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손

그 기억 속의 온도

by 김정숙

아버지의 손을 처음 제대로 바라본 건, 아주 어른이 된 어느 날이었다. 무심코 건넨 커피잔을 받는 그의 손등 위로 굵은 핏줄과 깊게 파인 주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손엔 말보다 많은 시간이 묻어 있었다. 말끔한 손톱 사이로 박힌 오래된 흙, 굳은살 아래 숨겨진 수많은 노동의 흔적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 손은 한 사람의 인생, 그리고 우리 가족의 시간을 지탱해 온 단단한 뿌리였다는 것을.


어릴 적엔 아버지의 손이 왜 그렇게 통통하게 부어 있는지 몰랐다. 그냥 원래 그런 줄 알았다. 장난 삼아 손을 주무르며 "아빠 손은 말랑말랑하네" 하면 아버지는 쑥스러운 듯 웃기만 했다. 하지만 나도 어른이 되어 손으로 일하는 날이 많아지자, 거울처럼 내 손이 그 손을 닮아갔다. 매일 쥐고, 들고, 옮기고, 땀을 닦는 사이 손등이 부어오르고, 굳은살이 생겼다. 그제야 알았다. 아버지의 손은 아픔이 아니라 성실의 결과였다는 걸. 그건 부지런한 삶이 만든 손이었다는 걸.


산속 깊은 마을, 이웃집 밭을 대신 갈아주러 소를 몰고 나가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본인의 일도 바쁠 텐데, 새벽부터 소에 쟁기를 달고 산길을 넘던 그 모습. 일손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으셨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바쁘게 채워 나가셨다. 그 손은 단지 가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웃을 돕고, 마을을 지탱하고, 나아가 우리 형제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했던 손. 말없이 묵묵히, 그러나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살아오신 손이었다.



이제는 나도 그 손을 닮아 살아간다. 하루를 부지런히 채우고,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때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잠드는 밤이면 문득 아버지의 손이 떠오른다. 그 손을 안다고, 이제야 조금은 이해한다고, 그렇게 말해보고 싶어진다.

부지런한 손을 닮은 막내딸은 오늘도 아버지가 그립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아버지의 손을 다시 한번 가슴 깊이 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