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맞이 일본 여행 중에 가까운 친척의 부음을 받고 급거 귀국하여 허둥지둥 한 두 주를 보냈다. 또 한 사람이 주검이 되어 사라졌다. 같은 경험을 10여년 전에 해 본지라 가족들의 상실감이 어떠할 지 공감하며 아픈 마음으로 장례절차를 따라 다녔다.
살아 있는 동안 용서를 빌고 화해하지 못했던 이 못난 존재들의 양상에 대해서 한없이 부끄러웠다. 우주같은 마음을 빌어 쓰면서 한 쪽박 되는 정도의 마음을 내고 사니 널푼수가 이토록 비루하다.
종교의식에 따라 허전한 마음과 시간을 채우다 보니 절차는 끝났고 이렇게 모든 것은 지나간다. 각자 마음의 상처와 공백은 각자의 몫이지만 무엇으로든 채워져야 하리라. 그래서 종교가 큰 역할을 하고 가장 신뢰받는 시스템이 된 것 같다.
문득 죽음 앞에서 삶이 참으로 신비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 죽음도 삶도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은 우주이며 우주는 이 삶의 영역에서의 일체(一切)이다. 그런데 실은 이 우주가 뭔지를 평소에는 묻지 않는다. 그저 당연한듯 여기며 내 자신으로 一切가 되려고 기고만장 한다. 그러다가 그 일부인 죽음이 닥치면 울고불고 난리친다. 마치 손해를 당하고 불이익을 당한듯. 그리고 神에게 위로를 요구한다. 당연하다는 듯이.
오늘도 하늘의 태양이 눈부시다. 사실 저 태양이 이 삶이 시작된 원초적 요인이다. 그런데 태양도 우주에게는 극히 작은 일부 일 뿐. 아마 이 순간도 태양은 당연히 우리를 비추어야 한다고 여기며 지나칠 걸. 우리는 결코 진실의 순간을 알지 못한채 살고 있지는 않은가?
금번에 돌아가신 분도 한 6개월을 말기암과 싸우다가 결국 돌아 가셨다고 한다. 하나님을 마지막 순간까지도 원망없이 믿고 소천하셨다고 한다. 관련해서 문득 고대 중국의 화타선생이라는 명의 생각이 났다. 이 분이 명의가 된 비결은 이 분은 환자가 오면 이 환자가 낳을 수 있는 사람인지 나을 수 없는 사람 인지를 기가막히게 분별하는 것이다. 그래서 낳을 수 있는 환자 만을 집중적으로 치료해서 살려내어 명의로서 알려지게 된 것이다. 화타선생 말에 의하면 이미 나을 사람은 자기가 나으려고 기를쓰며 의사에게 온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의 말씀과도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다. 어느 백혈병 걸린 여자가 예수 만 만나면 살 수 있겠다고 결심하고 기를 쓰고 군중을 뚫고 들어와 예수의 옷자락을 만지자 병이 나았다는 복음서의 구절이 있다. 그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여자여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한 것이다. 그것이 너를 구원 하였으니 편안히 가라' 고 했다는 것.
우리가 이 삶에서 놓치는 것이 무얼까? 묻지 않고 찿으려 하지 않으면 결코 답을 찿지 못한다. 길은 묻는자에게 길이 열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