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탑니다

올라가면 내려갑니다.

by CE Lee

“와, 오늘 날씨 진짜 좋다! 한 바퀴 돌고 올까?” 열정을 보이는 남편과는 달리, 나는 별 대답 없이 뜨뜻미지근해한다. “한 바퀴 돌고 여보 좋아하는 거기 가서 아이스 라테 마실까?” 남편이 질문을 바꿔 다시 묻는다. “그럴까? 운동을 하긴 해야지.”라며 커피 때문이 아니라 운동을 해야 해서 자전거를 타러 간다는 듯 대답하지만, 고소하면서도 산미가 있는 아이스 라테를 떠올리니 입꼬리가 올라간다. 속으로 ‘진짜 오래 같이 살았나 봐, 나를 움직이는 법을 안다니까’,라고 생각하며 주섬주섬 필요한 것들을 챙긴다. 선크림을 바르고, 엉덩이 보호 패드가 달려 안장에 닿는 부분이 살짝 도톰한 우스꽝스러운 바지도 챙겨 입는다. 작은 힙색을 메고 물통에 물도 채운다. 헬멧까지 쓰고 나면 현관문을 나선다.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서지만, 숨이 턱까지 차서 헉헉 댈 때까지 자전거를 타고 싶은 남편과, 어느 정도 계절도 풍경도 느끼며 슬슬 자전거를 타고 싶은 나는,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그래도 우리는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페달을 밟는다. 작은 소리로 노래를 틀고 발을 힘차게 구르면 자전거의 두 바퀴는 마구 굴러가기 시작한다. 온몸에 바람을 맞으면 슬슬 몸도 마음도 풀리고, 가속이 붙은 자전거는 어디든 내가 향하는 곳으로 -사실은 남편이 이끄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준다. 우리는 달리다 중간중간 서서 물도 마시고 숨을 고르며 풍광을 만끽하다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기를 반복하며 자전거를 타곤 한다.


불과 몇 년 전,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때만 해도, 우리 가족은 넷이서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세 부녀의 뒷모습을 보는 것은 참 흐뭇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이들은 이제 친구들과 놀거나 학원을 가느라, 주말이 되어도 더 이상 우리 부부와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회사에서 자전거 동호회에 들어간 남편은 1년여 정도 모임을 했다. 나에게도 취미 생활을 공유하자며 새 자전거를 들이밀었을 때, 나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남편과 같은 취미가 있는 것도, 자전거 타기도 좋았던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넷이 아닌 우리 둘이 되어 자전거 도로를 누비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면서도 나의 눈은 사방을 향한다. 봄이면 벚꽃이 가득하고 초여름이 되면 노란 금계국이 만발하며 가을이면 울긋불긋 단풍이 진 도로를 신나게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참 호사스러운 일이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자연의 아름다음에 새삼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난 주변 환경뿐 아니라 자전거 도로 옆에 붙은 산책로 위 사람들도 종종 관찰하곤 한다. 그 산책로에는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다 보인다. 데이트하는 연인, 임신한 아내의 손을 걷고 걷는 남편, 유모차를 밀고 가는 부부가 보인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사람들, 네발 자전거를 타는 아이를 봐주는 부모, 눈에 띄게 천천히 걷는 노부부까지. 그 사람들 옆을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로 지나치며 생각한다, 인생 참 쏜살같이 지내간다고.


그렇게 달리다 남편이 ‘오르막!’하고 소리치면 기어를 바꾸고 비탈길을 오를 마음의 준비를 한다. 나보다 체력이 좋은 남편은 경사가 있음에도 수월하게 올라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며 나를 기다린다. 그 길이 얼마나 힘들지 알기에 매번 자전거에서 내려 그냥 끌고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래도 여유 있게 웃으며 나를 기다리는 남편을 보면 자존심이 고개를 들어 악착같이 발을 굴러 어떻게든 올라간다. 겨우겨우 성공하고 나면 두 다리는 후들후들거리고 땀은 삐질삐질 나지만 항상 뿌듯하다. 올라가는 길의 경사가 심하고 힘들수록 내리막길에서 오래도록 쉽게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을 자전거를 타면서 새삼 깨닫는다. 인생도 이럴까, 고생을 한 만큼 얻을 수 있는 게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도시 구상 단계부터 친환경 도시를 목표로 했다는 세종시인지라 어디서든 자전거 도로에 쉽게 닿을 수 있다. 프로 라이더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처럼 실력은 어중간하지만 자전거 타기를 좋아하는 애매한 라이더에게 세종시는 마냥 천국 같은 곳이다. 금강을 따라 달려도 좋고, 호수공원을 한 바퀴 달려도 좋다. 원수산에는 산악용 자전거 길도 무려 8.3km나 이어진다고 한다. 2030년까지 세종시의 자전거 도로망이 478km까지 뻗어 나간다고 하니 자전거를 타기에 좋은 환경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 같다.


환경이 이렇게 좋다면 더욱이 자전거를 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숨이 차도록 페달을 밟는 동안 우리 부부의 건강이, 관계가, 더 좋아지고 돈독해지길 기대한다. 아이들의 바쁜 지금 이 시절이 잔뜩 긴장하고 온 힘을 다해 발을 굴러야 하는 오르막 구간이 아닐까. 이 시기는 곧 지나갈 것이고 언젠가는 기어를 바꿔 한결 가벼운 속도로 다시 함께 달릴 날이 오리라 믿는다. 그때가 되면, 예전처럼 네 식구가 앞뒤로 달리며 방축천 오리 가족이 입질을 하며 무언가 잡아먹는 모습에 깔깔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남편이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하면 못 이기는 척 자전거용 바지를 입고 헬멧을 써야겠다. 숨이 차도, 다리가 후들거려도, 결국은 다시 내려갈 길이 있다는 걸 알기에 오늘도 남편과 함께 현관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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