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스키 타기 좋은 곳이라니요?
나는 다소 맹숭맹숭한 사람이다. 그 넓고도 광활한 호불호의 스펙트럼 위에서 나는 곤란할 때가 많다. “어떤 영화가 가장 좋아?” “어떤 음식이 제일 좋아?” 같은 ‘극상의 선호’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더더군다나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특별히 무언가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폭발적인 애정 같은 게 대체로 없어서다.
그나마 다행인지 불호의 영역은 꽤 선명하다. 예를 들면, 공포 영화를 싫어하고, 롤러코스터같이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는 근처에도 못 가고, 돼지 껍데기나 곱창은 공짜로 줘도 못 먹는다. 그렇지만 나의 취향이라는 세계를 지키는 울타리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좋았던 게 싫어지는 경우는 드물지만 확고한 불호의 영역에 있었던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일은 많다. SF 영화나 액션 영화는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장르였다. 그러나 남편은 유치한 로맨틱 코미디나 심오한 예술 영화보다 화려한 액션과 공상이 난무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어떤 날은 내 취향에 따라, 어떤 날은 남편의 취향에 따라 영화를 고르다 보니 이제 웬만한 영화는 다 좋다.
호불호를 가르기 어려울 정도로 애매한 취향도 있다. 운동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싫은 건 아니지만 딱히 잘하는 게 없어서 도대체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도 잘 모를 지경이다. “어떤 운동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대개 잠깐 뜸을 들인 다음 “스키”라고 답한다. 스키를 좋아하긴 한다. 준비하는 과정은 번거로워도 슬로프 위에서 질주하는 순간을 떠올리면 짜릿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겁내다가 간신히 도전한 탓인지 스키를 생각하면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과 함께 두려움도 스멀스멀 함께 올라온다.
겁이 많은 나를 기어이 슬로프 위에 세운 사람은 남편이었다. “무서워”라고 호소해도 남편은 “제대로 배우기만 하면 안전한 운동”이라는 모범답안만 내놓았다. “온 가족이 다 같이 배워두면 평생 즐길 수 있어”라는 주장도 굽히지 않았다. 나의 두려움을 ‘한 번쯤 시도해 볼 용기’로 바꿔놓은 건 남편이 날린 마지막 한 마디였다.
“여보, 세종이 스키 타기 얼마나 좋은 곳인 줄 알아?” 서울 살 때도 강원도 가는 길은 멀기만 했는데, 세종은 서울에서 150킬로미터쯤 남쪽으로 떨어진 도시다. 그런데, 세종이 스키 타기 좋은 도시라니. ‘이 남자가 정말 스키를 타고 싶은 모양이네?’ 싶어 정말이지 피식 웃음만 나왔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진짜야. 세종에서 한 시간 반만 가면 무주 있잖아.” 아뿔싸! 강원도에서는 멀지만 무주와는 가까운 도시가 바로 세종이었다. 게다가 강원도까지 가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서울에서 강원도로 가는 길은 거리 자체는 가깝다. 그러나 교통 체증이 심해 항상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반면, 세종에서 강원도로 가는 길은 상대적으로 통행량이 적어 덜 막힌다. 거리는 달라도 결국 걸리는 시간은 비슷한 셈이다. “나랑 결혼할래?”라고 프러포즈할 때보다 더 간절한 그의 목소리에 나는 결국 넘어갔다. 위험한 스포츠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불호의 영역에 내버려져 있었던 스키가 마침내 알 듯 말 듯 한 회색 지대로 넘어갔다.
매년, 더위가 가시고 바람이 차가워지면 나는 슬슬 스키 시즌을 준비한다. 스키복에서부터 장갑, 양말, 헬멧, 고글, 스키, 부츠까지 챙길 것도 많고 신경 쓸 것도 많다. 남편의 취향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스키를 타던 시절에는 월동 준비를 할 때마다 조금은 부아가 치밀었다. ‘챙길 게 너무 많아. 정말이지 너무 번거로운 운동이야. 도대체 이 힘든 운동을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거야, 이 남자는!’
그러나 취향의 울타리가 허술한 여자답게 나는 서서히 스키의 매력에 빠져들고 말았다. 칼바람이 몰아치는 한겨울의 슬로프 위에 올라서면 두툼한 스키복은 그저 포근하게 느껴진다. 한 짝에 몇 킬로그램씩 하는 스키 부츠와 사람 키만 한 스키판도 눈 덮인 슬로프 위에서는 날렵하고 가볍게만 느껴진다.
스키의 가장 큰 매력은 슬로프를 질주하다 보면 어느샌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나를 믿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경사진 산자락을 따라 흐르는 슬로프는 멀리서 보면 폭신하고 매끄러워 보인다. 그러나 그 위에 올라서면 알 수 있다. 곳곳에 포진해 있는 눈더미, 옆으로 밀려난 눈 뭉치 사이에 숨어 있는 투명한 빙판, 깎이고 쪼개져 나온 얼음과 눈이 뭉쳐져서 생겨난 자갈 모양의 얼음 알갱이들. 갖은 장애물로 뒤덮인 슬로프 위에서는 매 순간 철저히 자신을 믿지 않고는 끝까지 안전하게 내려갈 방법이 없다.
철저히 타인의 취향이라고 믿었던 스키는 슬며시 나의 세계를 비집고 들어와 이렇게 나를 설레게 하는 새로운 취미가 되었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것이어서, 오롯이 타인의 취향이었던 스키가 나의 취향이 되는 순간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마음들이 모두 사라졌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그렇게 흘러가는 게 아닐까. 고집스럽게 내 것만 움켜쥐기보다 타인의 취향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내 취향의 경계가 확장되듯, 서로에게 스며들 때 우리의 삶도 더욱 풍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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