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는 여전히 쓰다.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찾아올 때쯤 선수 인생 첫 대회였던 서구 육상대회가 찾아왔다. 1년 사이 무섭게 성장한 나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800m를 1등으로 들어왔다. 이번 대회에서 100m도 부담 없이 출전해 보았는데, 스피드가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단거리 선수들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처럼 다른 종목도 뛰어보면서 지난해와는 달리 대회를 즐길 수 있었다. 확실히 전국 대회에서 입상을 해보니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서구 대회가 마무리되고 곧장 대구시 대회를 준비했다. 1차 선발전이기도 하고 동계 훈련 전 몸 상태 점검 차원 정도로 생각하고 긴장감 없이 대회장을 향했다. 대회장에는 새로운 얼굴의 선수들이 등장했다.
엄청난 인원이 줄을 지어 달리는 학교가 보였는데, 대부분이 800m 선수로 보였다. 단일 학교에 저렇게 많은 인원의 선수들이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많았다. 학교 이름은 상곡초등학교로 북구에 있는 학교였다. 인원이 많아서인지 훈련 분위기는 좋아 보였다. 다음은 남부교육청에서 온 선수들이 보였는데, 최근 선생님들 사이에서 좋은 선수들이 많이 있다고 소문난 곳이었다. 하지만 모두 일등은 용욱이가 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내심 대회장에서 인정받고 있는 분위기라 어깨가 많이 올라갔다.
예선전을 가볍게 통과하고 결승을 준비했다. 결승전에는 아까 봤던 상곡초에서 두 명, 남부교육청에서 3명의 선수가 올라왔다. 소문대로 남부교육청 애들이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다. 예선전 기록을 봤을 때 내 최고기록과 차이가 있었고, 컨디션이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출발 신호와 함께 자신 있게 달려 나갔다. 첫 바퀴를 돌았을 때 전혀 힘들지 않았다. 보통은 200m를 남겨놓고 순위경쟁을 펼치는데 이날은 압도적으로 골인하고 싶다는 생각에 300m 지점부터 앞으로 치고 나갔다. 예상대로 모든 선수들이 떨어졌고, 일등이라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남은 거리는 100m. 하늘생명컵 대회 이후 훈련을 제대로 안 한 것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조금씩 다리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2위와의 차이는 많이 나고 있었다. 잡힐 것 같지는 않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몸의 리듬에 집중했다. 골인 지점이 점점 가까워지던 그 순간 함성이 나왔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등으로 들어오는 나에게 보내는 함성인 줄 알았으나 골인 후에 그것이 다른 상황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역전을 당했다. 나는 2위로 들어왔다. 마지막 30m를 남겨두고 대응할 겨를도 없이 추월당했다. 뒤에서 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완벽한 나의 패배였다.
일등은 남부교육청 소속으로 처음 보는 친구였다. 이름은 유기현. 키는 나보다 조금 더 컸다. 운동을 많이 했는지 마른 체형으로 까만 얼굴에 주근깨도 있었다. 본인도 일등을 할 줄 몰랐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경기장 밖을 향했다. 이윽고 감독 선생님이 오셨는데, 처음으로 크게 혼났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며 방심한 결과다. 나는 자만했고, 오만했다. 형들을 이기고 출전한 전국 소년체전부터 전국 대회 2등을 하기까지. 나도 모르게 우쭐해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비참했다. 동혁이 형이 졸업하면 당연히 내가 대구시를 대표할 것이라는 것은 큰 착각이었다. 주변 코치들과 친구들은 위로의 말을 건넸으나 들리지 않았다. 오죽하면 대회를 다시 치르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었고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큰 교훈을 얻으며 마지막 5학년 대회가 끝났다.
한동안은 운동 시간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2위를 했다는 것보다 대구시 대회를 쉽게 본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하늘생명컵 입상 후 더 열심히 해야 했다. 내년 3월에 열릴 전국 소년체전 평가전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어쩌면 5학년 때 출전했던 소년체전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이번 동계 훈련 때 정신을 차려야 한다. 며칠을 그렇게 우울했던 시간을 보내다 보니 12월이 다가왔고, 다시 시민 운동장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