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잘 익으려나 봅니다.
자연에서 온 것이 자연스레 낡아간다.
해가 바뀌는 때마다 기민하게 반응을 한다.
나는 언젠가부터 새해를 앓기 시작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사십 줄에 들면서부터였던듯하다.
원래도 체력이 좋지 않은 내가 나이를 먹는 방식이었다.
1월 1일 새해의 시작을 몸살로 시작한다.
해가 바뀌는 시점, 달이 바뀌고 나이가 바뀌는
딱! 그때에 맞춰 몸살을 앓는다.
나이를 온전히 먹는다.
한해만큼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온몸이 쑤시고 으스대며 목이 칼칼해진다.
한 해를 먹는 것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건물이 매년 감가상각되듯이 내 체력과 건강이 얼마금씩 깎이는 것을 느낀다.
십 프로까지 된다면 벌써 소멸했을 테니 그만큼은 아닌듯하니 다행이라 해야 할지!
인간이 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신체적인 쇠퇴만을 말하는 것일까?
소멸을 향하는 생명의 당연한 수순일 뿐일까?
모든 생명은 나고 자라고 다시 돌아간다.
태어나는 순간의 환희와 고통을 겪고,
자라는 동안 비바람을 맞아내며 성장한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만개한다.
만개한 생명은 고점에서 점점 쇠락을 향한다.
모든 유한한 것들의 수순이다.
인간도 그렇다.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태어나 자신의 품을 채우기 위해 평생을 살아낸다.
만개의 순간, 만족의 순간은 찰나같이 지나고 몸과 마음은 쇠락을 향한다.
고점을 지난 체력은 무던히 관리해도 결국 사그라든다.
무모했던 용기와 겁 없던 자신감도 현명하게 살아내는 방법을 고민한다.
결국 삶이란 내가 나고 자란 자리에
잘 머물다 잘 떠나기 위한 여정이다.
이 여정 앞에 무조건적 순응도, 볼상사나운 저항도 아름답지 못하다.
그것이 나이가 든다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 나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나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이왕이면 보기 좋게 나이 드는 편이 좋겠다.
아름답게 나이 들고 싶다면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자식에게, 타인에게 기억될
자신의 모습을 걱정하게 된다.
현명하진 못해도 어리석지 않았으면,
아름답진 못해도 추하진 않았으면,
도움은 못돼도 피해가 되진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자신의 모습이 추악하거나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기억되길 원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이가 먹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신체적 책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평생 어떤 마음과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온몸에 남는다는 말이다.
나쁜 자세가 망가진 신체로 드러나고, 나쁜 인성이 인상이 되는 것!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신을 잘 돌보기 위한 과정이고, 제 몫의 삶을 잘 살아내기 위한 과정이다.
젊으니 괜찮아, 아직 괜찮아는 외면이고 방치다.
평생 자신의 행동과 마음이 고스란히 남는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자신의 인생을 나도 만족스럽고, 남도 보기 좋게 완성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숙제는 아닐까?
자신보다 세상에 관심을 갖는다.
당연하다. 알아야 할 것도 익혀야 할 것도 많으니 당연한 일이다.
정신없이 세상을 배우고, 익히고, 얻고 몸집을 불린다.
세상에 좋은 것이, 눈길을 끄는 것이 많으니 갖고 싶은 것도 당연히 많다.
창고를 채우고, 통장을 채우고, 소유로 자신의 주변을 채운다.
그렇게 열정과 체력을 쏟고 나면, 가질 만큼 갖고 나면 자연스레 정적이 찾아온다.
계속 달릴 수 있는 말이 없는 것처럼, 소유와 욕망도 일순 멈춤을 갖는다.
쉼 없이 달려오던 삶에 여유와 휴식이 찾아오면 인간은 자신을 돌아본다.
외부의 것을 갖췄으니 허기진 내부를 돌아본다.
모든 에너지를 바깥으로 향하며 쏟아냈던 것들이
결국 자신을 갈아낸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더 많이 갖기 위해 자신의 내부를 털어냈다는 것을 깨닫는다.
텅 빈 자신을 돌아본다.
본능적으로 안으로, 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
바깥으로 향했던 시선을 안으로 돌리며, 자신을 채우기 시작하는 것!
