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간다는 것에 대하여
(제주 한달살이 하면서)
척박한 바닷가 화산석 사이에
자세히 보아야 만나게 되는
조그마한 몸짓으로도 보랏빛꽃을
피우고 고개 들어 나를 바라보더라.
왜 그리 안쓰럽고 너의 끈질긴 생명력에
오래 살아보니 더 귀하더라.
거친 비바람에 흔들리며
하늘 향해 쭉쭉 뻗은 늘씬한
제주의 야자수나무에는
잎자루를 싹둑 잘라낸
흔적이 회색의 화석으로 남아
오랜 세월 제주 이야기를
흔들릴 때마다 이리저리 쏟아내고 있더라.
이번에 못 본 좋은 것들은 다음에 또
누구랑 와서 봐야지 하던
내 젊은 날의 희망찼던 약속은
이제 지금 내 곁에 있는 이 사람하고
언제 다시 오지 못할 마지막이라는
늙은 사람의 예감이 있더라.
하얀 원피스, 긴 머릿결 휘날리며
옥빛 바닷길 걸어가는 젊은이의 뒷모습은
내 부실한 허벅지를 가려주는 통바지의 걸음걸이를 슬프게 하더라.
굽은 허리로 몰고 가는 할망의 카트는
휘어진 골목길처럼 울퉁불퉁 소리 내고
달게 먹던 밀감이나 무, 당근은
제주 역사만큼 할망의 주름과 닮아있더라.