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발의 차이
2005년 3월, 대구시의 선수들이 전국 소년체전 대구 대표 선수로 선발되기 위해 시민운동장으로 모였다. 모두 추운 겨울을 오로지 이 대회를 위해 달려왔을 것이다. 나 또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중학교 형들과 훈련하며 다행히도 큰 부상 없이 선발전에 왔다. 운동장에 들어서니 오랜만에 친구들을 마주했다. 기현이부터 도혁, 준모까지 모두 각자 속해 있는 학교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이 선수들 중 단 2명만이 소년체전을 갈 수 있는 표를 가질 수 있다. 서로 인사를 나누었지만 역시나 긴장감이 맴돌았다. 먼저 예선전을 치렀는데 그 어느 때보다 출전 선수들이 많았다. 다행히 잘 뛰는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져 있어서 쉽게 예선을 통과할 수 있었다. 결승 명단을 보니 예상했던 데로 합동팀에서 훈련한 친구들 대다수가 올라왔다. 역시나 경쟁 상대는 1차전에서 1위 한 기현이었다. 소문에는 동계 훈련도 잘 받았다고 했다. 다른 친구들도 컨디션이 좋아 보이기는 했으나 예선전 기록을 봤을 때 그다지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서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신경전을 펼칠 것이기에 마지막 100m에서 승부가 가려질 것이라 예상했다. 오로지 나는 기현이만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대망의 결승전이 진행되었다.
심판의 신호에 따라 모두가 출발선에 섰다. 이제 3분 후면 운명이 결정된다. 모두가 숨죽여 있는 가운데 총소리가 울렸다. 눈치 싸움을 하면서 경기가 느리게 운영될 것이라 예상했으나 한 명이 빠른 속도로 치고 나갔다. 상곡초의 수금이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본인의 성적보다는 같은 학교 친구의 페이스 메이커로 출전한 듯했다. 모든 선수들이 일제히 수금이 뒤를 따라 뛰었다. 나는 4번째에 자리를 잡고 졸졸 따라 뛰며 마지막 150m에서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500m가 지나니 수금이의 속도가 떨어지며 선수들이 앞으로 나갔다. 총 4명의 선수만이 남아 있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기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남은 거리 200m. 가장 신경이 쓰이던 경쟁자의 모습이 안 보이니 계획했던 것보다 더 빨리 앞으로 치고 나갔다. 1등이라 생각하며 마지막 120m 코너를 돌아나가는데 내 옆으로 키 큰 선수 한 명이 지나갔다. 도혁이었다. 이상하게도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다. 긴장감에 느끼지 못했을 뿐이지 초반부터 빠른 속도로 달려온 탓에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2등으로라도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팔을 힘껏 휘두르며 내달렸다. 고작 50m 남았을 때, 이번에는 키가 작은 선수가 지나갔는데, 도혁이와 같은 학교인 준모였다. 이미 내 몸은 한계에 다 달았으며, 패배를 직감했다. 그렇게 경기가 끝났고 전광판을 보니 1등이 2분 18초, 2등이 19초, 3등인 나는 20초였다. 개인 최고 기록을 세웠지만 선발되지 못했다. 골인 직후 한동안 멍하니 누워 있었다. 눈물도 채 나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약점을 보완하고자 했던 단거리 운동이었을까? 아니면 작년에 전국 대회에 입상했다고 의기양양한 자만심이었을까? 답을 내리지 못한 채 대회가 끝났다.
선발전이 끝나고 난 후부터는 훈련을 나가지 않았다. 6학년이기 때문에 진로를 정해야만 했는데 부모님과 상의 끝에 육상 선수 활동은 초등학교에서 끝내기로 했다.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하며 기른 체력으로 중학교에서는 학업에 몰두하기로 했다. 감독 선생님도 나의 선택을 존중해 주셨다. 그렇게 나의 육상 선수 생활이 끝났다. 한동안은 학교생활이 어색했다. 매일 다른 학생들보다 일찍 등교하여 운동장을 달리던 시간. 훈련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 슈퍼에 들러 빵과 우유를 들고 가던 시간.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을 보면 그 시간들은 내게 참으로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나 보다. 다시 열정을 불태우며 달리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무뎌질 때쯤 소식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