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의 잠수
선수남을 다시 보고 싶어서 오랜 시간동안 앓았다. 오랜 연락기간에 비해 매우 짧았던 그 만남의 순간을 혼자서 계속해서 복기하면서 그가 계속 그리워졌다. 그리워하다라는 표현을 들이대기 민망할 정도로 선수남과 나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는데 그의 외모가 정말 내 취향이긴 했던 모양이다. 사람이 너무 외로우면 좋아할 가치도 없는 사람을 원하게 된다고 하던가? 그 말이 딱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그가 나를 챗어플에서 차단했지만 챗어플은 가입과 탈퇴가 매우 쉬운 어플이었다. 선수남에 대한 그리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고 나는 그에게 다시 한번 말을 걸고 싶었다. 여기서 나의 매우 징그러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나는 선수남에게 내 모습이 아닌 가상의 인물로 말을 걸고야 만다. 그가 대화하는 것이 나임을 알아차릴 수 없도록 그가 보지 못한 나의 사진에서 몸의 일부만 확대한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두고 모르는 사람인 척 말을 걸었다.
그는 이번에도 매우 건조했고 담백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가상의 나는 매우 개방적인 여성이라는 컨셉이었으므로 그에게 아주 가볍게 다가갔다. 챗어플의 오프만남 후기썰을 풀자며 접근했고, 본래의 나에겐 하지 않았던 말들을 선수남은 술술 털어놓았다. 나에게 전달한 정보와는 달리 그는 챗어플에서 무려(!!) 다섯번의 만남을 가졌고 그 중 세 번은 괜찮았고 두 번은 도망쳤다고 말했다. 도망친 두 번의 만남에서는 상대방의 외모가 사진과 너무 달라 보자마자 자리를 파하려고 해서 욕까지 들었다는 후기를 들려줬다. 가상의 나와 대화할 때의 선수남은 말투도 훨씬 가벼웠고 편해보였다. 마치 그것이 그의 본 모습인것처럼…
그가 말한 괜찮았던 세 번의 만남 중 하나가 나와의 만남이었을까? 이젠 그가 하는 말을 모두 믿을 수 없었다. 가상의 나는 그에게 카카오톡 아이디를 교환한 만남이 있었냐고 물었고 그는 단 한명에게만 자신의 아이디를 알려줬다고 말했다. 나는 알 수 없는 그녀가 부러울 정도로 선수남에게 빠져있었고 그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아직도 그녀와 연락하냐고 물었는데 그는 그녀와 세 네번의 만남을 가지고 차단했다고 알려주었다.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그는 지금 새롭게 대화하고 있는 나와 만남을 가지려는 목표를 세운 것 같았고 가상의 나에게 매우 호감을 표현하며 자신의 몸사진을 보내주는 등 본래의 나에게 하지 않았던 대화를 시도했다.
선수남은 상대방의 대화 성향에 따라 본인의 대화 스타일을 자유자제로 바꾸는 진정한 챗어플의 선수였던 것이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그의 외모는 정말 빼어났기 때문에 어플뿐만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수많은 여자들을 손쉽게 만날 수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여자를 다루는 것이 매우 쉽고 능숙했던 그였다. 그가 하는 모든 쑥맥같은 말들에 홀라당 넘어가버린 내가 너무 순진했으나 그는 정말 거짓말에 타고났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그가 나의 마음에 오랜 시간 남아있었다고 하면 이것은 집착일까 정신병일까? 가질 수 없는 것에 더욱 매력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가 본래의 나와의 만남 이후 오랜 시간 챗어플에서 연락을 유지하는 것이 귀찮다고 느껴졌는지 가상의 나는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이라 계산되었는지 며칠 연락을 주고 받자마자 그는 오프 만남을 하자고 제안했다.
순간 내가 그 약속 장소에 나간다면 그는 놀랄 것인지 무서워할 것인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짓을 행동에 옮길 정도로 정신병자는 아니기 때문에 시도하지 않았다. 그저 그와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약속을 잡았고 약속 당일 급한 일이 생겨 미안하다며 파토를 냈다. 그럼에도 그는 끈질기게 다음 약속을 잡으려 했고 다음 약속 날짜가 될 때까지 그와 야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다가 약속 당일날 그를 차단했다.
내 가상 캐릭터의 두번의 잠수는 그에게 과연 조금이라도 마음의 상처를 입혔을까? 나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분명 아주 많은 여성과 동시에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을 것이며 2안 3안이 계속 마련되고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본래의 나는 그에게 2안 3안에도 들지 못했던 그저 한 번뿐인 만남으로 남았고 그는 나에게 어떠한 트라우마를 남기고 말았다.
그는 내가 현실 세계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을만한 외모를 가진 이른바 알파남에 가까웠다. 알파남의 거절은 애정결핍인 나에게 지독한 짝사랑의 모습으로 재탄생했으며 그와 함께 있었던 단 몇시간을 계속해서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모두 나의 애정결핍이 초래한 것이다. 건강한 정신세계를 가진 보통의 사람이라면 본인을 거절한 사람을 이렇게 그리워하지도 미화하지도 않을 것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서라도 그를 놔줄 수 있었겠지. 그는 나를 거절했다는 큰 이유 하나만으로 나에게 더 큰 존재가 되어갔다. 고작 어플에서의 만남이고 차단일 뿐인데 나는 그에게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좋은 결말이라고 해봐야 섹스 파트너 정도였을 것인데 그 이상의 것을 바랄 정도로 염치없진 않았다. 자존감이 바로 잡혀있고 안정적인 애착유형을 가진 여성이 과연 인생에서 섹스 파트너가 되는 경험을 가질 수 있을까? 전혀 없을 것 같다. 본인을 그 정도의 여자로 취급하는 남자를 차라리 멀리하면 멀리하겠지 나처럼 스스로 그것이 되지 못해 안달난 사람일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선수남의 섹스 파트너라도 되어서 그의 곁에 잠시라도 머물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나를 거절했기 때문에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