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眼耳鼻舌身意(육내입처)'로 만나는 대상(현실)

by 김헌준 Hearn Kim

흔히들 시쳇말로 '세상이 왜 이리 악한가' 하면서 씁쓸하다 못해 부아가 치솟는 경험들을 종종 하고 있으리라 생각 됩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돈과 관련된 부분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 당하고 있어 참으로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시장에 나가면 물가는 얼마나 올랐는지 또 여전히 오르고 있는지? 음식값 역시 문재인 정권 시절 6~7천원대 하던 대중 음식값이 윤석열이 정권을 거치며 경제 손놓고 있는 사이에 지금은 만원대가 훨 넘는 현실이 비단 음식값 뿐 아니라 대부분의 장바구니 물가에 미친 영향이 엄청난 것이 현실이지요. 일본에 종종 여행을 가는데 문재인 정권 때 경험했던 것이나 요즘 경험하는 일본 음식점 값은 별 차이가 없어서 오히려 일본 가서 살아야 겠다라는 우스게 소리를 하곤 합니다.

특히 서민의 입장에서 무궁화 열차를 종종 이용하는데 무궁화를 폐차 시키고 이음인지 뭔가로 대체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값 올리기를 정부가 주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나 같은 은퇴자 입장이나 지방거주 및 전국의 서민들에게 교통당국이 앞장서서 장사질을 하는 꼴을 보면 부아가 치솟습니다. 저도 은퇴 전에는 매월 수백만원에서 천만원대가 들어오는 월급장이도 해 봤는데 그 때는 조금 비싸도 그냥 사고 소비하고 할 수 있었으나 지금처럼 정해진 연금살이를 하면 물가가 보통 신경 쓰이질 않지요. 그러길래 진작 돈 좀 더 벌지 하고 비아냥 거리는 인간들도 있던데요... ㅎㅎㅎ 그러나 세상 돌아 다니다 보니 그런 잘난 인간들 보다 널린게 서민들 소시민들이더군요. 정부가 이런 대다수 서민을 보호하는 정책 기능을 못할 망정 공공 서비스 질을 높인다 하면서 가격이나 올리는 이 딴 정부가 서민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서로 서로 남의 주머니에 있는 돈을 자기한테로 부지런히 옮기는 작업을 경제행위로 착각하고 있으신지요?


정부에서 기업으로 그리고 시장 상인들에게로 서로 서로 더 많은 이익과 돈을 자기 수중에 챙기겠다는 '욕탐'이 자본주의 경제의 목표 인가요? 그러나 여기에서 제가 거론코자 하는 부분은 종교분야의 이야기 입니다. 여기마저 이런 가치관에 젖어 동일한 짓거리를 한다면 세상은 더 황폐 해 진 것이며 제 살을 서로 뜯어먹는 지옥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이라고나 할까요?


그간 마음을 달래러 몇몇 템플스테이를 경험 했는데 1박에 최소 5만원 최대 10만원 받으며 시덥잖은 프로그램을 진행 하더군요. 불교가 언제부터 돈을 쳐 받으며 수행터를 이루었던가요? 불교 건축물을 위한 정부의 지원금도 엄청 나던데 모두 서민들 세금으로 주는 것 아닌가요? 하기사 불교도 부처님한테 로열티 한푼 안 내면서 대중들 돈이나 시주 없으면 절간 운영 안된다는 파렴치를 보고 있는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요. 그것도 붓다의 육내외입처나 그를 통한 중도의 깨달음 같은 바른 법문을 하는 절이 얼마나 되나요? 500만원 기본부터 시작하여 천도제 접수하고 기도비 받고 둥둥 북치며 알아듣지도 못할 현혹시킬 주문 외우는 등등... 기도접수 하고 등등 .... 다 돈 관련된 이루 말할 수 없는 악업을 쌓고 있지요?


