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약점을 보완하는 훈련

생애 첫 전지훈련

by 신용욱

운동장에는 1등부터 8위까지의 선수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1등을 한 기현이부터 남부교육청 소속의 도혁이와 준모, 상곡초등학교의 평화까지 선생님들도 대구시에 이렇게 많은 800m 선수들이 합동훈련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그만큼 내년에 열릴 3월 소년체전 평가전이 쟁쟁할 것이라 예상되었다. 첫날이라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기현이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보기와는 달리 순박한 소년이었으며 마음씨가 따뜻한 아이였다. 비록 경쟁 상대이기는 하나 이 친구와 함께 훈련하며 소년체전에서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싶었다. 다른 친구들도 성격들이 좋아 함께 조깅하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렇게 첫 훈련이 끝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감독 선생님이 뜻밖의 이야기를 하셨다.


“이번 동계 훈련은 합동팀이 아닌 중학교 형들과 함께 할 거야.”


중학교 이름은 소곡중학교로 단거리로 유명한 학교였다. 800m 선수가 왜 단거리 학교와 훈련을 하는 거지 의문을 가졌으나 감독 선생님은 스피드가 약한 나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결정했다고 하셨다. 친구들과 함께 훈련하는 것이 좋은 효과가 나타날 것 같았고, 무엇보다 새로 오신 코치님과 호흡이 괜찮았다. 합동팀에서 훈련하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으나 어린 나이이다 보니 감독 선생님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소곡중학교 형들과 함께 훈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다음날 운동장에 도착하여 형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친구들이 조깅을 시작하기 전 의아한 표정으로 나에게 잠시 왔다. 이때도 기현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용욱아 우리랑 훈련 안 하는 거야?”

“응, 오늘부터 중학교 형들이랑 할 거 같아.”


그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 모두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심 괜찮은 표정을 지었지만 아쉬운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친구들은 뛰러 갔다. 운동장을 오고 가며 마주치겠지만 혼자 동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훈련하는 것이 맞는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중학교 형들은 수업이 늦게까지 있어 운동 시작 시간도 늦었다. 친구들이 뛰는 것을 한참을 보다 보니 소곡중학교 형들이 왔다.


감독 선생님은 나를 데리고 운동장 한편에 있는 사무실로 갔다. 역시 명문은 다른 것인가. 냉장고부터 각종 운동기구, 소파 등 운동을 편히 할 수 있도록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는 매번 돗자리를 피거나 바닥에 앉아서 쉬었다. 그에 비하면 이곳은 호화스러웠다. 짐을 풀고 중학교 감독 선생님과 형들에게 인사를 했는데, 소극적인 성격에다 나이 차도 많이 나는 형들이라 긴장이 됐다. 그나마 지난해 함께 소년체전에 출전했던 진한이 형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중학교 형들은 확실히 달랐다. 단거리 선수들이다 보니 체격도 컸으며, 성격이 시원하면서도 거친 면이 있었다. 형들은 내가 이곳에 온 이유에 대해서 크게 묻지 않았으며, 열심히 하라는 말과 함께 이름 대신 꼬맹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나의 동계 훈련이 시작됐다.


중학교 단거리 훈련은 지금까지 해왔던 운동과 전혀 달랐다. 합동팀이나 학교에서 개인 운동을 할 때는 간단한 체조를 하고 곧장 조깅을 뛰러 갔는데, 여기서는 허들 운동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보강 운동을 진행했다. 허들 운동을 하는데 처음 해보는 운동이다 보니 박자감도 전혀 맞지 않았고 특히 키가 작은 터라 형들은 쉽게 넘는 높이를 까치발을 들고 겨우 넘었다. 이것만 해도 힘든데 이 운동이 준비운동이라는 형들의 말에 앞으로의 고난이 눈앞에 보였다. 어색함도 잠시 형들의 유쾌한 성격 덕에 금세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몸에 좋은 영양제부터 운동 물품까지 이것저것 챙겨주기도 했다. 그런 형들을 보며 동경심도 생겼다. 입고 있는 옷과 신발을 따라 구매했으며, 달리는 동작도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운동장에서 다 같이 질주를 뛸 때면 내심 어깨에 힘도 들어갔다. 운동장에서 마주치던 합동팀 친구들과도 자연스레 멀어져 갈 때쯤, 구미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전지훈련은 추운 날씨를 피해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에서 훈련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분위기 전환의 이유도 있다. 처음으로 가는 전지훈련이다 보니 부모님의 걱정이 크셨다. 초등학생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오랜 기간 집을 떠나 있었던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반대를 하셨지만 중요한 시기이기도 하고 감독 선생님의 설득에 넘어가셨다. 여행 한번 제대로 가본 적도 없어서 그 흔한 캐리어도 없었다. 집 근처에 있는 시장에 가서 튼튼해 보이는 것으로 구매하여 짐을 챙겼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는 것에 두려움도 있었지만 설렘도 있었다. 한층 더 성장해서 오리라 다짐했다. 다음날 아침. 감독 선생님 차를 타고 구미를 향했다. 소곡중학교 형들은 미리 가 있었다. 도착한 숙소는 운동장 근처에 있는 리조트로 방 하나에 모든 선수들이 함께 지냈다. 짐을 풀고 있으니 지친 얼굴을 한 형들이 들어왔다.


