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를 송두리채 바꾸는 가르침

by 김헌준 Hearn Kim


타인의 삶에 침투하여 기존의 삶의 구조를 완전히 흔들어 부셔버리는 그 영향력이란 실로 공포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사이비 종교를 만나서 삶을 망쳐버린 많은 사람들의 사례를 익히 알고 있다.

내가 붓다의 가르침을 生을 송두리채 바꿔 버린다고 표현하니까, 마치 불교를 만나면 자신을 잃어 버리게 되는 그 어떤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갖는 사람도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상기 사이비들과 붓다 나 예수 같은 분들의 차이를 아는가? 붓다나 예수 같은 분은 절대로 너의 재물이라든가 가족이라든가 등등 너의 그 무엇을 요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붓다가 그의 교단을 만들기 위해서 기부를 요구하거나 어떤 희생을 요구하는 것을 들어본 적 있는가? 예수가 그러한가? 아니다. 모두 사악한 세력들만이 그런 것들을 요구한다. 예를 들면 기성 종교들 처럼 의도된 어떤 집단성을 상정하고 묵시적 희생을 은근 강요한다. 통시적으로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집단들이 그러하다. 반대로 붓다나 예수 같은 분은 너를 해방한다. 현재 묶여있는 그 무엇으로부터도 너는 자유로움을 설파하고 그의 통찰을 선물한다. 어떤 개념, 인습, 전통, 가치관, 의무, 정신적(본능) 두려움과 불안 마저도 너를 엄습하거나 속박 할 수 없음을 가르쳐 준다. 마침내 네가 도달 할 때 알게 되리라. 현재라는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당연시 하였던 작금의 이 모든 상식들이 착각이었음을. 인간은 인간들이 만든 진화역사 속에서 축적된 개념의 껍데기를 두른 허상이라는 세계를 따로 만들어 스스로를 그 안에 가두어 둠으로써 모든 惡과 苦가 시작 되었음을 붓다나 예수는 명쾌히 선포한다. 종교를 넘어 이제는 진화를 계속하여 정보통신, AI 및 로봇생태계 등으로 확장된 문화차원이 인간 허구세계의 시장논리와 영합한 탐욕의 가치관이 지배력을 뻗어 더 많은 인간들을 먹이감으로 확보하고 그 전도몽상의 세계를 확장하려 광분 할 것이다.


인간세계가 22세기... 30세기... 40세기 등등으로 무한 존속 된다 하더라도 참으로 한 개인이 진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붓다의 가르침으로 돌아 오지 않을 수 없으리라 나는 감히 예언한다.


왜냐하면 苦를 감당 할 수 없기 때문에. 미래에 혁신적인 새로운 종교, 철학, 사상이 나올 수 있지 않겠냐고?


없다.


왜냐? 인간이 스스로 각자 자신의 '탐욕'을 버리기 전까지는.


한 개인이라는 인간은 없다.

각 개체에게는 그의 '내부'와 '외부'가 결합된 생명체 활동이라는 영역만이 있을뿐. 이를 인간들은 서로를 향해 '너니 나이니' 하면서 인위적 개념을 부여함으로 인간들이 된 것이다. 가족이되고 사회가 되고 국가가 되고 세계가 되었던 것이다.


AI와 통합된 피지컬로봇을 꿈꾸는 인간들을 봐라. 뇌과학과 미세입자물리학, 분자생물학 등등 첨단 과학의 진보에 교묘히 골통을 굴려 시꺼먼 탐욕의 사업성을 계산 해 낸 영악함을 봐라. 저런 '욕탐'이 사라지는 세상이 오기까지는, 인간세계에서의 苦의 지속은 내내 함께 할 것이다.


붓다의 가르침으로부터 시작된, 苦의 구조에 대한 해체 원리를 배우기를 나는 권고한다. 이는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의 삶에 적용하려 하지 않으면 결코 알수 없는 삶의 프랙탈 구조를 비추어 주는 원리다. 붓다의 法을 알기까지 한번 도전 해 볼 인생 최고의 가치라고 나는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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