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를 송두리채 바꾸는 가르침 = 佛敎

by 김헌준 Hearn Kim


생애를 송두리채 바꾸는 가르침 = 붓다의 가르침 = 佛敎

왜?

약 2,60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나는 왜 이러한 넉두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66년을 살아오면서 나름 세상경험도 하고 나름 궁금한 것들에 대해 제법 공부도 해 보고, 하면서 산전수전 겪어본 입장에서 이 세상에서 이 보다도 더 깊고 심오한 통찰을 제시한 가르침은 없었다는 고백을 한다.


나의 삶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편적인 사람들의 삶의 양상을 투영해 보면 佛敎에서 설파하는 패러다임 안에 다 들어가는 이 무시무시한 정교함을 한번 경험 해 보면 도저히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외통수에 몰려 '아! 이것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無上正等覺) 이구나!' 하고는 그간의 나의 고집, 아집, 위선과 기만을 다 포기하게 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경전을 펼치면 무수한 가르침들이 현현한다. 즉 육근육경 십이처 십팔계 심의식과 법 육식과 명색 12연기 육육연기 중도 팔정도 사성제 사선 사마타와 위빠사나 등등등. 그러니 이들을 한줄로 꿰는 밝은 눈 가진이를 만나지 못하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결코 벗어날 수 없듯이 헤메고 헤메고 ......


여기 경전의 한 부분만을 가지고도 붓다의 가르침의 핵심을 볼 수 있는 프랙탈的 인 통찰을 한번 一見 해 보자.


"비구들이여, 無明에 덮이고 愛에 묶여서 현명한 사람에게도 이러한 身이 集起한다.

이 같은 身과 外로 名色이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두 겹(dvaya)’이 되고, 한 쌍을 緣한 ‘여섯 가지 處에 있어서의 觸’이며,

현명한 사람도 그것들이나 그것들 중 어느 하나에 접촉 됨으로써 樂과 苦를 경험한다."


사람들이 항상 맞이하는 일상을 표현하는 평범한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통찰이다. 그런데 상기 언급을 이해 하려면, 外로 名色, 여섯 가지 處 등을 알아 들어야 한다. 결론은, 사람들이 '어느 하나의 경우에 반드시 접촉(경험) 됨으로써 樂과 苦를 경험한다'는 현실이다. '樂과 苦' 라는 것이 66년 인생살이에서 내가 지지고 볶던 개인적 혹은 가족 간 그리고 사회적 인간관계, 비지니스, 기타 共業的 인 사회 정치적 갈등 등등 이었으며 아마도 개개인에게 상황은 각기 달라도 그들의 주관적 세계 內에서 맞이하는 공통된 현상들이리라 추론해 본다. 크게는 인류 전체의 국가들 간 이해관계 속에서 크고 작은 갈등과 분쟁으로 고통 당하는 민족집단들이 오늘날에도 우리와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이 문제(樂과 苦를 경험)를 해결하는 길을 붓다는 통찰하였는데, 이를 알아 들으려면 왜 붓다가 안과 밖(身과 外로 名色), 名色이란? 身을 붓다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名身+色身으로 해체해서 봄), 그리고 '여섯 가지 處'가 왜 一切인가? 등등을 알게 되면 어느 순간 눈이 확 밝아지듯 알아짐이 일어나게 된다. 이를 위해서 나는 카페에도 블로그에도 글들을 써오고 있는데 일단은 나의 아이들이 좀 알아 들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앎에 도달하는 가장 빠른 길은 스스로 물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답을 구하기 위해 요청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깨달음은 묻지 않는 자에게는 결코 주어지지 않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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