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佛敎 인가? (2)

by 김헌준 Hearn Kim

저는 붓다의 육육연기에 대한 가르침에 귀의 합니다.

이 연기에 대한 통찰은, 인간이 왜 스스로 유신견을 가지고 자기 몸을 자신과 동일시 하는지를 명쾌히 깨닭게 해 주었습니다.


정신적 연기현상이 물질세계를 실체로 착각하여 자신과 세계를 실제로서 구현 해 내려는 과정이라고 보며, 이는 다윈에 의한 물질적 진화가 붓다께서 이미 2천여년 전에 선포한 연기현상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보며, 20세기에 들어 뇌과학의 발전으로 제럴드 에델만이라는 노벨상 수상자 조차 정신작용이 몸과 뇌라는 물질로 체화되는 과정임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오늘날의 양자물리학을 넘어, 그 본질에 도저히 접근이 안되는 근본 원인을 규명하고자 인지물리학자인 도널드 호프만은 오늘날의 첨단 물리학이 해답에 접근하지 못하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물질중심주의에서 의식우선주의로 전환이 불가피 하다는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한 시도는 현대 물리학이 봉착한 한계가 물리적 현상은 파악이 되지만 그 현상이 왜 인간의 인지(qualia)와 연결이 안 되는지의 절벽(gap)을 규명하려는 궁여지책이라고 보여 집니다. 도널드 호프만은 의식이 우선이고 물질은 그 의식의 진화를 따라온 생존과정에서의 인터페이스 일 뿐이라고 해석 합니다.


만일 도널드 호프만 같은 인지물리학이 대세가 되는 날이 오면, 色(뇌)에서 名(의식)이 탄생한다는 물질세계중심주의적 현대물리학의 판도를 뒤집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붓다께서 지적 했드시 名色 일 뿐 色名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육육연기는 名이 연기되어 色名이 생겨나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즉, 경전의 내용에 따르면, 愛支緣起 라는 이름 하에,


六內入處, 六外入處

→ 六(內)識

→ 六(內)觸

→ 六(內)觸生受

→ 六(外)想

→ 六(外)思

→ 六(外)愛

→ cha(外) vitakka

→ cha(外) vicāra>

[DN. vol.2. Suttanta(大念處經)]


상기와 같은 연기의 흐름으로,

六入

→ 육내입처

→ 육외입처

→ 六識身

→ 六觸身

→ 六受身

→ 六想身

→ 六思身

→ 六愛身

→ 六界身

→ 오온

→ 오취온(= 有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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