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제안

by 김헌준 Hearn Kim

여러분께 한번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아래에 제기 되는 난제에 대해서 자신있게 발견하신 그 어떤 해답이 있다면 제게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꼭 제가 보답 하겠습니다.

제가 생각 할 때 궁극적으로 이해 불가능한 문제가 두가지 있습니다. 한가지는 내(우리)가 왜 이렇게 이 생명계 라고 하는 물질세계에 등장 했느냐 (즉 던져져 있느냐) 하는 것과 두번째는 이러한 물질세계(우주)가 왜 이렇게 있느냐 라는 부분 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이론들이 있습니다. 종교차원의 철학적 차원의 그리고 과학적 차원의 엄청난 이론과 주장들이 있음을 잘 압니다. 특히 양자물리학 이후 입자물리학..... 등등의 현대에 이르른 과학적 업적은 일찌기 상상도 못 할 만큼의 정교한 이론들로서 실로 놀랄 만 한 디테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들쳐보면, 그 실체를 직접 경험해서 실체적 진실을 자명하게 드러 내어 줄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주장과 이론들은 바로 그 이전의 누군가로 부터 혹은 그 어떤 주장으로부터 증보 확대된 내용들로 인간사회의 진화과정과 발 맞추어 현재에 이르고 있음 입니다. 예를들어 사후세계에 대한 임사체험 관련한 이론들이라는 것도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서 분석 된 추리이지 누구나에게 자명하게 와 닫는 실체로서 받아드릴 수 없는 것이 현실이지요. 여러 종교에서 주장하는 도그마 나 종교현상들은 이러한 혼미함을 교묘히 변용하여 그들의 영역에서 나름데로의 사이버 세계를 운영하는 '그들만의 리그' 라고 보여 집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러 종교적 측면에서의 주장들을 들여다 보면 뭔가 공통적으로 암시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내)가 결코 죽지 않는다' 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인간(혹은 생명체)는 언젠가 죽어서 이 세계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통상적인 상식으로 받아 드리고 있지 않나요? 그런데 기독교와 같은 유일신교들이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죽은 후에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고 하지요. 뭔가가 죽 계속이어지는 느낌? 또한 불교에서도 윤회를 당연 시 하는 측면이 그런거 아닌가요? 동양 종교에서의 제사도 역시 삶과 죽음 이후의 그 어떤 연결이 있기에 그러한 관습을 유지하는 것 아닌가요? 모름지기 사후세계에 대한 그 어떠한 확실한 실체에 대해 자명하게 밝혀주는 증거는 없지만 인간들은 죽지않고 계속 이어진다는 그 어떤 감(感)을 가지고 있는듯 합니다.


한번 생겨난 것은 죽지 않는다? 아니 죽지 못한다? 그렇다면 현재 이 생에 드러난 것도 이전의 그 어떤 상태가 변화되어 이런 생이 되었고 그렇다면 이런 생을 통과하면 또 다른 어떤 상태로 간다는 것인가? 마치 얼음이 물이 되었다가 다시 물이 수증기로 되고 하듯이?


드디어 또 추론과 소설의 차원으로 오고 말았네요. 그래서 교보문고 같은 대형서점에 가 보면 혹은 도서관에 가보면 엄청한 책들이 떡 버티고 있는 것이지요. 마치 지식의 바다를 항해하듯 일생를 받쳐서 학문과 이론을 닦았지만 호모사피엔스 진화 역사 몇 십 억년이 지난 현재까지 왜 상기에 제가 발제한 두가지 의문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나요?


여기서 우리 삶의 비밀을 하나 열어 보고자 합니다. '이렇게 금번에 드러나지 않으면 안 될 어떤 사유라도 있는 것일까'를 의심 해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거죠. 그리고 이를 위해 이 드러난 존재에게 유용한 자산으로 주어진 하나의 도구, 그것이 바로 心意識이라는 거울이 아닐까요? 왜 하필 거울일까요? 비쳐지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니까요. 여기에 비춰지지 않는 것을 알 도리가 있나요? 식물인간이 심장 만 뛴다고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 아니듯. 그렇다면 이렇게 드러난 금번 기회에 무엇을 알라고 거울을 쥐어 주어서 이렇게 드러난 것일까요?


