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서

변화, 시간, 인간

by 오렌지샤벳


연말연시.

어제와 오늘, 작년과 올해가 뒤섞이는 경계에선 시간!

분주한 사람들의 틈바구니로 탄식이 들린다.

누군가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흐르는 세월이 무상하다고도 한다.

과연 시간은 흐르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변하는 것인가?

헤라크레이토스는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고 말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했다.



인간은 어떨까?

십 분 전, 몇 분 전, 몇 초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가?

행여 겉모습이 같다고 해서 우리가 똑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는 시간에도

세포는 끊임없이 분열하며, 탄생과 소멸을 반복한다.

숨 쉬고, 생명 활동을 하는 모든 생명체의 시간은 절대 같을 수가 없어진다.



“만물유전(萬物流轉)”

세상 만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변한다는 것이다.

모든 반대되는 것들로 이루어진 세상이

변화와 대립 속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그를 통해 변화하고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 변화에 우리는 말한다.

시간이 흐른다고!

어제가 가고 오늘이 오고, 내일이 온다고 한다.

이 변화를 감지한 우리의 감각이 시간을 흐르는 것으로 인지한 것이다.



사실 시간이 흐른다기보다

우리가, 강물이, 존재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실체가 변하는 현상의 연결을

시간이 흐르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변화의 연속 작용은 시간의 흐름을 가시화한다.

인간이 그 변화의 점점 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시간을 매기고, 서사를 입히며

흐름을 정의하는 것이다.



인간은 왜 시간이라는 개념이 필요했을까?

끊임없이 변화하는 순간에

시간을 매기고 의미를 새기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해가 뜨고, 지고, 달이 뜨고 , 지는 날들의 반복은 인간을 불안하게 했다.

눈앞에 보이는 변화를 정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연을 이길 힘이 없던 인간의 불안은

불확실한 자연의 규칙을 찾고 통제할 수 있기를 원했다.

변화를 인지한 순간부터

인간은 변화를 구별해야 했고, 기억해야 했으며, 기록해야 했다.

절박한 인간은

하늘과 별과 자연을 읽으며, 기록하고 규칙을 정했다.

하루는 24시간이고 한 시간은 60분이라고 정하기로 약속했다.

변화무쌍한 자연을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기준을 정하고, 자연을 바르게 읽고, 활용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불안과 욕망은 시간을 원하고 있었다.



인간이 시간을 매기기 시작한 것은 혁명에 가까웠다.

상황과 자연에 맞춰 살던 인간들이

시간을 조율하고 삶을 통제하기 시작하며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자연에 종속된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변하게 된 것이었다.

변화의 추가 인간에게 옮겨오며 삶은 급속도로 변하기 시작했고,

인간은 삶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아침과 저녁, 어제와 오늘, 작년과 올해로 분해된 시간 안에

조여지고 단련되고 있었다.



시간을 통제할 수 있게 되자 일의 범위와 총량이 정해지고,

꼭 해야만 하는 것과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이 정해졌다.

인간의 삶은 체계적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효율적인 시간의 관리는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과 내일이 다른 눈부신 성장이었다.

시간의 흐름은 더욱 가시화됐고,

다시 인간을 불안하게 했다.

더 큰 성과, 남보다 나은 삶과 미래!

인간이 욕망에 눈이 멀자 어느 순간부터 시간이 다시, 인간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시간으로 인간을 재단하고 맞추고 판단했다.

시간에 따라 속도를 조정했고, 성취해야 할 양이 정해졌다.

시간의 통제 아래 인간의 삶은 효율과 성과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주체적 인간에서 다시 종속적 인간으로,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통제되고 마는 아이러니에 갇히고 만 것이었다.



이제 인간들은 다시 시간을 조율하려 한다.

자유를 갈망하고 사고하고 사색하는 인류는

다시 변화를 요구한다.

시간에 쫓기고 성과에 쫓기는 삶을 변화시키려 한다.

일과 여가를 분리하고, 개인의 삶을 우선시한다.

성과보다 만족을 원하는 변화가 다시 도래하고,

기계의 부품처럼 사는 삶을 거부한다.

인간으로서 감각하고 느끼며 행복과 만족을 지향한다.

시간을 감각하는 인간은 시간을 조율하기 위해 또다시 변화를 추구한다.

삶의 여유와 시간의 조율은 인간을 다시 깨운다.

감각하고 느끼며 창조하고 예술한다.

인간만의 고유 감각으로 보고 느낀 것들을 구현해 내기 시작한다.

세상이 변하고 AI가 인간을 대체할 거라며

인간을 불안하게 하고, 불안은 다시 인간을 각성시킨다.

인간을 대체할 기계의 세상이 온다며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연말과 연시는 인간을 자극한다.

인간만의 감성은

해가 바뀌는 변화의 경계에서 느낀다. 본다. 함께한다.



연말과 연시가 주는 특별한 감각이 인간을 자극한다.

인간의 감각은 똑같은 시간도 다르게 느낀다.

일 년, 몇 년, 평생은 가늠하기 어렵고, 통제하기 어려워 무한에 가깝게 느껴진다.

인간들을 게으르게 하고 느슨하게 한다.

그에 반해 한 시간, 일 분, 십 초는 인간을 옥죈다.

끝이 빤히 보이고, 직관적으로 다가와 인간을 조급하게 한다.

어제가 작년이 되고, 오늘이 올해가 되는 연말연시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일 년이 하루 안에, 몇 분 안에 변하는 타이밍에 걸린 사람들은

무한과 유한, 여유와 조급함이 서로 섞이는 시간에 동요한다.

얼마 안 남은 시간과 한참 남은 시간이 교차하는 순간, 감정은 요동친다.

아쉬웠다가, 설레었다가, 슬펐다가, 기쁘다, 후회했다가, 기대한다.

인간만이, 생명만이 느끼는 혼란!

연말연시, 시간의 경계에선 인간들은 혼란하다.

연말을 떠나보내고 연시를 맞이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

밥집마다, 술집마다 후끈후끈하다.

추운 날씨 탓에 비좁은 틈바구니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들어야 할 이야기와 해야 할 이야기, 작정한

이야기와 물음들!

36.5도의 체온들이 삼삼오오 모여내는 열기로 실내는 후끈하다.

뜨거운 입김과 뜨거운 바람이 뒤엉킨다.

시간을 계획하고 조정하려는 목소리는 점점 커진다.

지난 일 년을 회상하며 서로를 위로한다.

다가올 새해의 다짐을 함께 새겨본다.

인간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는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인간들의 뜨거운 열기들!

숨이 막히기 시작한 인류는

열기를 피해 찬바람 속으로 탈출한다.

신인류는 그렇게 탄생하는 걸지도 모른다.



시간의 통제를 벗어난 인간이 다시 시간을 쓰기 시작한다.

다른 인류는 조용한 방 안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다시 쓴다.

아웃사이더들은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다시 눈치채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변하는 중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율해야 한다는 것을!

시간은 다시 조율되기 시작한다.

시간의 마리오네트 공연이 시작된다.

줄에 걸린 게 기계일지, 사람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오늘도 시간의 경계에서 줄다리기를 한다.

이 별에서의 삶을 열심히 살아내는 중이다.

부디 나의 손가락에 시간의 줄을 매달 수 있기를 바라본다.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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