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敎를 이야기 하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예를들어, 붓다의 緣起에 대한 가르침은 우리의 일상 삶이 이와같은 연기의 개념에 적용을 받는다는 뜻이다. 연기란 환경과 조건에 기반하여 현재의 이 상태가 결정되고 만물은 이러한 원리로 상호 구성되어 있다라는 보편적 상식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따라서 연기이므로 본래부터 확정된 실체가 없으니 모든 현상은 無常(본래 그런 것이 없다는 뜻), 苦(불안정, 불완전, 불만족 인 상태) 그리고 無我(변하지 않는 그 자체로서 독립된 실체가 없음) 라는 지극히 당연한 관점으로 모든 현상을 바로 보라는 것이다. 그러할 때 현실적인 당면한 모든 문제의 발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상태로의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
오늘날 우리는 현대과학이라는 문화적 혜택 속에 살고 있다. 인류가 그간 쌓아올린 '앎'의 결과로 인간세계는 이 지구 상에서 우세종으로서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라고 착각 할 정도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앎'은 매 시대시대 마다 살았던 그 어떤 사람들의 전환적 발상으로 부터의 결과다. 즉 '전환적 발상'이란 '관점의 변화'이며 이는 '의식의 새로운 차원'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식의 도약이 있기 위해서 그들은 사물을 바로 보려고 관찰했고 부단한 열정으로 현상 뒷면에 숨겨진 진실을 알고자 노력했던 헌신적인 삶들이 있었기에 뉴턴의 고전물리학을 거쳐 아인쉬타인의 현대물리학, 그리고 오늘날의 양자역학 세계에 이르러 사물을 구성하는 근원입자의 존재와 작동원리를 파헤쳐 전자를 알게되고 그러한 지식의 쌓임이 현재 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개발되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이를 가르켜 물질세계와 인간의 인지세계가 함께 발전해 온 공진화 현상(즉 진화)이라고 한다. 인지가 실리콘이라는 광물 속으로 들어가 합성된 결과(연기)이다. 이는 극히 상식적인 세계상인데 인간은 40억년 지구역사에서 지금에야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태양에너지가 광합성으로 화학적 변환을 일으켜 세상에 에너지를 공급해 오지 않았는가? 즉 광자와 물질이 만나고 원소단위의 이합집산이 에너지로 변환되어 동식물의 세포 속에서 생명현상으로 탈바꿈한 변화의 세계를 우리는 물질(빠알리어로 rupa, 한자로 色 등 모두 변화의 의미를 담음)이라고 이름붙여 인지하게 되었다. 물질은 단단한 그 무엇이 아니라 변화하는 과정을 뜻한다.
이렇게 세상은 진실 그 자체인데 인간 만이 그것을 왜곡한 세상을 만들어 내어 지금 현재 그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붓다 나 예수같은 선지식들이 세상에 나아가서 가르침을 준 것이다. 인간은 여전히 못 알아듣고 자기를 중심으로한 편리한 이기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다가 예외없이 고통의 절벽 끝에서 生을 마감하면서. 붓다 나 예수같은 선각자들은 우리의 의식의 전환 (즉 내면으로부터의 변화)를 끊임없이 가르치신다.
예를 들어 보겠다.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네가 믿음이 있다면 이 산이 움직여 저리로 가라하면 그리 될 것이다' 라고 했다. 이것이 진실이다. 산이 움직인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움직임을 못 볼까? 왜? 바로 의식이 죽어 있어서다(잠들어 있다, 즉 無明에 빠져있다 라고). 자기라는 허상에 묶여 자기를 깨우쳐 나오지 못하고 남이 해 주기 만을, 세상이 달콤함을 내게 떠먹여 주기 만을 갈구하는 이 천박함을 이기심이라고 하나? 불교적으로 有身見에 기반한 障礙에 덮혀 살고 있는 것이다. 예수의 말처럼 자신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하지않는, 눈을 뜨려고 하지않는, 그러니 현대물리학자 반의 반의 반도 못되는 定見을 갖춘 자가 되겠는가? 正念이 생기고 正智가 생기겠는가?
현대과학적으로 쉽게 풀어보자. 여기 山 앞에 도로에서 내가 시속 60킬로로 달려가면 1시간 후엔 내가 山으로부터 60킬로 떨어진 곳에 있을 것이다. 내 관점에서만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내가 있는 곳에서 볼 때 山이 60킬로 밖으로 멀리 움직인 것이다. 예수는 이렇게 보라고 한 것이다. 山은 움직일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라는 것이다. 성경은 온통 예수께서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고 나와야 네가 구원 찿는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오늘날 교회라는 곳에서는 그 누가(하나님?) 구원를 준다고 하고있네? 이러니 여전히 고통의 현실에서 못 벗어나는 것.
인간으로 사는 혜택이 무엇인가? 인지의 차원을 개발 할 수 있다는 것? 의식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인간은 진화의 방향을 선택했기에 여기까지 왔다. 붓다의 가르침 처럼 자신의 내면에 바른 '앎'을 쌓는 것이 키워드다. 자신의 내면에 쌓인 것을 따라(心路) 자신의 삶이 결정 된다라는 것. 바로 알고 바로 보는 것이며, 보여지는데로 따라가면 망한다는 것. "Reality is not what it seems." 우리와 동시대를 사는 현대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