혹시 지금까지 이 거울에 비쳐진 모든 것들에 환호하거나 혐오하거나 하면서 살아 오지는 않았는지요? 그리고 그렇게 살다보니 어떤 삶의 상태에 현재 처해 있으신지 스스로를 한번 들여다 봅시다. 이 존재의 가장 깊은 심연에 뭐가 있나요? 저의 경우에는 탐욕과 화가 늘 또아리를 틀고 있었고 이러한 탐욕과 화가 생각과 의식상태를 아주 쥐고 흔들더군요. 이 세상에서 경험된 진실은 이것이었습니다 : 이 탐욕은 결코 채워지지 않으며 이 화는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는 사실 입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삶의 패턴을 되풀이 되풀이 하면서 자괴감과 위선의 고통 속에서 괴로웠습니다. 이를 '貪瞋癡' 라고 하지요. 결국 이 생의 현장에서 이걸 한번 해결해 보고자 하는 것이 가장 의미있는 일이라고 결정 했습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탐진치에 오염된 생각과 느낌과 판단과 고정관념의 닫힌 세계에서 결단코 빠져 나오지 못하리라는 것을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쉽게 알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갇혀있는 삶의 환경을 제대로 잘 보라고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라는 6개의 문을 갖추어 주었네요. 그 문을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라는 6개의 세계를 만나면서 우리는 일체를 인식 한다고 봅니다. 나라고 알고있는 이 몸뚱아리가 '심신복합체'이듯이 眼耳鼻舌身과 色聲香味觸은 물질이고 意와 法은 정신이네요. 이렇듯 물질과 정신으로 결국은 물질과 정신을 만나게 되는 것이 인간의 숙명 인 모양입니다. 최초의 생명체에게 왜 심의식이 생겨났을까요? 밖에 생존에 필요한 환경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외부 지향적입니다. 심의식이라는 정신은 물질을 만나기 위해 있고 물질은 심의식 때문에 비로서 물질이 됩니다. 결국 둘이 같이 있어야만 의미가 성립하는 구조 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체가 정신 따로고 물질 따로인 다채로움을 스스로 창출 하면서 혼란과 고통이라는 비극이 시작 됩니다. 이렇게 따로 따로다 라고 분별하여 알고자 하는 성향을 識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중간에서 '아냐 임마, 게네들은 같은거야 따로따로 분리해서 보면 안돼 임마' 하고 봉합을 시도하는 제정신 박힌 것을 意라고 부릅니다. 즉 心과 識을 끌어당겨 하나로 만들려는 노력을 意가 하는 기능인데 이 意도 가끔 미쳐버리면 치매걸린 모양새 인 癡가 되어 결국 '탐진치'의 원흉이 됩니다. '탐진치'는 결국 외부세계를 동경하여 외도를 시작하고 예기치 않게 愛를 임신하여 세상에 드러내면서 이제는 생존현장이 愛까지 識과 범벅이 되어 탐진치는 더욱 성장하여 마침내 인간세계가 현대문명과 자본주의 라는 거대한 성을 건립하게 되었는데 인간들은 이 성 안에만 들어가면 안전하고 행복하리라고 믿어 죽기살기로 여기에 메달리는 신세가 되어 스스로 노예화를 촉진 합니다.


배부른 돼지냐 배고픈 소크라테스냐? 노예로 목에 개목고리 하고 주인이 던져주는 밥 먹으며 꼬리 흔들며 생존에만 의미를 두는 애완견 신세? 만일 존재가 죽지 못하고 영원히 가는 그 무엇이라면 영원히 애완견으로 .... ㅋㅋㅋㅋㅋ.


인간으로 이 생을 사는 동안 우리 모두는 본능적으로(비록 자신은 망각하고 있을지라도) 순례자(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봅니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벨탑 같은 성 안에서 기를 쓰면서 탐진치를 키우고 더더욱 움켜쥐기를 시도하는 이 갖힌 세계의 노예로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는 사도(邪道)의 수행자로서. 결국 老病死 憂悲苦惱 絶望이라는 거대한 고통의 절벽을 기어이 체험하고자 기를 쓰며 오늘 이 순간도 최선을 다하는 邪道의 순례자들이여. 보통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달성하지 못할 수행인데 주위를 돌아보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참 열심히도 하더군요.


그런데 '빠져 나와야 겠다' 라는 결심이 선 자들, 아니 영원히 지속되는 이 삶의 속성에서 '난 이만 빠지겠소' 라고 맘 먹은 사람들은 기발한 방식을 이 생에서 찿아냈다. 바로 正道를 걷는 방법을. 바로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의 길을 걷는 心路.


이 생에 왜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다만, 헉~ 이 생을 들르지 않았다면 이 꼬라지들을 몰랐을 뻔 했네. 최소한 하나는 챙기자 이 生에서.


** 인간의 문제해결은 탐진치의 제거에 있습니다. 탐진치는 좀처럼 벗겨지지 않습니다. 해(생명) 아래서는 그림자(탐진치)를 지울 수 없듯이. 오직 반야(지혜) 만이 탐진치를 벗겨냅니다. 심에서 탐을 의에서 진을 식에서 치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 반야 입니다. 팔정도 아빈냐 위빠사나 사성제를 통해서 해탈하는 방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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