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휴대폰을 별 탈 없이 사용하고 있다. 휴대폰 중독자도 아니고 수집가도 아닌 이상 제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내고 있는 휴대폰을 바꿀 이유는 전혀 없다. 그래도 살짝 아쉬운 것이 있다 면 떨어뜨릴 때마다 강화 유리 필름에 쌓여가는 금들이다. 그 금들은 세월과 함께 거침없이 쭉쭉 뻗어 나갔고 나를 무시한 채 자신의 취향대로 알 수 없는 무늬들을 그려 나갔다. 하지만 전혀 불 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빛이 들어오기만 하면 내가 그들을 무시하기에 충분했으니까.
처음에는 금이 생기고 깨지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눈에 거슬려 이리 닦고 저리 닦고, 안경닦 이로 닦고 알코올 묻힌 화장솜으로 닦고······깨진 유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모두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강박증 환자처럼 어떻게 하면 옥에 티를 없애 버릴 수 있을지 가려버릴 수 있을지 하고 고민하기도 했다.
휴대폰을 떨어뜨려 상처를 내는 일들이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보니 금들이 하나둘씩 쌓여 유 리 필름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시간이 흘러 동일 모델의 유리 필름을 구하기 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데 나만이 동떨어진 과거에 집착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도 몇 년 전에 나온 제품을 사용하고 있냐는 듯한 무시의 시선에 질려 차라 리 포기해버리는 것이 더 편했다.
오늘도 그런 편한 마음으로 오랜만에 상경했다. 젊은 피들로 거리를 메우며 욱적북적하던 홍대 거리는 코로나로 인해 부쩍 한산해졌지만 그래도 홍대답게 오고 가는 사람들이 끊기지는 않았다. 가끔 들려오는 중국어나 영어는 반갑기만 했다. 한치의 공간 낭비도 허용하지 않는 길가 오밀조밀한 상가들은 옛날의 호황을 그리워하며 어려운 환경을 버텨 나가고 있다. 그런 상가들 중에서 도 유독 눈에 들오는 건 폰케이스 매장이었다. 사거리에 서서 어느 쪽을 둘러봐도 폰 게이스 매장 이 눈에 띄었고 매장 앞 큰 글씨로 써붙인 ‘유리필름 할인’이라는 문구는 나를 겨냥한 적들의 달콤한 유혹의 총구 같았다.
내가 그 총에 맞았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일정에도 계획에도 소비 목록에도 없던 “거금”을 카드로 계산하고 있을 때였다. 매장 직원의 손을 거쳐 다시 내 손 안으로 들어온 휴대폰은 새것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고 윤기마저 흐르는 것 같았다.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설쳐 있던 금들이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었고 그 아래 가려졌던 부분들이 다른 부분들과 하나로 이어지며 깔끔하고 환한 완전체의 모습을 드러냈다. 순간 내 것이 맞나 하는 의구심까지 들었다. 수많은 낮과 밤들을 함께 해온 그 금들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오히려 본래의 모습이 낯설고 놀라웠다. 마법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 휴대폰의 변신이 믿기지가 않았다.
매장을 나와서도 기분이 좋은 걸 막을 수가 없었고 막고 싶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거리지만 나의 얼굴에는 실없이 자꾸만 웃음이 났고 눈길은 나도 모르게 손에 든 휴대폰에 가 있었다. 별거 아닌데 이렇게 기분이 좋을 줄은 몰랐다. 뜻하지 않았던 거라 더 그럴 수도 있겠지 만 이러는 자신이 신기하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코웃음이 났다.
혼자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으면서 문득 그 순간 느낀 기분 좋음이 행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뭐 그런 걸 가지고 행복이래라며 비웃겠지만 주체할 수 없도록 좋았던 그 기분을 달리 해석할 수가 없었다. 설령 그것이 행복이 아니다 하더라도 분명 그와 지극히 유 사한 감정일 것이다. 보통의 태생 조건, 보통의 가족, 보통의 능력과 경력, 가진 것이라고는 모두 보통에 보통인 나는 지금까지 보통의 삶을 살아왔고 그 보통의 삶을 유지하려 숨 가쁘게 달려왔어며 그 보통의 삶마저도 잃을까 전전긍긍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보다는 현실에 더 집 중했고 현실에 나를 맞추려고 애써왔다. 그런 나에 있어서 행복은 애초부터 어느 구석에 숨어 있는지 모르는 보석 같은 것이었고 먼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 같은 거였다. 시간이 흘러도 고만고만 한 삶 속에서 나는 욕심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행복에 둔감했다. 지나온 날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이와 비슷한 순간들이 있었을 텐데 아무리 기억의 창고를 더듬어 봐도 이와 견줄만한 순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삶이 팍팍하다고 불평한 적은 없다. 그렇다고 행복하다고 느낀 적도 없었다. 항상 뭔가를 해결해야 했고 항상 뭔가를 해내야 했고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나 실수에 대비해야 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나는 행복에 대한 감각과 행복을 느끼는 능력을 서서히 잃어갔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일들이 더 이상 놀랍지 않게 생각되는 무덤덤함 과 이를 따라온 무기력함도 한몫했을 것이다. 어쩌면 팍팍한 건 내 삶이 아니라 내 마음이었을 것이다. 유리 필름과 같은 사소한 것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비록 짧은 순간에 불과했지만 그 순간에서 뿜어 나온 빛들은 내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무덤덤함 에 금을 내며 휴대폰 유리 필름처럼 길게 뻗어나갔다. 유리 필름에 생겨난 금들에 익숙했듯이 행 복에 무감각했던 신경이 다시 깨어나고 되살아난 것 같다. 향후의 삶이 행복하든 불행하든 유리 필름 같은 순간은 분명 있을 것이고 그 순간들로부터 출발해서 행복의 씨앗을 키워나가도 좋을 듯싶다. 순간순간들의 행복이 더 큰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며.
산유화
2021.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