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밖에 있는 것은 제발 그냥 내버려 둬라!

by 김헌준 Hearn Kim



우리가 눈, 귀, 코, 혀 그리고 감각하는 몸뚱아리 (5가지 色處라고 해 봄), 여기에 정신활동이라 일컷는 의(생각을 意에 새김, 혹은 作意 라고 표현 해 봄) 해서 6개의 창문을 통해서 이 '나'라는 집 안에서 밖을 보게(= 인식하게) 된다.


그러면 6개의 창문을 통해 각각 무엇을 보게(= 인식) 되는가? 눈으로 물질(형색), 귀로 소리, 코로 냄새, 혀로 맛 그리고 몸으로 감각(觸). 외부로 부터의 5가지 앎은 意를 의지하여 실체화 된다. 그렇게 5가지 色處가 意를 의지하듯, 밖의 대상 인 형색, 소리, 냄새, 맛, 감각(觸)이라는 5가지 물리적 현상은 法에 수렴되어 意의 對境이 되면서 意로 법(밖의 色聲香味觸이 모아짐)을 파악 한다는 최종적 인식이 완료되어 비로서 알아졌다라는 마음의 새김작용(作意)이 완료된다. 이러한 의식의 매카니즘을 6근(根) 6경(境)을 원인(조건)으로 한 6식(識)의 발생(연기적 흐름) 이라고 붓다는 통찰하셨다.


* 6근 : 眼耳鼻舌身意

6경 : 色聲香味觸法

6식 :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6근6경이라는 조건이 있어서 6식이 생겨 난다는 것이 '緣起(인연생기의 준말)'이고 6근6경6식이 성립하여 알아진다는 현상을 '三事和合'이라 하며 이 또한 연기적 현상이다.


이러한 장황한 설명을 먼저 한 것은, 우리가 매 순간 현재라고 현실이라고 실제라고 아는 이 현상을 바로 '삼사화합 觸'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이 현실을 살면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이 이 '觸'의 순간 일 것이다. 붓다의 12연기과정에 보면 '촉을 緣(조건)한 수(受), 수를 연한 애(愛), 애를 연한 취(取) 등등'의 흐름에 대한 설명이 있다. 受는 좋다, 싫다 하는 樂受와 苦受를 가져오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樂受를 원하고(부여잡고) 그 즐거움이라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때는 화를 일으키는 苦受를 갖는다. 그리고 낙수를 확실히 나의 것으로 부여잡는 현상이 愛 --> 取이며 이로 말미암아 渴愛와 執着이 생겨나고 증폭된다. 이러한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심적 기저현상이 삶에서 장애로 경험된다.


우리가 삶을 살면서 피할 수 없는 觸이 어떤 원인과 조건으로 생겨나는가? 앞서 설명 했드시 삼사화합 인데 시멘트가 콩크리트가 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물이 듯 識(상기 6식)이 개입해야 촉(현실인식)이 완료된다. 흔히 '心意識'이라 이름 붙여진 그 心의 다른 이름이 識이다.


여기서 잠시 '안다는 것'에 대해 생각 해 보자. 앎에는 두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합해서 알아진 앎, 또 하나는 쪼개서(즉 분별해서) 아는 앎. 이 識은 쪼개서(각각이 다르다고) 아는 앎이다. 그래서 '분별 識'이다 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 분별은 우리가 생존이라는 진화역사의 과정에서는 아주 유용한 기능이므로 識을 가진 것이 최상의 가치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분별이 가져오는 부작용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비교, 평가, 판단, 규정, 단정이 가져오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었던 것이다. 그 역기능이 가져오는 피해로 인해 인간세계는 스스로 고통을 만들게 되었다. 분별망상이 초래하는 역기능 때문에 識은 '알음앓이'로 불리우며 불교수행에서는 아주 원수 취급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런데 지난주 지하철역에서 벽에 걸린 아름다운 詩 하나를 보았기에 인용해 본다.


'각기 다른 꽃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꽃밭을 이루고

각기 다른 나무들이 어우러져

건강한 숲을 이룹니다.

다름이 아름답고 건강한 세상의 출발 입니다'


그렇다. 意에 새겨지는 法이라는 기능이 바로 인간이 파생한 역기능을 순기능화 하는 것 임을. 그냥 眼識, 耳識, 鼻識, 舌識, 身識이라는 5識이 法을 만나는 意識을 닦아야 하는 이유를!


붓다는 法을 마음(心)의 고유한 영역(內로)에 머므르는 '緣已生의 법'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識이 분별한 色들, 聲들. 香들, 味들, 그리고 觸들을 밖으로의 영역(外로)에 흩어지는 것들로 설명하시며, 外로 識이 흩어짐을 분별망상의 세계에서 헤메는 것으로 그래서 모든 인식이 內로라는 영역에서 法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色聲香味觸은 法으로 수렴된다. 즉 法에 비친 것이라 아는 것(作意)이 필요하다. 비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감 잡는 것이 키포인트다. 큰 거울에 만상이 비친다. 테이블 그 위에 사과 책들 그리고 벽면 창문 등등. 거울이라는 2차원 평면에 비추이면 테이블 사과 책 창문들은 모두 붙어서 연결된 것. 그것을 따로따로 분리 할 수 있나? 다 붙어 있다고 알아짐 일 뿐. 마음(정신작용)은 이러한 것 일 뿐. 이것을 알 때 분별識은 차원의 도약을 한다! 意가 法을 만나는 것이다. 이것이 어디에서 일어나는가? 그대의 마음 안에서. 그래서 붓다는 '나는 中道를 깨달았다' 고 하셨다. 中에서 그대의 혼란(고통)을 해결하라. 무엇과 무엇의 中인가? 마음과 세상(대상)의 中에서. 마음과 대상이 무엇으로 묶여있나? 욕탐으로, 中에 있는 욕탐!


제발 세상을 그냥 좀 놔두쇼, 대신 그대의 안으로 들어가서 문제를 해결하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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