대표종교 인 기독교는 어떤가요? 예수는 이미 목숨바쳐 우리 안의 하나님의 나라를 찿기위해 외형적인 껍대기 삶을 버리라고 외치다가 순교 당한 것이 2000여년 전인데, 자기도 만나보지 못한 하나님 팔고 자기도 확인 못한 천국에 대해 거짓말로 매주 자신의 생계를 위해 헌금 명목으로 엄청난 돈을 거두는 시스템을 성공리에 가동하며 이 사회에서는 요즘 정치목사들이 보여 주듯이 사회혼란을 부추기고 국민들 간에 파를 가르고 인터넷을 사용한 돈이 걷히고 등등 폐악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 않나요? 일찍이 예수께서 '이 독사새끼들아! 라고 비난한 부류가 누구던가요? 그 시대를 지배하던 기성 종교세력 아니던가요? 카토릭을 거쳐 개신교라는 신흥세력이 그 종교권력과 돈을 향유하는 주체로 탈바꿈 한 것이 데칼코마니 인 것이 세계 정치사를 보면 서민들 팔아서 들어선 부패 정권들이 또 다른 세력이 되어 그럴듯한 명분으로 대체하여 똑 같은 돈과 권력을 장악하는 짓거리들! 세상이 이처럼 악해지고 점점 교묘히 돈과 권력을 자기 수중으로 옮기는 부지런을 우리는 문명의 발전이라 속이고 속으며 오늘날 AI 시대까지 이르렀고 새 세상을 여는 것처럼 현혹하는 차세대 '인공지능사업' 관련 세력들을 보세요. 아마도 돈과 자본의 집적이 최상의 목적 일 걸요?


그래서, 붓다의 바른 통찰로 돌아와 마음을 달래 봅니다. 붓다는 '眼耳鼻舌身意'(=즉 육내입처)가 고(고성제) 라고 하시며 이 '眼耳鼻舌身意'가 본래 "내 것도 아니고 나도 아니며 나의 본질(아트만)도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통찰 하여야 한다고 했다.

보통 중생들은 이 무슨 상식에 어긋나는 개소리 인가 하고 생각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 인 걸 어떻하나?


이 사실을 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한번 관(觀) 할 수 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걱정거리가 거의 사라짐을 경험하게 됩니다. 도대체 무얼 걱정하겠습니까? 나하고 상관없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위해서 하루 종일 분주 했는데, 이게 내 문제가 아니고 일어날 뿐이고 그래서 사라질 뿐이고 나의 의식의 스크린 위에서 스스로 그려낸 환상들의 쇼들이 다 나의 본래의 것이 아니었다면? 이제는 스스로 자신 안에서 벌어지는 "思量하고(ceteti, 생각하다) 妄想하고(pakappeti, 도모하다) 잠재시킨(anuseti) 이 대상(= 현실로 인식)은 '識' 住를 위한 것" 일 뿐, 그래서 그 識이 쪼가리 쪼가리 분별하는 그 번뇌의 연속에 끌려 다니던 것 일 뿐. 본래 나의 현실도 아니고 나에게 인식으로 비쳐진 대상들이라고 본다면 ‘자등명 법등명’ 할 일 밖에 남지 않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선(jhāna, 禪)’이라는 누구나 공짜로, ‘명상센터에 가실 강의료가 없는 분’에게도 활짝 열려있는 ‘자나(jhāna, 禪)'이다. 붓다는 예수는 결코 누구의 돈도 희생도 보시도 요구하지도 기대 하지도 않는다. 이미 현재는 선물로 모두에게 이 세상에서 활짝 열린 상태라는 가르침. 眼耳鼻舌身意(육내입처)로 만나는 대상(현실)이 일단 나의 것이 아니라고 관(觀)하게 되면 ‘문제가 남게’ 된다, 그렇다면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는 무엇이지?’라는 문제. ‘내가 왜 어떻게 해서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갖추게 되었지?’ 라는 문제.

만약 이 문제를 풀게 되면 (즉, 답을 얻게 되면) 그 분은 더 이상 중생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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