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라이벌 관계

자존심이 걸린 대결

by 신용욱

수금이와 나는 3월에 열리는 소년체전 평가전을 목표로 훈련했다. 둘 다 왜소한 체격에 스피드가 약한 편이라 800m에서 1500m, 3000m로 종목을 전향했다. 중학생으로서 뛰는 첫 대회이고 위에 쟁쟁한 형들이 많았기 때문에 선발보다는 기록을 내는 것이 중요했다. 확실히 초등학교 때보다는 운동량이 늘었지만 코치님께서 조절해주신 덕분에 부상없이 겨울을 보낼 수 있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3월이 다가왔다.


매년 삼일절에는 10km 단축마라톤 대회가 열리는데 이 대회는 고등부 형들에게 아주 중요한 대회였다. 우선 전국체육대회 10km 출전권이 걸려있었으며, 각 학교의 기록을 합산하여 이긴 팀은 경주에서 열리는 코오롱 고교 구간마라톤 대회를 출전하게 된다. 코오롱 고교 구간마라톤 대회는 역사가 깊으며, 과거 황영조부터 이봉주까지 스타 선수들은 이 대회를 거쳐 갔다. 삼일절 대회에 이 두 가지 모두가 걸려있다 보니 감독님부터 고등학교 형들까지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컸다. 대구는 선수층이 얇아 사실상 대구체고와 중앙고의 싸움이었는데 오래전부터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어 있었다. 서로 적의가 심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양쪽 학교 선수 모두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대회장에는 각 학교 부모님들이 오셔서 응원을 하셨는데, 기세에 눌리지 않고자 열성을 다했다. 각 학교 지도자와 선수들 사이에서도 긴장감이 맴돌았으며 여기서 지는 팀은 죽는다는 마음가짐까지 보였다. 중앙고 형들은 모두 머리가 짧았는데 머리띠까지 묶으며 결의를 다졌다. 준비운동이 끝나고 각 학교 선수들끼리 모여 함성을 지르고 출발선에 섰다.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신호와 함께 선수들이 운동장을 뛰쳐나갔다. 대회 코스는 운동장을 출발하여 대공원역을 지나 신매역 부근에서 꺾은 후 운동장으로 다시 돌아오는 코스였다. 이 대회는 대공원역 앞에 있는 오르막에서 대부분 승부가 난다고 하여 출발 모습을 보고 그쪽으로 이동했다.

도착 후 얼마 있지 않아 선두가 오고 있었는데 대구체고에 주우현 선수였다. 하지만 승부가 난 정도는 아니었다. 30m 정도 뒤에 2위 그룹이 쫓아가고 있었다. 거기에는 중앙고 두식이형이 있었는데 두식이형은 중등부 3,000m 대구시 기록 보유자로 전국 대회에서도 입상을 많이 한 선수다. 비록 고교 1학년이기는 하나 역시나 유망주답게 좋은 경기를 보이고 있었다. 결과를 끝까지 알 수 없기에 동료들과 부모님들이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기 시작했다. 지옥의 오르막을 올라왔기에 선수들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 선수가 지나가고 다시 운동장으로 향했다. 과연 승리의 여신은 누구 손을 들어줄 것인지 기대가 되었다.

운동장에 있는 시계를 보니 출발 후 30분정도가 지났다. 이제 슬슬 들어올 때가 되었는데 생각하는 순간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곧 선두가 운동장으로 진입한다. 과연 우승자는 누구일까? 멀리서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하는데 파란색 유니폼이 달려오고 있었다. 대구체고의 주우현 선수였다. 후반부에 속도를 더 냈는지 2위 그룹은 보이지 않았다. 대구체고 학부모들이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다. 우승 테이프를 끊은 그의 기록을 보니 32분대였다. 이 코스에서 저 정도 기록을 낸 거라면 전국 대회에서도 입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록이라고 했다. 비록 1등 선수의 기록이 좋으나 합산 기록으로 코오롱 구간마라톤 대회를 가기 때문에 아직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뒤이어 주장 영기형과 두식이형, 대구체고 3학년 선수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이후로는 계속해서 대구체고 선수들만 보였다. 기록 합산을 할 필요도 없이 대구체고의 완벽한 승리였다. 마지막 선수가 골인하고 대구체고 학부모들이 환호를 질렀다. 기분 탓일 수 있으나 그 모습이 마치 보란 듯이 내지르는 느낌이었다. 이와 달리 중앙의 분위기는 참담했다. 코오롱 대회를 출전하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국체전 선발 또한 2명밖에 되지 않았다. 패배감 때문인지 모두가 아무 말 없이 짐 정리를 하고 있었으며. 선수들의 얼굴에는 어둠이 가득했다. 수금이와 나는 처음 느껴보는 살벌한 분위기에 눈치만 보고 있었다. 뒷정리를 끝내고 감독님 앞에 집합을 했다. 혼이 날 줄 알았으나 학교 가서 보자는 말씀만 남기시고는 어디론가 가버리셨다. 어느 말보다도 무서운 말이었다. 다가올 내일을 두려워하며 학교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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