“와 이러다 죽는 거 아니냐 진짜.”

평소 힘든 내색을 안 하는 주장도 곡소리를 냈다. 전부 들어오자마자 바닥에 누워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벌써 지옥이 펼쳐진 것만 같았다. 내일부터 잘 따라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첫날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는 길에 코치님께서 오늘 훈련은 차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하니 일찍 준비하라고 하셨다. 형들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울상을 지었다. 잠깐의 휴식 후 운동 준비를 끝내고 차에 올라탔다. 창밖을 보고 한참을 달리니 어느덧 도심을 벗어나 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착한 곳은 낙동강 주변의 모래사장이었다. 코치님은 오늘 이곳에서 인터벌 트레이닝을 진행할 거라고 하셨다. 매번 트랙과 공원을 달리던 나는 색다른 훈련 장소에 다가올 고통은 모른 채 신기하기만 했다.

돗자리를 펴고 간단한 스트레칭 후에 둑길을 따라 몸을 풀기 시작했다. 강을 보며 달리니 기분전환도 되고 새로운 장소가 주는 신선함도 있었다. 아무래도 겨울이다 보니 몸을 확실하게 풀어주지 않으면 부상의 염려가 있기 때문에 땀을 충분히 냈다. 각자 몸에 맞게 준비운동을 끝낸 후 코치님 앞으로 모였다. 이번 훈련은 모래사장에서 왕복 달리기를 하는 것이었다. 거리는 약 100m로 개수는 20개였다. 이 정도면 할만하다고 생각했는데 형들은 벌써 혼이 나간 듯했다. 다 같이 출발지로 이동하여 주장형부터 차례대로 출발했다. 나는 맨 마지막이었다. 출발과 동시에 형들과 거리가 벌어졌다. 비록 속도 차이가 난다지만 평소보다 더 빨리 떨어졌다. 그때서야 왜 형들의 표정이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모래이다 보니 다리가 땅으로 푹푹 꺼졌고, 이로 인해 추진력이 떨어져 평소 뛰던 것보다 2배는 힘들었다. 금세 몸이 무거워지고 허벅지가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비록 형들에게 뒤처지기는 했으나 포기하지는 않았다.


꾸역꾸역 참으며 달리다 보니 조금씩 거리가 좁혀지는 것이 느껴졌다. 15개가 지나갈 때쯤 진한이 형이 잡혔다. 형도 중학생이라지만 불과 한 달 전 만해도 초등학생이었다. 갑자기 늘어난 운동량으로 평소에도 지친 기색이 보였다. 힘내라는 말과 함께 형을 지나갔다. 마지막 20개가 끝나고 모두가 모래사장에 거친 숨을 내쉬며 드러누웠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이 훈련을 주기적으로 해준다면 나의 약점이 보완될 것만 같았다. 가볍게 정리운동을 해주고 다시 숙소로 복귀했다.

저녁을 먹고 다들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아무래도 다른 형들은 나이 차가 있었기에 말을 건다거나 장난을 칠 수 없었다. 한창 놀기 좋아하는 초등학생이기에 한 살 차이 나는 진한이 형 옆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장난을 쳤다.

“형 오늘 훈련 마지막에 나한테 잡혔지? 졌지?”

“내가 봐준 거지 인마”

모래사장에서 진행한 훈련 막바지쯤 나에게 잡힌 것으로 진한이 형을 놀렸다. 진한이 형은 웃으며 받아주었다. 그 모습을 보던 주장형이 갑자기 불렀다. 너무 시끄럽게 떠들었나 싶었는데 의외의 말이 나왔다.

“꼬맹이, 진한이가 성격이 좋아서 그렇지 형들 앞에서는 예의를 지켜야 한다.”

이 말을 듣고 난 후 깊은 아차 싶었다. 아무리 친한 형이라고 해도 단체 생활에서는 규율을 지켜야 했다. 둘만 있을 때는 반말을 하더라도 단체로 있을 때는 존댓말도 했었어야 했다. 첫 합숙 생활에다 평소에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운동을 하다 보니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다. 주장 형의 말을 듣고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면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 자리에서 진한이 형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고 그때도 형은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팀의 막내라 빨래에 심부름에 피곤할 법도 한데 형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런 형을 보며 함께 있는 동안만큼이라도 뭐든지 돕겠노라 다짐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교훈을 얻은 전지훈련이 끝나고 대구로 돌아왔다. 제법 날씨가 따뜻해졌다. 그것은 곧 결전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했다.

작가의 이전글9. 방심은 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