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명 방문자에서 시작한 이야기

누가 읽지 않아도, 나는 매일 썼습니다.

by 박재훈

처음 블로그를 만들던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블로그 만들기’를 치고, 계정을 만들고, 첫 글을 써 내려가던 순간.
아무도 모르게, 세상 어딘가에 제 이야기를 남긴다는 사실이 묘하게 떨렸습니다.
그때는 무엇을 써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그날의 기분, 그날의 생각, 작은 다짐 같은 것들을 몇 줄 남겼을 뿐이었습니다.


글을 올리고 나서 새로고침을 눌러봤습니다.
방문자 수는 0명이었죠.
그날 밤 늦게 다시 확인했을 때는 ‘1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숫자가 마치 천 명이라도 된 것처럼 기뻤습니다.
‘누군가 내 글을 봤다.’
그 단순한 사실이, 내 하루의 의미를 바꿔놓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매일 같은 시간에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글을 잘 써야겠다는 부담도 없었고, 누가 읽어줄 거라는 기대도 없었습니다.
다만 글을 쓰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속도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로 있을 수 있었습니다.
하루 동안 쌓인 생각과 감정이 글자 속으로 스며들면서,
묘하게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블로그 관리자 페이지의 방문자 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3명.’
그 숫자를 보는 순간,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3명이라니, 어쩌면 제 글을 클릭만 하고 나갔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일 겁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서는 ‘세 명이나 읽었다’로 바뀌었습니다.
하루에 세 명이라면, 한 달이면 아흔 명, 일 년이면 천 명 가까운 사람이 제 글을 본다는 뜻이었습니다.
숫자는 작지만, 그 안에 사람의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니
단 한 명이라도 진심을 느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무렵 저는 꽤 지쳐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는 늘 바쁜 척을 해야 했고, 내 일보다 상사의 눈치를 더 봐야 했습니다.
누구에게도 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었고,
휴대폰을 붙잡은 손끝마저도 늘 긴장해 있었습니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은 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블로그를 쓰면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아무도 저를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잘 썼다는 말도, 틀렸다는 말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제 목소리만이 화면에 남았습니다.
이건 나의 세계였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찾지 못한 나만의 공간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습관이 생기면서 하루의 리듬이 만들어졌습니다.
일과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그날 느낀 일, 지나간 생각, 우연히 들은 말 한마디를 떠올리며 타자를 쳤습니다.
어떤 날은 문장이 쉽게 흘러나왔고,
어떤 날은 아무 말도 쓰지 못해 커서를 바라만 봤습니다.
그래도 앉았습니다.
글을 쓰지 않아도, 앉아 있는 그 시간 자체가 제게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점점 글이 쌓이자, 블로그는 제 마음의 거울이 되었습니다.
며칠 전의 글을 읽어보면 그날의 기분이 고스란히 떠올랐습니다.
불안했던 날, 화났던 날, 희미하게 웃었던 날들까지.
그 모든 감정이 글 속에 차곡차곡 남아 있었습니다.
그 기록이 제게 말해주었습니다.
‘넌 잘 버티고 있어.’


블로그를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무렵이었습니다.
그날도 별생각 없이 글을 올리고 나서 통계를 눌러봤습니다.
방문자 수는 여전히 3명.
익숙한 숫자였죠. 그런데 그 아래에 작은 아이콘 하나가 보였습니다.
말풍선 표시 옆에 ‘1’.


클릭하니 짧은 댓글 하나가 달려 있었습니다.
“공감합니다. 저도 요즘 같은 마음이에요.”


그 한 줄의 댓글을 읽는 순간, 가슴이 뛰었습니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었고, 공감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눈앞이 살짝 뜨거워졌습니다.
그동안 혼자 쓴다고 생각했는데,
어딘가에서 누군가 제 글을 읽고 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것.
그건 마치 어두운 방 안에서 작은 불빛을 발견한 듯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블로그는 제게 ‘나만의 세상’이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되는 창’이 되었습니다.
그 댓글 하나가 저를 다시 쓰게 만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그만둘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 어려움 속에 살아 있다는 실감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글의 내용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일상을 적던 글이었지만,
어느새 제 삶의 방향을 정리하는 글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루를 돌아보는 글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했고,
그 과정을 통해 어떤 일이든 의미를 찾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누가 잘 나가고, 누가 더 인정을 받는지가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며 깨달았습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요.
오늘의 생각을 글로 남기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요.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이 과연 누군가에게 닿을까?’
‘이렇게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럴 때마다 처음의 ‘3명’을 떠올렸습니다.
그 세 사람은 어쩌면 지금은 제 글을 읽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날의 저는, 그 세 명 덕분에 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숫자가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겁니다.


언젠가부터 방문자 수를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됐습니다.
대신 제 글의 변화에 집중했습니다.
문장이 조금씩 단단해졌고, 표현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무엇보다,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글을 통해 제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
그게 가장 큰 보상이었습니다.


이제는 누가 읽든 말든 상관없이 글을 씁니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세상과 나 사이에 투명한 벽이 생기고,
그 벽 안에서 진짜 내 마음을 꺼내볼 수 있습니다.
다른 누구의 기준도 아닌, 오직 나의 언어로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그것이 제게 블로그가 준 가장 큰 선물입니다.


돌아보면, 모든 건 아주 작은 숫자에서 시작됐습니다.
하루 세 명의 방문자.
그 숫자가 제 인생을 바꿀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때 만약 포기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그 세 명에게, 그리고 그날의 제 자신에게
지금이라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때의 나는, 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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