외부의 것으로 채울 수 없는 나를 알아가는 것!
남은 세월을 온전히 살게 하는 것은
자신을 이해하고 채워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랜 세월의 경험이 알려주고, 연륜이 알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만일이때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텅 빈 나무처럼 작은 비바람에도 흔들리게 된다.
자신을 지키는 것이 물질과 부만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는다.
자신을 잘 돌볼 수 있어야 체력적 한계 앞에서 무너지지 않게 된다는 것을 배운다.
인간은 어쩌면 평생을 들여 자신을 알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누구의 자식, 누구의 아내나 남편,
누구의 부모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을 온전히 알게 되는 것!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 된다.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다면,
어떤 상황과 불안에도 시련을 극복할 수 있다.
중심이 단단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자신을 만났다면 혼자만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모든 생명이 그렇듯,
인간도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혼자 남게 된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묻고 귀 기울여 야한다.
취미를 만들고 스스로를 돌 볼 수 있어야 한다.
혼자여도 괜찮아야 한다는 말이다.
더 많이 갖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자신을 알고 자신을 챙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얼굴에 주름이 늘고, 팔다리의 힘이 예전 같지 않을 때 우리는 슬퍼진다.
그러나, 그런 자신을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을 때 우리는 자신을 잃는다.
나이 듦을 인정할 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보살피면 삶은 안정궤도에 오른다.
안정과 평화, 평온을 찾게 된다.
삶이 안정궤도에 오른 후엔 주변을 돌아봐야 한다.
자신만을 위해 모든 걸 쏟아붓는 것이 아닌,
타인을 위할 줄 아는 너그러운 마음도 필요하다.
더 늘리고 욕심을 부리기보다,
나를 돌보고 타인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남을 살피고 챙기는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내 시간을 쓰는 것이 아깝게 느껴질 수도 있다.
타인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나를 채운만큼, 남도 바라볼 수 있을 때 삶은 더 풍요로워진다.
나만으로 채울 수 없는 새로운 자극이자 삶의 활기가 된다.
젊어서 모은 것의 옥석을 가려 정리하고 관리해야 한다.
체력은 예전만 못하고 산 날보다 살날이 적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세상이치가 그렇듯 얻는 것이 있다면 당연히 잃는 것도 있다.
많이 가질 수 있다면 최대한 많이 갖는 것이 좋겠지만,
그만큼 써야 할 에너지도 많이 든다.
시련은 나이가 들었다고,
삶이 힘들었다고 피해 가지 않는다.
어느 날 시련이 또다시 불청객처럼 찾아온다면,
예전과 다른 내가 맞이하게 될 것이다.
체력도, 대처도 예전만 못할 것이다.
그러니 나이가 든다면 자신을 돌보는 것을 자식을 돌보는 것처럼 해야 한다.
소중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은 자신을 잘 지키는 것이다.
나이 듦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단단하게 스스로를 지켜내야만 한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나이 듦은 소멸이 아닌 자신을 향한 방향전환이 된다.
자신을 돌보는 새로운 삶의 형태가 되며 나아가 나와 타인을 향한 여유로운 시간이 된다.
이제 우리는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알맞게 잘 익어가는 것이다.
각자의 빛깔과 각자의 속도대로 보기 좋고 아름답게 익어가는 중이다.
올해도 나는 새해 앓이를 겪는다.
더 잘 익기 위한 준비를 한다
한해만큼 잘 익기 위해 상태를 살피고 익을 자리를 살핀다
약을 챙기고 이불을 덮고 만반의 준비를 한다.
어차피 새해앓이니 새해가 지나면 나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에 그 김에 쉬어준다.
조급함대신 여유를 맞이한다.
연말이라고, 새해라고 들뜨는 분위기 속에서도, 그 덕에 정비를 한다.
차분히 일 년을 돌아보며 새해를 준비한다.
새해앓이는 어느 순간
쉼이 되고 성찰이 된다.
올라갈 때 못 봤던 꽃을 보기도 하고
풀린 운동화 끈을 고쳐 매기도 한다.
삶의 변곡점에서 여유를 부려본다.
올해는 또 얼마나 알맞게 잘 익으려는지 아픔만큼 성숙해지려는 참이다.
여전히 이 별에서 잘 익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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