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과 진실

by 하루살이

집착과 진실


진실이 거짓보다 가혹하다면 당신은 진실을 달게 받겠는가? 나는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을 버거워 하면서도 그것을 파헤치고야 마는 타입의 인간이다. 달콤한 거짓 속에서 만족하며 살 수 있다면 그 순간이야말로 거짓이 진실이 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의 호기심은 늘 파멸의 진실로 나를 이끈다.


선수남과의 만남은 나를 다양한 차원에서 무너지게 했고 이전의 만남들과는 달리 그 후유증이 제법 오래 지속되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구라남과 18센치남에게 했던 행동을 고스란히 돌려받은 것 뿐인데 그것은 왜 내게 그렇게 지속 가능한 상처가 되었던 것일까. 상대방을 미련 없이 차단한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깊게 생각해 본적이 있을리가 없다. 챗어플을 사용하기 전에는 내 인생에서 차단을 갈겨야 할 만큼 두 번 다시 보고싶지 않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구라남과 18센치남을 차단했던 것이 그들과의 관계가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18센치남과는 섹스를 하지 않았지만… 구라남과의 섹스는 매우 만족스러웠음에도 그가 본인의 나이와 외모 스펙을 속인 것이 그를 차단한 결정적인 이유였고 그를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맞았다. 혹시나 선수남의 그 매정한 차단이 나를 두 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으며 그것이 나의 외모 때문인걸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선수남 본인밖에는 알 수 없고 나는 그것을 확인할 수 없었다. 물론 선수남은 나와의 만남 이후에도(혹은 그 이전에도?) 챗어플을 아주 열심히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임을 밝히면서 그에게 다시 말을 거는 방법도 존재했지만 당시엔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여러분은 나의 당시에 라는 표현에 집중하셔야 한다. 이후의 나는 그에게 다시 말을 걸어서 나를 왜 차단했냐고 묻고야 말았다. 섬뜩하다거나 무섭다고 느껴진다면 당신을 이해한다. 지금의 내가 생각하기에도 당시의 나는 선수남에게 집착하고 있었고 정상적인 행동이 아니었다고 느낀다.


거절에 다른 무슨 이유가 있었겠는가. 거절은 거절일 뿐이고 차단은 차단일 뿐이다. 나의 애정결핍은 나를 더 밑바닥으로 이끌고 간다. 그 밑바닥에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이 있고 진실을 마주한 순간 나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여자로서의 나를 거절당하는 것은 나의 전부를 거절당하는게 아님에도 당시의 자존감을 갉아먹기에 충분했다. 가벼운 만남이든 진지한 만남이든 차단과 거절은 똑같이 상처를 남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그 상처를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챗어플을 수시로 접속하며 계속 만남을 가지는 듯 하다. 사진을 바꾸지도 아이디를 바꾸지도 않는 것을 보면 지난 만남들에 있어 아주 작은 책임감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가벼운 만남에는 가벼운 마음만이 허락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가벼움이 무엇보다 날카로운 송곳이 되어 누군가를 찌를 수도 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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