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6일 화요일 제주살이 16일 차. 이제부터는 더 고민 말고 무작정 직진하기로 했다. 오늘은 대평포구에서 화순금모래해수욕장까지로 거리는 거의 12킬로였다.
대평포구에서 9코스 시작인증 스탬프를 찍고 언덕으로 조금 걸어가니 박수기정이라는 깎아 만든듯한 절벽이 나타났다. 샘물이 솟아나는 절벽이라는 뜻이다. 위험해서 가로막은 안전망사이로 보니 샘물이 솟아난듯한 구멍이 절벽아래 보였다. 그 옆으로 말들이 다녔다는 좁디좁은 그러나 숲터널로 이루어진 오르막 오솔길이 있었다. 그 길을 몰질이라고 했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니 넓은 들이라는 뜻을 가진 난드르, 대평리가 나타났다. 밀감밭옆을 지나는 길을 따라 군산으로 들어섰다. 계단을 따라 300미터라는 군산 정상에 올라 중간 인증 스탬프를 찍고 내려오니 안덕계곡이 만들어 흐르고 있는 황개천이 있었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보기 드물게 물이 흐려서 궁금했다. 동네 중간쯤 자리 잡은 동네점빵에서 시원한 차 한잔을 마시고 힘을 내어 걷다 보니 들어선 어느 오솔길은 개인의 땅이었다. 올레꾼들에게 길을 내어준 밀감밭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울타리도 없이 그냥 지나도록 해준 주인장의 배려에 감사라는 단어만 생각났다.
한참을 내려오니 제주남부전력소가 보였다. 제주 동네길을 걷다 보니 가정대문이나 차고에 개인자동차전기충전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전력소를 보고 갑자기 그 시설이 왜 생각이 났을까? 전력소옆 넓은 쉼터에는 노오란 유채꽃이 가득 피어 있었으나 이길 저길에서 많이 보아 온 꽃이라 그냥 스치려니 굳이 남편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800미터쯤 남은 종착점거리가 어찌 그리 멀던지 갈수록 나의 멘탈이 자꾸 흩트려지려고 했다. 종점인증스탬프를 찍고 모래사장 해수욕장을 둘러보니 젊은 텐트족들이 여기저기 보였다.제주의 바닷가는 크고 작은 검은 돌들이 거의 자리 잡고 있는데 비하여 금모래로 이루어졌으니 귀한 해수욕장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남편과 나는 나의 아들, 딸에게는 늘 말하고 있다. "우리네 인생 다시 오지 않는다. 즐기면서 살아라." 오늘 나는 겉으로 표현은 안 했지만 오르막내리막 걸으며 체력소모가 엄청 크다 보니 많이 피곤했다. 그러나 나보다 나이가 4살이나 더 많은 남편은 남자이지만 더 힘들 것 같아서 힘들지? 하고 물으면 절대로 안 힘들다고 자존심을 내세운다. 얼굴 탄다고 모자 푹 눌러쓰라 해도 말 안 듣고 마스크도 사용하라 해도 말 안 듣더니 얼굴과 목 부분이 새카맣게 탔다. 아들과 며느리, 딸까지 합세하여 "제발 피부관리하시면서 늙으세요." 하면서 선크림을 놔두고 가니 오늘은 이런저런 말들을 참고한 행동을 하고 있다. 마누라님 말은 죽어라 해도 안 듣는 내 영감, 진짜 같이 살려니 힘들지만 내가 팔 아프다 하니 언제 구했는지 파스를 툭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