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순간에 '듣보잡'이 되어버린 연세대 졸업장
미국에서 한국 학벌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테크 쪽은 몰라도, 내가 속한 미국 연예계 산업은 확실히 그랬다.
아는 사람 없으면 진입조차 못한다는 LA 연예계에서, 난 그저 변방에서 온 '듣보잡' 외국인이었다.
한국에서는 누구나 부러워하던 SKY 졸업장이 미국 취업시장에서는 전혀 의미가 없었다.
이력서를 넣어도 내 1년짜리 UCLA 교환학생을 더 쳐줬지, 연세대 학위는 취업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됐다.
우스갯소리로 연세대 말고 고려대(Korea University)를 갔어야했다고 말했을 정도다.
적어도 이름에 Korea가 들어가니까, 국립대 착시현상(?)이 있다는 꽤 그럴 듯한 이야기였다.
초중고 12년, 공교육과 사교육을 바쳐 땄던 대학 졸업장.
우리 가족의 자부심이던 그 종이는 아시아 변방국의 이름 모를 학교의 서류였다.
내가 미국 연예 산업에 발을 들이기로 결심하고, '연대생'으로 누리던 혜택을 모조리 내려놓았을 때, 나는 진정으로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부끄럽게도 연세대에서는 남들 따라가기에 바빴던 것 같다.
문과생 친구들 대부분이 경영학을 복수전공한다길래 무작정 신청하고, 잘나간다는 유명 경영 학회도 가입했다. 경영학과는 당시 수요가 많아 복수전공 성적 컷이 매우 높았다. 나는 남들이 3번 떨어질 때 한 번에 합격했다며 우쭐해지기도 했다.
그게 대단한 일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건 그냥 ‘남들이 하는 일’을 생각없이 따라한 거였다.
사실 나는 상경보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더 끌렸다.
인문학을 전공한 내가 마케팅에 관심을 가졌던 건, 결국 ‘사람’을 알고 싶어서였다. 누가 어떤 이유로 불편을 느끼고, 무엇에서 위로를 얻는지. 세상의 흐름 속에서 그런 마음의 변화를 읽는 게 재밌었다.
그래서 마케팅에 자연스럽게 끌렸다.
성적도 좋았다. 관련된 과목은 A+를 받고, 조별과제에서 에이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모든 게 '돈만을 벌기 위한 수단'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람을 이해하고 문화를 관찰하기 위해 시작한 일들이, 하나둘 차가운 숫자와 효율의 언어로 바뀌었다.
자괴감이 들었다.
오히려 이게 잘 맞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결국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었음을 깨닫고 경영학 복수전공을 취소했다.
개론 수업은 이미 다 들어서, 통계학개론 한 과목만 들으면 경영학 부전공도 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그냥 철회해버렸다.
대학 다니면서 최우등상을 목표로 한 번도 수강 철회를 하지 않았던 나였다.
그 상을 놓칠 걸 알면서도, 이번엔 주저하지 않았다.
그만큼 단호했고, 그만큼 확신이 있었다.
복수전공을 취소하던 날, 많은 친구들이 걱정을 해줬다.
학회를 나올 때는 욕도 엄청 먹었다.
익명 커뮤니티에 내 저격글이 올라오고, 그걸 읽으며 울던 밤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켠은 후련했다.
처음으로 ‘남들 말고 나’를 선택한 순간이었다.
동기들이 대기업, 로스쿨, 공무원 시험으로 향할 때 나는 미국 연예계로 눈을 돌렸다.
남들이 ‘불안정하다’고 말하던 그 길이 내겐 처음으로 진짜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유일한 외국인 인턴으로 일했던 뉴욕 매니지먼트 회사, 할리우드 PR 에이전시에서 함께했던 인디 아티스트들, 그리고 케이팝 행사의 뜨거운 현장까지. 그 모든 순간이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했다. 처음으로 내게 꼭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었다.
비록 내가 아티스트가 되진 못하더라도, 예술을 다루는 산업에서 일한다면 적어도 행복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