에서 소통하던 많은 목소리들도 결국에는 영상 OTT와 소셜미디어와 개별 커뮤니티등을 찾아 떠났을 것이다.
포털의 여러 수익 모델의 생명이 결국은 사업성을 따라 그 존폐를 달리 한 것처럼, 수익 창출에는 딱히 도움도 안되면서 부담스럽게도 대외적인 주목만 잔뜩 끌었던 여론 광장의 미래 역시 길지는 못했으리라.
그것은 시대의 문제였을까? 때로는 가정이 무의미한 질문들이 있다. 그러니 딱히 살 길을 찾아 나선 포털의 잘못도 아닌 것이다. 상업 자본이 그런 문제까지 책임질 일은 아니니까. (물론 해주면 몹시 고마운 일이지만.) 문제는 광고 문구를 너무 오래 기억해 버린, 그리고 너무 믿어버린 내게 있는 것이다. 시대가 바꿔버린 정체성을 혼자서만 재빨리 인정하지 못한 잘못.
심심치 않게 AI 기술의 발달이 인간 자체를 위협하게 될 거란 소리가 들려온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시작해 디지털 시대의 처음 태동부터 함께한 동시대의 사람들처럼 나 역시 그 과정을 다시 지켜보고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라떼 한 잔을 마시며 중얼거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한 때, 새로운 기술과 진보적이고 인간적인 소통이 함께 할 수 있을 거라 꿈꾸었던 순진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지만 당장 아들 녀석은 옆에서 이렇게 한 소리 할지 모르겠다. 카카오페이와 카톡이 없는 세상 따위는 아예 상상이 안되는데 뭐가 그렇게 그리운 거냐고. 스페이스 X의 사설 인공위성이 지구 주위를 뒤덮는 시대에 그 무슨 구석기시대 뗀석기 찧는 것 같은 소리냐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